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으로 가는 길(Road to Cheongsong Prison, 1990) | 법이 말살하고 사회가 묵인한 인간성 퇴보로 가는 길
"… 감식을 당했는디, 오늘 한번 죽을 텨?" - 감방장 "에라, 니가 죽이던지 살리던지 맘대로 해라" - 호주기
비행기처럼 빨리 달리는 것이 아니라 교도소에서 석방되기가 무섭게 빠르게 다시 돌아온다는 의미로 비행기 이름인 '호주기'라는 별명이 붙은 이형철 노인.
거진 환갑이 다되어 출옥한 노인은 일자리도 얻지 못하고 마땅히 갈 곳도 머무를 곳도 없는 상태에서 배는 고프고 수중에 돈은 한 푼도 없고, 그래서 또다시 교도소 생각이 날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마침 염소 한 마리가 눈에 띄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염소를 훔친다. 그리고 바람대로 덜미를 잡혀 경찰서로 인계된다.
그런데 새로 생긴 악랄하기 그지없는 사회보호법은 염소 한 마리를 훔친 노인을 전과 38범이라는 이유로 징역 12년을 선고한다. 객사하더라도 죽음만큼은 밖에서 맞이하고 싶은 노인의 남루한 소망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 나라의 진짜 수준을 알고 싶으면 이따위 저따위 통계는 제쳐놓고 가장 낮은 소득 계층, 꺼리는 직업 계층, 그리고 죄수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지를 보면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날까? 돼지에게 진주목걸이를 걸어주고 양복을 쫙 빼 입히고 손에는 휴대전화기를 쥐여주고 다리에는 명품 구두를 신겨준다고 사람이 될까? 의식이 발전하지 못하면 100년이 지나도 인간성은 회복되지 못하고 인간적인 삶도 바랄 수 없다. 한국인이 경제력에 비해 행복지수가 턱없이 낮은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무튼, '한국의 피카소'이자 기인 중광 스님의 연기 자체가 설법인, 앞으로 한국 영화사에서 그 누구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명작.
이에 몇 마디 더 지껄인다면, 부자로 사는 것도, 고만고만하게 사는 것도, 감옥에서 썩는 것도, 다 사람이 사는 삶이고 인생이다. 그나마 이러한 극과 극의 부조리 속에서도 지진아 같은 불안한 질서가 그나마 유지되는 것은 부자건 거지건 권력이 있건 없건 결국 언젠가는 다 죽는다는 유일한 위안이 존재하기 때문. 그런데 미래에는 목숨도 돈과 권력에 비례하여 증가할지도 모르니, 150살을 사는 부자와 유치원도 못 가보고 굶어 죽는 아이 사이의 우주를 가로지르는 아찔한 틈새는 어찌 채워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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