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커플(The Couple, 2014) | 피는 물보다 진하다!
<결혼한 부부라면 누구나 이랬던 한때가 있었을 것> |
여자라면 누구라도 질투할 성대한 연회와 많은 사람의 축복 속에 갓 결혼한 신부 아옴. 그녀는 사랑하는 신랑 칸과의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환희에 젖어있어야 하지만, 아니 웬걸. 연회에 모인 뭇여자들이 따발총처럼 쏘아대는 시샘이 그녀의 머리를 관통이라도 했는지 갑자기 찾아온 두통으로 기분이 안 좋아진 아옴은 장관의 축사를 뒤로하고 혼자 집으로 돌아간다.
대궐처럼 넓은 저택에서 고적하게 담배를 태우던 아옴은 지진도 태풍도 아닌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바닥에 떨어진 액자와 마주친다. 유혹하듯 아옴의 금빛 드레스 앞에 떨어진 액자와 욕조 바닥에 쓸쓸하게 남겨진 반지, 그리고 귀신처럼 등장한 갓 죽은 시타 형님.
이 무슨 불길한 징조인가?
<아옴 앞에 미끼처럼 나타난 죽은 자의 반지> |
저주가 벼락처럼 내리치듯 미지의 힘으로 곤두박질한 액자, 언제라도 이승으로 건너올 수 있는 연결고리처럼 남겨진 죽은 자의 반지, 그리고 자살했다고 알려진 사람의 갑작스러운 출현은 이후 불행한 일이 겹경사처럼 연달아 들이닥칠 것이라는 숙명이나 다름없는 예고다.
폭풍 전의 고요 같은 불길함이 엄습해 오는 영화 「더 커플(รัก ลวง หลอน)」의 도입부는 참으로 좋았다. 그리고 애달픈 긴장감과 쓸쓸한 여운을 남기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한 마지막 장면도 괜찮았다. 그런데 영화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이 두 사이를 연결하는 부분은 많이도 싱겁고 심심하다.
<영화에서 가장 압권인 장면으로 여기까지는 참 좋았다> |
공포영화라 하면 인과 관계 같은 개연성은 둘째치고 관객에게 께름칙하고 소름 끼치는 인상을 주도록 노력할 법도 한데, 이 영화는 불교 국가인 태국산이라 그런지 업보적 색채가 뚜렷하다. 그래서 이야기는 특별하지 않다. 그래서 기승전결도 밋밋하다.
캐릭터 설정에 비하면 과도하게 젊은 등장인물들의 (여주인공을 제외하고) 밋밋한 연기에 비해 영화는 (공포영화치곤) 너무 진지하다. 죽음은 너무 청초하고 너무 느리고 조금 낯설다.
<새파란 나이에 사업을 물려받은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
얼핏 보면 원한을 품고 죽은 원혼이 복수를 위해 빙의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빙의(憑依), 억울하게 죽은 자가 산 사람의 몸을 빌려서라도 그 억울함을 호소하고자 하는 빙의는 원혼이 원하는 걸 전부 얻는다면 떠난다고 한다. 영화 같은 경우라면 복수를 완성하면 아옴의 육체에 빙의한 시타의 원혼은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옴의 육체에서 시타의 원혼이 떠나고 안 떠나고 상관없이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원혼은 화장실에서 볼일 다 보고 나온 사람처럼 할 일 마치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산 사람은 바로 죽을 요량이 아니라면 그 원혼이 일으킨 사달을 어떻게든 감내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갓 결혼한 둘 사이를 갈라놓은 것은 무엇일까?> |
칸은 비록 본인의 의지가 아닌 빙의 상태에서, 즉 선량한 아옴이 복수에 눈이 먼 원혼에게 이용당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어쨌거나 물리적으론 누나와 형을 죽인 아내 아옴을 예전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귀신에게 휘둘리는 바람에 만신창이가 된 아옴의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지치고 슬픈 눈에서 빗방울처럼 흐르는 한줄기 눈물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물보다 피가 진하다는, 사랑보다 피로 맺어진 혈연관계가 더욱 중요하다는 인간 본성의 거역할 수 없는 속성을.
빙의는 원혼이 하고 싶은 일을 모두 마쳤을 때도 떠나지만, 몸의 주인이 원혼에 저항할 만큼 강하면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떠난다. 어쩌면 칸은 빙의를 허용한 아옴의 나약함을 원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을 압축하면, 형수는 가족이 아니다! 사랑도 혈연 앞에선 시답지 않은 한갓 유행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시타는 왜 드레스를 한 벌 더 주문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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