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The Guest, 2018) | 신을 믿거나 말거나, 재밌으면 장땡!
<일본에선 갑작스럽게 살인을 일으키게 하는 요괴를 도리모노(通り物)’라고 한다> |
‘손’은 엑소시즘과 미스터리에 다 같이 취할 수 있는 흔치 않은 드라마로 장담하건대 이런 장르(공포?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음 한 편 한 편이 집 나간 여편네처럼 애타게 기다려질 것이다.
일단 영화건 드라마건 퇴마의식 자체가 드문 소재인데다가 ‘악령’과 ‘악령에게 빙의된 자’와 ‘퇴마사’라는 교과서적인 삼위일체 구조에 ‘악령’은 ‘큰 귀신’과 큰 귀신의 부림을 받는 ‘작은 귀신’으로, 이에 따라 ‘빙의된 자’는 자연스럽게 ‘큰 귀신이 들린 자’와 ‘작은 귀신이 들린 자’로 나뉘고, ‘퇴마사’는 ‘구마 사제’와 ‘무당과 영매’라는 국외파와 국내파의 조합이라는 변화를 주면서 신선한 재미와 더불어 미스터리의 뼈대라 할 수 있는 복잡성이라는 때깔까지 더했으니 기타 어떤 단점에 실망할 필요 없이 편마다 열정적으로 빠져들 수 있는 드라마다.
귀신을 믿건 말건, 신을 믿건 말건, 그런 거 개의치 말고 한 번 보기 시작한다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큰일이 일어나도, 혹은 마누라가 빙의되어 서슬 퍼런 칼을 들이밀어도 끝장을 보지 않고는 두 눈을 감을 수 없을 것이다.
<요즘은 보기 어려운 국가무형문화재 별신굿> |
<20년 전 우연은 단지 악연이었을까? 이 아이들이 성장해 박일도와 맞선다> |
다른 드라마보다 「손(The Guest)」에 더 빠져들 수 있었던 것에는 좋은 연기와 좋은 소재와 좋은 연출에도 불구하고 거북이처럼 더딘 진행과 개인적인 취향에 어긋나는 소재 때문에 중도 포기한 「높은 성의 사내(The Man in the High Castle)」도 한몫 거들었다.
할리우드 배우들의 진절머리 날 정도로 깊이 있고 진중한 연기를 보다 「손(The Guest)」을 보니 세 주인공의 어설픈 연기가 신선하다 못해 상쾌하게까지 느껴질 정도다. 특히 사람의 복잡미묘한 성격을 묘사하려고 노력하는, 그래서 보는 사람을 간혹 심란하게 만드는 미국 드라마 캐릭터와는 달리 단순하고 직선적인 성격의 캐릭터들(특히 세 주인공인 윤화평, 강길영, 최윤) 덕분에 취침 점호받듯 편안하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분위기 몰이꾼 역을 맡은 배우 이원종> |
<이런 국회의원이 정치를 한다면 국민이 피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
택시 기사, 형사, 사제라는 사회적 계층도 다르고 그에 따라 ‘빙의’를 바라보는 시선도 이해도 다를 수밖에 없는 세 주인공이 한 뿌리를 가진 초자연적인 사건에 휘말리다 보니 불협화음은 불 보듯 뻔하다. 이런 딱딱한 분위기를 다소나마 눅눅하게 녹여주는 캐릭터는 광이 여섯 개라는 육광(이원종)과 강길영 형사를 동생처럼 보살펴주는 고 형사다. 배우 이원종의 내가 그 위에서 한바탕 구르고 또 굴러도 낙상하지 않을 것 같은 그 넓은 얼굴만큼이나 푸짐하고 넉넉한 웃음을 선물하는 넉살은 언제봐도 질리지 않는다.
한편으론 한국 드라마에 있어 꼭 빠지지 않는 짜증 유발 캐릭터들도 등장한다. 바로 윗사람 눈치 보느냐 사사건건 강길영 형사를 피곤하게 만드는 반장과 암독스러운 국회의원 박홍주다. 어떻게든 편하게 잘 먹고 잘살려고 하는 반장이야 그렇다 쳐도 드라마건 영화건 된통 악질 역으로 등장하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국회의원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정말 국회의원 태반이 그런 악당들이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샘이 나서 그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국회의원만큼은 평화로운 취침 점호 중에 느닷없이 방문한 대대장만큼이나 보기 싫다. 나도 어지간히 국회의원을 싫어하나 보다. 무서운 현실은 그런 박홍주 같은 여자가 영부인이 되고자 설쳐대니, 세상 말세다.
<큰 귀신에 맞서는 택시 기사, 형사, 사제. 이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
<누가 그녀를 벼랑 끝으로 몰았는가?> |
성질 급한 택시 기사, 새침하면서 음산한 신부,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오는 형사, 도저히 융합이 안 될 것 같은 직업과 성격의 세 인물이 역시나 융합이 안 된 채 거의 티격태격 우격다짐 격으로 큰 귀신 박일도에 대적한다는 한국판 엑소시즘은 연기력이 뛰어나거나 말거나, 개연성이 있거나 말거나, 악마나 신을 믿거나 말거나 보는 재미만큼은 쏠쏠하다.
한편으론 바다 깊숙한 곳에서 불쑥 찾아온 ‘손’이 사람을 빙의시켜 사람을 죽이게 한다는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속 어둡고 약한 곳을 비집고 들어온다는 악마를 오랜만에 떠올리게 한다. 절망이 바닷물처럼 흘러넘치는 어두운 마음은 달도 뜨지 않은 캄캄한 밤을 홀로 지키는 등대처럼 악마의 레이더망에 단숨에 포착된다. 마치 절대 반지를 손가락에 끼는 순간 암흑 군주 사우론의 감시망에 걸려드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어두운 마음을 떨쳐내지 못하고 악마의 유혹에 굴복한 사람이 나쁜 사람인가? 아니면 그들의 절망감을 나 몰라라 하는 이 사회가 나쁜 것인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악마’는 그저 악행 뒤에 응당 뒤따르는 또 다른 핑계일지도.
그토록 흉악하고도 영악했던 박일도는 삼총사의 대활약으로 물러갔다지만, 인간이 또다시 타락한다면 ‘동쪽 바다에서 손’은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한다. 인간이 타락하는 것도 싫고, ‘손’ 돌아오는 것도 싫다. 다만, 「손(The Guest)」이 시즌 2가 되어 돌아온다면 쌍수를 들고 엉덩이춤으로 이름이라도 쓰며 환영하고 싶다.
0 comments:
댓글 쓰기
댓글은 검토 후 게재됩니다.
본문이나 댓글을 정독하신 후 신중히 작성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