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부메의 여름(姑獲鳥の夏, 2005) | 영상화가 불가능한 소설?
<교고쿠도와 세키구치> |
교고쿠 나쓰히코(京極夏言)의 소설 교고쿠도 시리즈를 몸서리치는 광명과 부들부들한 환희로써 읽은 독자라면 작품의 영상화를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론 영상화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생각을 한 번쯤은 떠올렸을 것이다. 좋아하는 소설을 영화나 드라마로도 감상하고 싶은 절절한 희망 사항은 팬이라면 응당 품을 만한 욕심이지만, 세상 그 어느 주인공보다 현학적인 장광설을 간헐천처럼 심심치 않게 내뿜는 교고쿠도인지라 보통은 박력 있는 액션을 기대하기 마련인 영화란 문화 상품에서 강의를 빙자한 설교 따위를 듣는 일은 누구도 달갑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교고쿠 나쓰히코의 작품은 영상화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추론은 지당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예상을 깨고 몇몇 작품이 영화로 제작된 듯한데, 그중 하나가 「우부메의 여름」이다.
<험한 대접을 받고 있는데도 의외로 주인을 잘 따르는 고양이> |
작가의 열렬한 팬이지만, 교고쿠도의 세 치 혀에 이미 충분히 놀아날 만큼 놀아났는지라, 또한 글로도 충분히 설교를 당했는데,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육성으로까지 훈계 당하고 싶지는 않은 소심한 심성에서 영화는 특별히 찾아볼 마음은 없었는데, 유튜브에 버젓이 올라와 있을 뿐만 아니라 보란 듯이 한국어 자막까지 입혀져 있었으니, 비록 저화질이지만, 어떻게 보면 교고쿠 나쓰히코의 팬에겐 레어 아이템일 수도 있겠다 싶어 (저작권 문제로) 삭제당하기 전에 냉큼 감상했다.
<탐정 레이지로 역을 맡은 아베 히로시> |
경지에 이른 듯한 교고쿠도의 장광설은 여전했지만, 생각보다 지루하게 흘러가지 않은 것은 방대한 원작을 간결하게 정리하고 고심한 노력의 결실이 아니지 않을까 싶다. 이 정도면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교고쿠도 강의 앞에서 냉큼 졸지만 않는다면 이야기의 기승전결 정도는 대략적이나마 파악할 수 있겠다고 하는 영문 모를 안도감도 든다.
<1인 2역을 맡은 하라다 토모요> |
드라마 「당신 차례입니다(2019)」에서 중년의 매혹적인 미소로 뭇 남성의 애간장을 살살 녹였던 하라다 토모요(原田知世)를 대뜸 알아보지 못했을 정도로 화질이 좋지 않아 대뜸 추천하기는 민망하지만, 아베 히로시가 그의 껄렁한 외모에 딱 맞는 괴팍한 탐정 레이지로로, 탐정 조수로는 아라카와 요시요시, 그리고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배우 테라지마 스스무의 옛 모습을 잠깐은 볼 수 있으니, 시간은 남는데 딱히 볼 것은 없을 때 여가선용의 의리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감상한다면 나름 일리를 이루는 셈이다. 화질이 좋지 않으면 제대로 된 감상이 어렵다는 말은 이젠 배부른 자의 핑계가 아님을 실감할 수도 있으니...
영화 감상 후 (영화 리뷰 작성을 위해) 뭔가 건질 것이 있나 하는 기대로 내가 쓴 『우부메의 여름』 소설 리뷰를 (블로그 게시 후 처음으로) 다시 읽어보니 못 쓰고 잘 쓰고를 떠나 이게 과연 내가 쓴 글인가 싶을 정도로 낯설다. 비록 내가 썼다지만, 지금은 기억 속에 없으니 낯설 만도 하다. 하지만, 영화를 감상하고 난 지금의 격조 낮은 감흥과 원작을 읽고 난 후의 격조 높은 감흥에서 어찌 상통하는 바를 찾을 수 있겠는가 하는 이치에 닿으면 역시 교고쿠 나쓰히코의 소설을 영화로 제작하기는 불가능하다는, 리뷰의 첫 단락으로 되돌아가는 듯한 낯설지 않은 결말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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