노구문(老九门, 2016) | 미남미녀에 반하고 의상에 취하다?
<이 유령 열차에서 사건은 시작된다> |
짜장면과 짬뽕 중 뭘 먹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한 얼굴로 엄마 얼굴만 멀뚱멀뚱 바라보는 아이처럼 이 드라마를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을 위해 거두절미하고 딱 부러지게 한마디 한다면 절대 돈 주고 볼 드라마는 아니라는 것!!!
그런데도 내가 이 리뷰를 쓰고 있다는 말은 「노구문」 시즌1(시즌2 예정됨) 48편 중 단 한 편도 빠트리지 않고 봤다는 말인데, 그건 나름의 요령(혹은 각오?)이 있다면 그런대로 봐줄 만하다는 말이다(앞에서도 돈 주고는 보지 말라고 했지 절대 보지 말라고는 안 했다!). 그 요령이란 것이 별거 아닌데, 그저 정신줄을 살짝 내려놓으면 된다는 것!
여기서 ‘살짝’이 핵심인데, 정신줄을 너무 많이 내려놓으면 가뜩이나 띄엄띄엄 전개되는 드라마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워 재미가 싱거워질 것이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보면 ‘판타지’를 빙자한 ‘개타지’ 같은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에 후회막심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원을 거니는 야터우와 이월홍> |
<두 사람은 백년해로할 수 있을까?> |
자, 그렇다면 만약 시진핑이 내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고 「노구문(The Mystic Nine)」을 추천하라고 윽박지른다면 나는 이 똥줄이 심지에 붙은 불씨처럼 아작아작 타들어 가는 상황에서 어떤 추천 사유를 둘러대 수 있을까?
일단 드라마 초반을 장식하는 것은 노구문(창사성을 좌지우지하는 아홉 개의 가문) 중 두 번째이자 경극 배우인 이월홍(배우 장이싱, 张艺兴)과 (만터우가 아닌) 야터우(배우 위안빙옌, 袁冰妍)와의 겉은 바람 없는 호수처럼 잔잔하지만, 속은 바다처럼 깊은 로맨스이다.
양처럼 수더분하고 비단처럼 고운 야터우와 배용준을 연상시키는 훈훈한 이월홍의 외모는 로맨스 장르를 싫어하는 나조차 시기심에 풍덩 빠트릴 정도로 아름답고 부럽다.
<야터우를 치료할 약초가 경매 중인 신월반점> |
<제수씨를 구하러 갔다가 아내를 얻은 장계산> |
본격적인 재미라 한다면, 정체불명의 병에 걸린 야터우를 치료할 약을 구하고자 노구문의 수장이자 창사성 수비군 장관인 장계산(배우 윌리엄 찬, 陈伟霆)과 구문 일원이자 점쟁이에 수다쟁이인 치철입(잉하오밍, 应昊茗), 그리고 이월홍 부부 등이 북평에 있는 신월반점(짜장면 따위를 파는 그런 반점이 아님)으로 떠나면서 시작된다(아마도 드라마 중 이 여행에서 일어난 일들이 가장 재미있었던 것 같고, 이후 일어나는 몇 차례의 도굴 과정은 저렴한 CG 때문인지 고만고만하다).
다정다감한 이월홍과 대비되는 차갑지만, 친구를 위해 단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전 재산을 올인할 정도로 의리 깊은 장계산 역을 맡은 배우 윌리엄 찬의 훤칠한 이마가 장국영을 연상시키지만, 연기력은 아직 멀었다. 드라마에서 그는 시종일관 신중하고 진중한 연기를 펼치지만, 제작 과정 영상을 보면 동료들과 까불기도 하는 활달한 성격을 보이기도 한다.
이 북평 여행에서 장계산은 남편을 전화위복시키는 독특한 패시브 스킬을 가진 여자 윤신월(배우 자오리잉, 赵丽颖)을 만나게 된다. 만약 윤신월의 깜찍한 미모와 재기발랄한 성격에 반하게 된다면, 드라마 완주라는 의무 아닌 의무라는 중압감은 훌러덩 벗어던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제부터는 드라마 한 편 한 편을 소풍을 하루 앞둔 날 밤의 어린이처럼 설레며 기다리는 성실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일본의 창사성 공습 장면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 |
<제자 천피와 싸우는 이월홍, 이렇게 보면 액션이 괜찮아 보이지?> |
흥미롭게도 드라마 제작 과정엔 동명 소설의 원작자 남파삼숙(南派三叔)이 참여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야기 중간중간 내가 뭔가 놓친 것 같은 석연치 않은 전개가 꽤 눈에 띈다. 후반부엔 제작진 모두 단체로 설사병이라도 걸렸던 듯 끊어진 필름처럼 건너뛰는 듯한 장면이 몇 차례 나타났는데, 급하게 촬영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원작을 읽지 않아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몇몇 주연급 남자 배우들의 엉성한 연기에 이어 연출도 엉성하고 이야기도 엉성하다. 이 모든 것은 구글 번역보다 조금 더 나은 정도인 엉성한 번역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중국 사극을 선호하는 이유는 바로 의상과 야외 및 실내 세트에 있다. 얼핏 듣기로는 어떤 드라마는 의상에만 100억을 투자했다고 하는데, 중국 사극의 의상은 배우들의 빼어난 외모만큼이나 아름답고 화려한 것이 볼거리가 되고도 남는다. 물론 '노구문'은 황궁을 배경으로 한 본격 의상 드라마보단 한 수 아래지만, 한국 사극의 고만고만한 의상이나 소품, 세트와 비교하면 역시 볼만하다. 또한 CG를 사용하지 않은 고풍스러운 야외세트와 실내 장식은 중국이 베이징 올림픽에서 보여준 이미지와는 달리 출산한 여인의 유방처럼 풍만하고 오두막에서 장작불을 쬐는 듯한 아늑한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그 고아한 저택에서 여인의 젖꼭지에 맺힌 이슬로 담근 술 한 잔을 마신다면 그 마른 우물처럼 깊고 깊은 정취에 취해 죽어버릴 것만 같다.
끝으로 「노구문(老九门)」만의 두 가지 특징이 있다. 바로 오프닝 영상이 2~3편마다 새롭게 바뀐다는 것과 엔딩크레디트엔 성룡 영화처럼 제작 과정 영상이 삽입되어 있다. 이 메이킹 필름 또한 2편마다, 그리고 등장인물 중심으로 바뀌기 때문에 꽤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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