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Ashfall, 2019) | 보기 드문 병들의 보기 드문 활약
<전역을 앞둔 그가 한반도 운명을 짊어질 줄이야!> |
백두산이 폭발하고 남과 북은 순식간에 재난에 휩싸인다. 너무 오랜만의 기지개라서 그랬을까? 백두산은 한 번의 폭발로는 부족했는지 추가 폭발을 예고하며 마치 염라대왕이 판결을 내리듯 한반도 멸망을 선고한다.
그렇다고 그냥 넋 놓고 재앙을 받아들인다면 재난영화의 도리가 아니렷다.
남한은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채 한반도를 구할 엄청나면서도 황당무계한 단독 극비 임무를 준비한다.
<북한이 늘 으름장 놓던 ‘서울 불바다’> |
이 영화의 첫 번째 재미 요소는 남과 북의 사활이 걸린 극비 작전에 투입된 팀 중 전투 요원은 불운의 사고로 모두 사망하고, 비전투 요원인 EOD(폭발물 처리반)만 남는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모든 임무를 떠맡게 된 하정우(조인창 역)가 이끄는 EOD 팀은 이 극비 작전의 열쇠를 쥔 북한 무력부 소속 베테랑 요원인 이병헌(리준평 역)과 만나는 첫 순간부터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으려고 있는 폼 없는 폼 내세우며 허세 부리다가 결국 제풀에 기가 꺾이고 만다. 남한의 벙벙한 군인들(리준평의 적절한 표현을 빌리자면 ‘보기 드문 병’)과 산전수전 다 겪은 북한 요원과의 기 싸움이 자아내려고 한 요절복통이 관전 포인트다.
만약 남한의 전투 요원이 죽지 않고 훈련받은 대로 리준평을 기선 제압 후 FM대로 임무를 수행했더라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물론 그랬더라면 개고생도 없었겠지만 말이다.
<‘보기 드문 병’들의 아기자기한 작전 회의를 담담하게 지켜보는 리준평> |
두 번째 재미 요소는 바로 멀티 캐스팅의 위력이다.
어쩌면 빈약한 스토리를 출연 배우들의 개성 넘치는 연기 대결로 때우다시피 한 멀티 캐스팅의 위력이야말로 이 영화를 그나마 끝까지 감상하게 하는 주요 동력일 것이다. 만약 리준평 역을 이병헌이 아닌 무명 배우가 맡았더라면 리준평과 조인창의 티격태격 아옹다옹 다투는 재미를 그처럼 감질나게 소화해낼 수 있었을까? 내가 볼 때 영화 「백두산(Ashfall)」의 흡입력은 이병헌이 최소한 절반 먹고 들어간다. 이에 반해 덩치가 산 같아 교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마동석은 캐스팅 미스?
바야흐로 영화의 창의성 부족을 출연 배우들의 화려한 면모로 채우고 그럼으로써 흥행의 일정 부분을 보증하는 멀티 캐스팅의 시대다. 엉성하게 튀겨진 돈가스의 이도 저도 아닌 식감을 양념발로 때운다고 할까?
<두 사람이 끌고 가는 짐에 한반도의 운명이 걸렸다.> |
영화 초반 전역을 앞둔 조인창이 EOD가 안전한 직업이라고 구시렁구시렁하며 잡담하는 장면이 있는데, 군대에서 EOD 작업을 멀리서 지켜본 바로는 그 말이 전혀 사실무근은 아니다. 군 복무 30개월 동안 폭발물 사고로 사람이 다쳤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못 들었다. 불발탄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일부러 폭발시킨 것은 간간이 봤지만 말이다.
이번처럼 화산 폭발 같은 자연 재난이든, 바이러스 같은 인재든 남한의 운명을 걸고 장난치는 영화에서 미국은 종종 (혹은 매번?) 남한 사람 다 죽어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릴 것 같은 냉혈한으로 등장한다. 어찌 되었든 미국은 우리의 ─ 영원까지는 아니더라도 당분간은 ─ 유용한 동맹국인데 왜 관객의 분노를 사는 악당 역을 맡아야 할까? 중국이 방해 공작을 펼치는 가운데 남한과 미국이 연합 작전을 펼쳐 백두산 임무를 수행하게 했다면 어땠을까?
재난영화이니만큼 이야기는 크게 기대할 것이 없고, 실제로도 별거 없다. 하지만, 수준 높은 CG가 장엄하게 연출하는 스펙터클한 재난 장면이 가슴을 짓누르듯 선사하는 박진감과 남한의 멸망을 코앞에 둔 비관적인 설정만으로도 감상의 묘미가 있다. 여기에 예능 프로를 보는 듯한 이병헌과 하정우의 톡톡 튀는 연기 대결이 MSG 같은 감칠맛을 더해주니 감상의 묘미는 배가 되고도 아주 조금 더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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