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롤(Crawl, 2019) | 사람이 빠르냐? 악어가 빠르냐?
<차가 뒤집히고 나무가 뿌리째 뽑히는 허리케인이 오는 중> |
소비자의 지갑을 노리는 원플러스 마케팅처럼 초강력 ‘허리케인’에 무시무시한 ’악어’를 더해 심드렁한 관객의 관심을 끌려는 재난영화. 주변에 ‘허리케인’과 ‘악어’ 둘 중 하나만 있어도 충분히 ‘재난’이므로 영화 「크롤(Crawl)」의 주인공들이 겪어야 할 사투는 보는 이에게 점입가경을 예고할만하고 실재도 꽤 부합하는 듯.
재난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감성팔이 요소가 짧은 상영시간에 쫓겨서인지 상당히 절제되어 있어 군더더기 없는 긴장감과 재미를 선물하는 이 영화는 87분 동안 사고력을 강아지 수준 정도로 낮출 수 있다면 악어의 이빨처럼 짧고 강력할 수도 있다.
<0.02초 차이로 1등을 놓친 헤일리> |
<그러나 0.02초 차이로 목숨을 건진 헤일리> |
영화는 담쟁이덩굴에 주렁주렁 매달린 늙은 호박 같은 둔중한 엉덩잇살이 투실투실 만개한 수영장에서 결승선을 향해 물개처럼 헤엄치는 주인공 헤일리(Kaya Scodelario)의 시합 장면으로 시작한다.
상상력이 미천한 사람은 다소 엉뚱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장면이지만, 사실 이 장면은 앞으로 펼쳐질 사람과 악어의 (일방적으로) 목숨을 건 헤엄치기 대결을 예고하는 장면이다.
기초적인 뜀박질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면 지상에서 악어에게 잡아먹힐 일은 없지만, 물속에선 다르다. 과연 물에 빠진 사람은 악어보다 빠르게 헤엄칠 수 있을까? 이론적으론 불가능하지만, 우리의 헤일리는 가까스로 해냈다!
이런 인간 승리 같은 기적이 가능한 이유는 영화이기도 하지만, 금메달을 걸고 하는 시합과 목숨을 걸고 하는 시합이 결코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재난 전의 부상과 재난 중 입은 부상으로 만신창이가 된 헤일리 아빠> |
<물이 조금씩 차오르는 지하실에서 아빠와 떨어진 헤일리> |
‘허리케인’과 ‘악어’를 조합한 「크롤(Crawl)」이라고 해서 긴장의 꽃을 피우고 그럼으로써 관객의 피를 말리는 사건의 시발점이 다른 재난영화와 특별히 다른 것은 없다.
허리케인이 마을을 쓸어버릴 것이라는 기상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대피하기는커녕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자기 볼일 보는 고지식한 아빠와 평소의 불화는 잠시 제쳐두고 위험에 빠질 수도 있는 아빠를 확인하러 가는 착하고 용감한 딸. 그리고 영리한 강아지 슈거의 도움으로 어렵게 상봉한 부녀를 질투하듯 덮친 재난. 왠지 뻔한 이야기처럼 들리는가?
<악어의 필살기 ‘공포의 회전’과 고투하는 헤일리> |
<재난영화치곤 민간인 희생자는 그리 많지 않다> |
그런데도 의외로 만족스러운 재미와 긴장감을 준다. 이것은 큰 기대를 걸지 않은 나의 현명한 마음가짐에서 오는 작은 보상일 수도 있지만, 관객을 맥락 없이 놀래주거나 다짜고짜 충격적인 장면으로 몰아붙이는 그런 성의 없는 연출이 아니라 ‘익사’라는 우발적 공포와 ‘폐쇄’라는 정신적 공포와 ‘악어’라는 현실적 공포 모두를 한 번에 떠올리게 하는 설정이 나름 효과를 발휘했다고 할까나? 우리의 세계가 물에 잠기고 그럼으로써 연결 고리가 끊어져 있었던 악어가 우리의 세계로 침범했을 때, 인류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전쟁, 바이러스 같은 현대적인 공포가 아니라) 본성에 각인된 원시적인 긴장감과 공포를 일깨운다고 할까나?
영화의 배경이 플로리다였던가? 아무튼, 동네가 참 푸근하다. 비가 많이 온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서먹서먹한 관계 좀 해소하라고 악어하고 대면시켜주는 동네라니, 자연 친화적일 뿐만 아니라 일상의 권태를 벗어날 수 있는 익스트림 스포츠를 반강제지만 공짜로 떠먹여 준다는 점에서 훈훈하고 박진감 넘치는 동네이지 않은가? 거기다 이 치열한 생존 투쟁에서 살아남으면 ‘악어가죽’이라는 푸짐한 보상도 있으니 홍복 같은 동네다.
그런데 신도 참 얄궂지. 열심히 살려는 헤일리의 집보단 열심히 살려는 사람들을 짓밟는 크렘린궁에 저런 일이 일어났다면 많은 사람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뻐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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