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오강호(新笑傲江湖, 2018) | 품평하는 재미가 쏠쏠한 무협 드라마
"왜 평화롭게 살지 못하고 서로 다투는 걸까?"
올드팬이라면 고전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에서 배우 강수연의 삭발이 항간의 화제가 되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처럼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 삭발이 간간이 뉴스거리가 되곤 하는데, 최근 감상한 중국 무협 드라마 「신소오강호 2018(新笑傲江湖)」에서는 주인공 한두 명이 아니라 떼거리로 삭발을 감행했다. 영호충을 애틋하게 사모하는 의림을 비롯한 항산파 비구니 모두, 그리고 비록 마교에 속한 몸이지만 의리 하나만은 죽여주는 전백광이 영호충과의 내기에서 져 의림의 제자가 되고 나서 역시 삭발한다. 의림이나 전백광은 비중이 높은 배역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항산파의 나머지 제자들도 무슨 투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모두 삭발했다. 혹은 진짜 비구니들을 캐스팅한 것일까? 아무튼, 스님이나 비구니처럼 삭발이 필요한 배역을 맡은 배우들 모두 진짜로 삭발을 해버렸다. 당연히 인자함의 끝판을 보이는 방증대사도 가발이 아닌 진짜 삭발이다. 열연을 향한 배우들의 놀라운 의지와 열정에 반해 감히 몇 자 적어보고자 키보드를 두드리게 된 것이다.
<그냥 저 주먹에 맞아 죽고 싶어라> |
무협 소설의 대가 김용의 작품은 시도 때도 없이, 그리고 똑같은 작품들이 반복적으로 드라마화될 정도로 아시아권에서는 확실한 (대박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선에서는) 흥행 보증수표이다. 나처럼 원작을 이미 몇 번이나 읽은 사람도 이번에는 영호충 같은 영웅이나 황용 같은 미녀 역할을 어떤 배우들이 어떤 연기력으로 맡았을까 하는 궁금증에 몇 번이고 다시 보게 된다. 사실 김용 소설이나 그것을 드라마한 영상이나 몇 번을 읽고 감상해도 질리지 않는 내용도 일품이지만, 드라마 같은 경우 원작의 등장인물과 그 배역을 맡은 배우들이 잘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 혹은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그렸던 인물과 잘 어울리는지 품평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연인이라기보다는 사이 좋은 남매> |
그런 면에서 「사조영웅전(射雕英雄传)」 2017년 작품에서 황용 역할을 맡은 이일동(李一桐)은 정말 최고 중의 최고 배역이다. 예쁜 외모뿐만 아니라 톡톡 튀고 재기 넘치는 황용의 이미지와도 너무나 잘 어울린다. 한편 어수룩한 곽정 역할을 맡은 양욱문(杨旭文) 같은 경우 처음에는 좀 이질감이 있었지만, 보면서 익숙해질 정도는 되었다.
한편 「신소오강호 2018(新笑傲江湖)」에서 영호충 역을 맡은 정관삼(丁冠森)은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적응이 안 되는 최악의 배역이었다. 왠지 류덕환을 떠올리게 하는 그의 앳되고 어딘지 덜 여문 달걀처럼 깨지기 쉬운 외모는 걸걸하고 호탕한 영호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임영영 역할을 맡은 고현정을 연상케 하는 설호정(薛昊婧)의 성숙한 외모도 마찬가지다. 화사한 미모 속에 영악함을 숨기기는커녕 그녀의 너무 진지한 미모는 두 사람이 같이 있으면 마치 영호충이 남동생처럼 보인다.
차라리 남봉황 역할을 맡은 유가동(刘珈彤)이 더 돋보인다. 원작에서는 그렇게 큰 비중이 있는 인물은 아니지만, ‘신소오강호’에서는 동방불패의 짝으로 등장하는데, 남봉황은 임아행 앞에서 유일하게 할 소리 다 하는 여장부다운 시원시원한 기개를 선보인다. 또한, 의림 역할을 맡은 강탁군(姜卓君)의 바람에 홀려 흐늘거리는 버들가지 같은 가녀린 외모와 귀여운 연기가 일품이다. 특히 삭발해도 이렇게 매력적인 여자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늙은 내 심장이 허덕일 정도로 놀라운 일이다.
<밀어야 할 사람은 다 밀었다> |
‘신소오강호’는 기존처럼 원작을 그대로 외운 듯한 똑같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원작의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인연이나 기연을 조금 더 앞부분으로 끌어당김으로써 시작부터 주요 인물이 모두 열거된다. 일례로 영호충과 임영영의 만남, 영호충의 임아행 구출, 동방불패의 등장 등이 그러하다. 그럼으로써 시청자는 지루함을 덜을 수 있으며, 드라마는 원작의 그늘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신소오강호’가 ‘사조영웅전(2017)’보다 확실하게 나은 점이 있다면 액션 장면이다. ‘사조영웅전(2017)’ 같은 경우는 대결이 시작되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 대역들이 등장하지만, ‘신소오강호’는 최대한 배우들이 액션을 소화하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당연히 대역보다는 검을 다루는 모습이 어설프고 부자연스럽지만, 그 어설픔 속에 뭔가를 보여주려는 열정이 깃든 것 같아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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