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몽키즈(12 Monkeys) | 어딘지 모르게 낡은 테이프처럼 늘어지는 이야기
드라마 「12 몽키즈(12 Monkeys)」는 10, 20년 전과는 달리 이제는 별로 신선할 것도 없는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드라마다. 그래도 SF 장르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우연히 찾은 기회를 그냥 놓치기는 싫다. 특히 지금보다 좀 더 젊었을 적엔 종종 시간여행에 대한 나름의 공상을 펼치면서 우주를 종횡무진 활동해 온 나로서는 딱히 마다할 이유도 없다. 과거의 유치찬란한 공상을 새록새록 떠올려보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단순하다. 2043년, 즉 지금(2020년)으로 봤을 때 미래의 한 집단이 치명적인 바이러스 때문에 죽게 될 70억 인류를 구할 사람을 과거(제임스 콜)로 보낸다는 내용이다. 여기엔 과거로 간 사람이 임무에 성공하면 70억도 되살아나고, 그와 동시에 2043년의 지옥 같은 현실도 바로 잡힐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SF 소설이나 과학 도서를 많이 읽어 본 눈치 빠른 사람은 알 것이다. 「12 몽키즈(12 Monkeys)」는 비교적 최근 콘텐츠에서 사용한 시간여행 개념과는 상반된 개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라는 것을 말이다.
과학적인 논지로 다루어지는 시간여행 개념은 보통 평행우주 이론을 근간으로 한다. 이것은 영화 「평행이론: 도플갱어 살인(Coherence, 2013)」에 아주 잘 우러나 있다(시간여행 소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평행우주 이론에 근거해 「12 몽키즈(12 Monkeys)」를 본다면, 콜의 임무가 성공한다고 해도 콜을 과거로 보낸 2043년의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왜냐하면, 콜이 과거로 이동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기 때문에 콜이 과거로 이동한 그 시점에서 ─ 평행우주 중 하나인 ─ 또 다른 현실이 분기되기 때문이다. 설령 그들이 그토록 바꾸고 싶어하는 과거로 콜이 이동하고, 콜이 임무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역사가 바뀐 시점을 기점으로 존이 살았던 미래와는 다른 역사가 분기되는 평행우주가 펼쳐져야만 한다. 존이 임무에 성공했다고 해서 바이러스 때문에 죽었던 70억 인구가 갑자기 되살아나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2 몽키즈(12 Monkeys)」는 평행이론에 따른 여러 현실 중 하나(즉, 드라마 측면에서 보면 콜이 경험한 과거가 아닌 다른 과거)가 아니라 콜과 존스 집단이 경험한 바로 그 과거 속으로 여행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고로 이야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고, 그 ‘반복’에 의지하다 보니 질질 끄는 경향이 짙다. 딱 한 번 만난 아들 ─ 그것도 친자식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는 ─ 때문에 70억 생명을 단박에 미련 없이 포기하는 남자까지 등장시켜서 이야기를 억지로 밀고 나가야 했을 정도니 오죽하랴? 어차피 이런 식의 드라마는 하나의 임무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건들을 꿰매듯 이어붙여 가면서 연명하는 것이 특기라고 할 수 있으니 이를 탓하는 내가 지나칠 수도 있다(그래서 드라마 워킹데드도 보다가 지쳐버리고 말았다).
고로 「12 몽키즈(12 Monkeys)」는 나처럼 평행이론에 입각한 시간여행 개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겐 복잡하다기보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혼란스럽고 조잡한 드라마로 비칠 수도 있다. 반면에 우리가 경험한 과거와 경험할 미래로 이동한다는 다소 낡은 시간여행 개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겐 그럭저럭 볼만할 것이다.
시즌1은 호기심만으로도 그런대로 봐줄 만했지만, 시즌2부터는 그냥 타성 때문에 봤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시즌2의 마지막 편을 감상하고 난 직후에는 이대로 드라마의 결말을 매듭짓고 나머지는 시청자의 상상력에 맡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알고 보니 시즌3, 시즌4도 있다. 당연히 나머지 시즌은 볼 필요도 없고 볼 생각도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특별히 할 것 없는 사람들에겐 가볍게 시간 보내기는 좋은 드라마다.
끝으로 그렇게까지 해서 70억을 구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던져본다. 당신이 카타리나 존슨이나 제임스 콜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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