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 클럽(The Midnight Club S01, 2022)
자정 클럽(The Midnight Club)
어둠이 내려앉은 도서관, 그 중앙에는 붉은 혀를 날름거리는 모닥불이 포근하게 타오르고 있다. 책장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무덤처럼 묻힌 고서들이 가득 차 있으며, 그 책들은 밤마다 자신들 앞에서 조잘대는 젊은이들이 곧 맞이할 죽음을 찬양하듯 조용히 침묵하고 있다. 모닥불의 따뜻한 빛이 죽음이 깊게 드리워진 젊은이들의 파르스름한 얼굴을 은은하게 비추는 가운데, 젊은이들은 고서들에 새겨진 오랜 이야기와 경쟁이라도 하듯 각자의 경험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노래한다. 이 모임의 이름은 그들이 모이는 시간에 힌트를 얻어 ‘자정 클럽(The Midnight Club)’이라고 불린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형식으로 진행되는 드라마 「자정 클럽(The Midnight Club)」은 크리스토퍼 파이크(Christopher Pike)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되었고, 수수께끼의 의사가 운영하는 시애틀 외곽의 브라이트클리프 호스피스(Brightcliffe Home)에 거주하는 불치병에 걸린 8명의 젊은이를 다루고 있다. 그들은 매일 밤 자정에 만나 무섭고 오싹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규칙을 하나 정했는데, 그 규칙은 가장 먼저 죽는 사람은 저세상에서 남아 있는 다른 사람에게 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일론카와 그녀의 새 동료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사람은 일론카(Iman Benson)다. 갑상샘암 말기를 선고받은 그녀가 인생의 여정을 마무리할 장소로 선택한 곳은 다름 아닌 브라이트클리프. 그녀가 브라이트클리프를 선택한 이유는 웅장한 고딕 양식 저택이 발산하는 매력 때문이 아니라 저택에 얽힌 어두운 역사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브라이트클리프엔 따뜻하고 이타적인 성격을 지닌 케빈(Igby Rigney), 반항적이고 신랄한 유머 감각을 가진 아냐(Ruth Codd), 냉소적이고 지적인 회의주의자 스펜서(Chris Sumpter),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깊은 신앙심을 보여주는 산드라(Annara Cymone), 낙천적이고 활발한 공상허언증 환자 체리(Adia), 조용하고 사색적인 성격의 나츠키(Aya Furukawa),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력을 보여주는 냉철한 아메시(Sauriyan Sapkota) 등 일론카보다 먼저 사형 선고를 받은 7명의 동료가 기다리고 있었다.
브라이어클리프의 비밀
줄리아 제인(Larsen Thompson). 그녀는 60년대 브라이어클리프에 입원해 있던 환자 중 한 명으로 병원에서의 갑작스러운 실종 후 완치되어 돌아온다. 이 기사를 접한 일론카는 시작도 못 한 대학 생활에 대한 꿈을 기어코 경험해 보겠다는 희망과 의지로 브라이어클리프를 선택한 것이다.
일론카는 줄리아 제인의 실종과 복귀, 그리고 그때 그녀에게 일어난 기적 같은 치유가 (한때 브라이어클리프에 거주했던) 비밀 종교 단체 파라곤(Paragon)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 등을 집요하게 추적한 끝에 미스터리를 밝혀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동료들을 설득해 줄리아 제인을 치유했다고 생각되는 비밀 의식을 진행한다. 과연 일론카의 의식은 성공할까?
자정 클럽의 또 다른 미스터리, 그림자와 유령들
브라이트클리프에 입원하기 전 아메쉬는 1년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고, 그는 브라이트클리프에서 1년을 넘게 생존한다. 그것을 동료들과 축하했던 게 불과 며칠 전이었던 어느 날 밤, 그는 한쪽 눈이 잘 안 보인다는 걸 깨달았다. 교모세포종을 앓고 있는 그는 시력에 문제가 생기면 남은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문제가 생긴 시력으로 인해 사각이 생기고 그 사각은 커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그림자가 보인다고 말하는 아메쉬. 그 그림자는 사람 형상을 하고 있으며 움직이기도 했다. 그제야 아메쉬는 일론카가 보았다는 ’움직이는 그림자‘가 약의 부작용에 따른 환영이 아니란 걸 깨닫는다.
으스스한 분위기에 비밀스러운 사연도 많은 저택이라면 응당 빠질 수 없는 존재가 유령이다. 이것은 「자정 클럽(The Midnight Club)」에 등장하는 미스터리 중 하나인데, 그들 중 몇몇 눈에만 보이는 것으로 보아 약의 부작용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특히 ’배가 고프다‘라고 호소하는 유령은 뭔가 사연이 있는 듯한데, 시즌1에선 끝내 밝혀지지는 않는다. 아마도 (일론카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과 먼저 죽은 동료는 저승에서 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규칙과 함께) 시즌2를 위해 남겨준 것 같은데 아쉽게도 시즌2 제작은 취소되었다고 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브라이어클리프 저택의 고풍스러움은 ’유령‘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시한부 삶을 사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라서 마뜩잖았다. 우리 모두 죽어가는 처지인 건 매한가지인데, 세뇌하듯 그걸 자꾸 연상시키는 것 같아 우울하고 두렵고 슬프다. 그런 무거운 감정들이 마치 바닷속 깊은 심연에 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무겁게 날 짓누른다. 하지만, 서로를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동료로서 마주한 각양각색의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남은 생을 연료로 타오르는 듯한 장작불을 마주한 채 삶과 죽음, 사랑과 상실, 희망과 두려움, 이루지 못한 꿈과 냉혹한 현실의 경계를 탐구하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커다란 가족이 되어가는 교과서적인 이야기는 (알면서도 속는 거짓말처럼) 역시 훈훈했다.
은둔적인 삶을 동경하는 나에겐 도시를 완전히 벗어난 배경도 좋았고, 저택의 초자연적인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을 연기한 주연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다. 정말이지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싶은 최고의 장소와 최고의 동료들이다! 아무튼, 지레짐작에 겁먹고 실망해서 감상을 포기했다면, 조금은 후회할 법한 드라마였다고 할까나?
끝으로 죽어간다고 해서 삶을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니다. 정말 지당한 말씀이다. 하지만, 일론카처럼 ‘대체의학’을 넘어 미신 같은 이상한 의식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만약 당신의 가족이나 가까운 동료가 그런다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
0 comments:
댓글 쓰기
댓글은 검토 후 게재됩니다.
본문이나 댓글을 정독하신 후 신중히 작성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