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6적방객(1006的房客) | 과즙처럼 달콤하지만?
대만 드라마는 처음이다. 닭살이 오소소 돋을 정도로 로맨스 향기가 묻어나오는 드라마도 마찬가지. 영화도 로또 당첨만큼이나 나하고 거리가 먼 로맨스 장르는 바퀴벌레 보듯 슬금슬금 피해 왔는데, 어찌하여 로맨스를 보게 되었을까?
한마디로 짤막한 소개 글에 속았다고 할까나? 다시 말하면, ‘살인 사건’과 ‘타임슬립’이라는 키워드에 완벽하게 낚인 것이다. 두 키워드 전부 내가 좋아하는 ‘추리’와 ‘SF’ 장르를 대표하는 단어들이다. 고로 난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긴장감과 박진감 넘치는 추리물을 내심 기대하며 ‘1006적방객’ 1편을 재생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아니 웬걸, 이야기 • 연기 • 연출의 조잡함과 유치함과 어설픔의 삼위일체 등 뭔가 대충 만든 것 같은 조야한 분위기가 나를 곤혹스럽게 했다면, 앞뒤 재보지도 않고 이 드라마를 선택한 나의 경박함은 머리카락을 죄다 뜯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후회막급이다. 그나저나 무쓰밍의 첫인상에서 80년대 홍콩영화에 등장하는 조폭 조무래기를 떠올린 것은 나뿐인가?
아무튼, 1편을 보고 난 느낌은 딱 이거였다.
“아, 이래서 대만에서 한국 드라마가 인기가 있구나!”
그래도 끝까지 보게 된 첫 번째 곡절을 말하자면, 일단 중국어 특유의 나긋나긋한 성조(특히 좋은 음성을 가진 여성의 목소리)가 자아내는 전통 악기 같은 독특한 음조가 듣기 좋아서이다. 시에시닝(谢欣颖: 청자러 역)과 류유징(刘宇菁: 청자러 친구 역)의 살짝 토라진 코맹맹이 목소리가 성조를 타면서 느슨하게 파동치는 소리는 참으로 달콤하다. 남자라면 딱 빗방울 한 개가 고일락 말락 한 보조개를 곁들인 시에시닝의 미소도 감상 포인트다. 당연히 그녀들이 하는 말의 내용은 모르지만, 그 내용을 모르기에 중국어를 마치 음악을 듣는 것처럼 감상할 수 있다. 이게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이런 유별난 취향 때문에 앞으로도 중국어 드라마는 꾸준히 볼 것 같다.
두 번째 곡절은 사람의 뇌는 적응력이 강하고, 그 적응력은 주인장의 의지와는 달리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뜻하지 않게 발동하여 뇌 주인을 당혹게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평생 한 우물만 파면서 초등학교 교과서에 심취한 사람이 고등학교 교과서를 이해하려면 부단한 인내와 각고의 노력이 따라야 가능하며, 때에 따라선 무덤까지 가지고 가서 공부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반대는? 보통의 학력을 가진 성인이 갑자기 동화책을 보면 처음엔 유치한 생각이 들지만, 무심결에 읽다 보면 ‘동심’, ‘추억’, ‘기분전환’, ‘힐링’ 등 그럴듯한 변명거리를 찾아내면서 재미나게 읽기도 한다. 나 역시 「1006적방객(1006的房客)」을 보면서 그러했다.
처음엔 조금은 유치하다고, 조금은 밋밋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일본, 영국, 미국 드라마와는 뭔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대만 드라마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한두 편 보게 된 것이 방심의 밑거름이 되었고, 결국 나의 뇌는 곧 적응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내가 드라마에 기대하는 수준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006적방객」에 맞아떨어지는 순간 바보같이 눈물을 질질 짜는 날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점들 때문에 끝까지 감상하긴 했지만, 막이 내리고 난 후 잔잔한 울림이 남는 그런 드라마는 아니다. 마지막 편까지 보고 나면 ‘국숫집의 섹시한 주인이 만들어주는 국수 맛은 어떤 맛일까?’, 그리고 드라마에 간접광고로 허벌나게 등장하는 ’음료수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는 하등 쓸데없는 궁금증이 입맛을 다시게 할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괜스레 갈증이 나고 배가 고파진다(사람은 참으로 이렇게 단순하다). 그래도 가볍게나마 기분전환 정도는 될 것이다. 사람이 매시간 진지할 수 없는 것처럼 때론 골치 아픈 드라마보다는 가벼운 느낌의 드라마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참고로 드라마에 등장하는 이들의 활력과 건강과 갈증을 해결해주는 주스는 一日蔬果100%蔬果汁(冷藏)라는 100% 무설탕 과일 냉장 주스다. 가격은 400mL 기준 23위안(4,000원 정도).
과즙 음료수처럼 달콤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아쉽게도 그 과즙은 순도 100%가 아니라 정제수와 과당과 인공색소로 범벅된 과즙 흉내만 낸 싸구려 가공식품 수준이라는 것이 「1006적방객(1006的房客)」의 흠이라면 흠이랄까? 또한, 강력한 동기나 박력이 느껴지지 않는 살인 사건도 흡입력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치정이 얽힌 살인이라면, ‘죽으면 죽었지 너 없이는 못 살아!’ 같은 강박에 가까운 집념 같은 불타는 사랑을 보여줘야 하는데, 너무 밋밋하다. 살인 사건도 밋밋하고, 사랑도 밋밋하고, 연기도 밋밋하고. 오직 청자러와 커전위의 티격태격 알콩달콩한 사랑만이 소소한 감흥을 전할 뿐이다.
끝으로 「1006적방객」에 한마디 더 하자면 매일 잠자리에서 백마 탄 왕자님의 품속으로 강아지처럼 파고드는 공상을 질리도록 즐겨왔던 사랑에 굶주린 여자에겐 달곰한 공상을 불러일으키기에 딱 좋은 드라마다. 잘 생기고 잘 나가는 검사와 변호사 사이에서 사랑의 줄다리기는 하는 청자러야말로 많은 여자가 꿈꾸는 로맨스 중의 로맨스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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