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뱀파이어 호텔(Tokyo Vampire Hotel, 2017) | 이 엿 같은 세상을 쓸어버리고 싶다면
<고대의 피로 숙성된 22년산 인간 포도주> |
새로운 뱀파이어 종족인 코르빈 족에 밀려나 지하 깊숙한 곳에 갇히게 된 드라큘라 족은 고대의 피를 물려받은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언서엔 고대의 피를 물려받은 아이는 무한함 힘을 가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2021년 도쿄, 그랜드 크로스가 일어났던 1999년에 태어나 고대의 피를 마신 구원자가 22번째 생일을 맞이하게 된다. 예언에 의하면 이 전설의 피가 무르익으려면 22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이 피를 둘러싼 드라큘라 족과 코르빈 족의 싸움이 시작되려 한다.
<코르빈 족과 드라큘라 족 사이에 끼는 저주받을 운명을 타고난 그녀> |
이렇게 엎지른 물처럼 대강 써놓고 보니 「도쿄 뱀파이어 호텔」은 단순한 이야기로 꾸려나가는 단순한 공포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이 드라마에도 일본산 콘텐츠 특유의 기발함을 가장한 역겨움을 엿볼 수 있어 심신이 피로한 사람이나 임산부는 아주 약간은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직설적인 창작 태도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대로 거침없이 표현한다는 점에서는 높이 봐줄 만하지만, 때론 ‘해괴망측함’ 정도는 가볍게 넘어서고 ‘변태’라는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기괴한 창작 욕구는 ‘마루타’, ‘난징대학살’ 등과 같은 역사적 사건들과 연관 짓지 않을 수가 없다.
‘마루타’, ‘난징대학살’ 같은 짓도 서슴없이 저지르고 이후에도 양심의 가책을 일절 느끼지 않는 민족만이 만들 수 있는 콘텐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그 정도로 심하다는 말은 아니다).
<'찌찌'가 아니라 '피'를 마시는 것!> |
드라마 시작할 때마다 ‘보는 이에 따라 일부분 부적절하게 느낄 수 있다’라는 경고가 매번 등장한다. 이것은 폭력적인 장면을 예고하는 형식적이거나 잔인한 호기심을 부추기려는 음흉한 의도로서 일종의 미끼 같은 경고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 「도쿄 뱀파이어 호텔(東京ヴァンパイアホテル)」을 감상하기 전에 이것이 단지 경고에서만 그치지는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아둘 필요가 있다.
잘 만든 공포영화를 볼 때 느낄법한 살 속으로 스며드는 으스스한 무서움은 없지만, 마치 적군을 대량 사살하는 현장을 억지로 지켜보는 듯한 거북한 장면들이 ─ 보는 사람의 비위에 따라 다르겠지만 좀 과장해서 표현하면 ─ 욕지기질을 일발 장전시키게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런 여자가 침대에서 당신을 기다린다면?> |
드라마 속 호텔 레퀴엠은 살아 있는 뱀파이어의 신체(그중에서도 하체)로 운영된다는 흉측한 공학적 설계를 가졌지만, 실상은 꽤 아담하다. 원색적인 색채로 구성된 방은 마치 러브호텔을 보는 듯한데 여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호텔 레퀴엠은 코르빈 족이 야심 차게 준비한 ‘인간 혈액 공장’이다. 그들은 성욕이 왕성한 젊은 남녀들을 호텔로 초대한 다음 기가 막힌 제안을 한다. 그들은 젊은 남녀들이 일하지 않아도 의식주와 각종 여가 활동 등 안락한 삶을 책임질 것이며, 단지 끊임없는 섹스로 사람을 생산하고 그와 함께 주기적으로 헌혈만 해주면 되는 것이다(남자에겐 판타지 같은, 여자에겐 악몽 같은 제안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왜 호텔에 초대된 사람들이 뱀파이어의 제안에 응해야 하나? 왜냐하면 세상은 핵전쟁으로 끝장났으니까.
<과연 그들은 뱀파이어의 제안을 수락할까?> |
나라면 결코 거절하지 못할 제안이지만, 어디 사람의 변덕스러운 ‘자유 의지’란 것이 그렇게 호락호락한가?
사람은 설령 감옥일지라도 그것이 자신이 선택한 삶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감옥 같은 삶에서도 소소한 행복을 찾아내는 놀라운 정신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황제에 버금가는 호화로운 삶이라도 자신이 선택한 삶이 아니라면 부자유를 느끼다가 결국엔 반항하기에 이른다.
호텔에 초대된 젊은이들은 어떨까? 안락한 감옥 생활을 받아들일까? 아니면 치열한 생존 경쟁이 펼쳐지지만 그래도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고자 뱀파이어에 맞설까? 여기엔 약간의 반전이 있어 더는 주절거리기는 어렵지만, 결국 우린 환경을 바꾸기보다는 그 환경에 맞추는 것이, 즉 체념이 더 나은 삶일 수도 있다는 것을 고통과 슬픔과 피를 본 후에 깨닫게 된다.
보는 이에 따라 난해함으로 난잡함을 위장하고, 현란함으로 조잡함을 감춘 장황하게 유치한 드라마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엿 같은 세상을 쓸어버리고 싶을 때, 구역질 나는 진지함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추천할 수 있는 드라마다.
끝으로 드라마에서 정말 세상이 끝장나냐고 궁금해한다면, "빠가야로, 세상이 끝날 리가 없잖아."라고 대답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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