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일검(武当一剑, 2021) | 맘 편하게 유적이나 감상하자
<사랑의 도피 중인 경경사, 하옥연 부부> |
양우생(梁羽生)의 소설 『무당제일검(武當第一劍)』을 처음으로 각색해 만든 정통 무협 드라마로서 누르하치가 호시탐탐 중원을 노리는 명나라 말기, 감히 사부의 딸이자 대사형과 정혼한 하옥연을 데리고 요동으로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 무당파 속가 제가 경경사는 출산을 앞둔 아내를 보살피기 위해 상금을 노리고 무술 대회에 참가했다가 누르하치와 그를 비밀리에 돕는 중원 고수 흑의인이 짠 계략에 걸려든다. 경경사는 매국노로 몰리다 끝내 사부까지 죽였다는 누명을 쓴 채로 살해당하고, 하옥연은 갓 태어난 아들 경옥경을 정혼자였던 대사형 과진군에게 맡기고 남편을 따라 자결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옥경이는 무협이라는 장르에서 태어난 남자 주인공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즉 부모의 억울한 죽음과 그 사연 뒤에 얽히고설킨 비밀을 차차 밝혀내고 더불어 원수도 갚아야 한다는 무척이나 고달프고 수고스러운 숙명을 한 가득 안고 태어난 셈이다.
<원숭이처럼 장난이 심한 옥경이> |
<별다른 인연 없이 갑자기 옥경의 친구가 되는 정교아> |
마치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의 장취산과 은소소 부부를 보는 듯한 경경사와 하옥연 부부, 그렇다면 경옥경은 장무기? 라고 말하기엔 옥경은 타고 난 장난꾸러기이자 말썽꾸러기다. 바보처럼 헤헤 웃기를 잘하는 그는 무공 수련 같은 힘든 일에 매진할 이유가 없다. 그에겐 뭔 짓을 하든 용서해 주는 사랑스러운 가족이 있고, 한편으론 무당 장인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을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태생에 얽힌 악몽 같은 비밀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이 하루가 멀다고 태평스레 장난질만 하고 있다면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겠는가? 옥경이가 성인이 되기를 코앞에 둔 어느 날, 그는 독사 같은 여자 상오랑이 비수처럼 던진 몇 마디 말에 의해 처음으로 자신의 태생에 대한 의문의 꼬리를 살짝 치켜들다가 흑의인의 계략에 의해 무당파가 와해당하는 큰 위기에 처하자 이때다 하고 각성하여 무협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면 응당 짊어지어야 할 ‘수련과 복수’의 책무를 짊어지게 된다. 그렇게 그는 절친 정교아와 함께 무너지는 무당파를 뒤로하고 부모의 억울한 죽음을 파헤치고자 요동으로, 소림사로 떠난다.
<죽을 고비를 넘긴 기연으로 비급을 발견> |
<강호의 삶은 눈물과 피가 마를 날이 없을 정도로 고달프다> |
곽정과 황용 커플을 보는 듯한 경옥경과 정교아 커플의 강호 모험이 시작되는 이 날부터가 드라마 「무당일검」의 진정한 시작이다. 그렇다고 김용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만큼 신명 나게 재밌는 것은 아니고, 여기서부터 그나마 볼만하다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둘이 모험을 떠나기 전까진 다소 지루하다는 것!
그뿐만 아니라 남자 주인공 경옥경 역을 맡은 유페인판(于非凡)의 연기는 경박하고 가볍다(도대체 중앙 드라마 아카데미에서 뭘 배운 거지?). 황용만큼 뛰어난 지모는 아니지만, 개방 인물인 할아버지에게서 들은 강호 세계에 대한 풍부한 간접 경험을 토대로 옥경을 (황용이 곽정을 보살피듯) 착실하게 내조하는 정교아 역을 맡은 차이비윤(柴碧云)의 깜찍한 연기가 나름 괜찮은 견인차가 된다(베이징 영화 아카데미 출신이라 좀 다른 것일까?). 사실 이 ‘정교아’라는 아가씨는 원작엔 없다. 아마도 무협 소설 특유의 남성적이고 진중한 분위기를 희극적으로 희석하고자 투입한 인물이지 않을까 싶다. 결과적으론 잘한 것 같다.
그래도 달랑 시체만 옆에 배치하고 살인자로 누명을 씌우는 등 초반 전개가 엉성한 바람에 시작부터 이탈자가 꽤 있을 것 같다. 옥경이가 모험을 떠나면서야 좀 활기가 생기지만, 주정뱅이의 갈지자걸음처럼 갈피를 잡기 어렵게 마구잡이로 전개되는 듯한 이야기는 마지막에 가서야 부메랑처럼 원점으로 돌아온다. 무협 액션도 별거 없으니 대놓고 추천하기는 민망한 드라마다.
<도둑처럼 생겼지만, 도둑질은 잘 못하는 과진군(불기 도장)> |
<고수처럼 생겼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동방량, 옆에는 옥경의 누나 남수령> |
드라마 「무당일검」엔 독특한 인물 두 사람이 있다.
도둑처럼 생겼지만, 막상 도둑질엔 소질이 없는 과진군(송지아룬, 宋佳伦)은 좀처럼 자기 뜻을 품을 생각조차, 혹은 품었더라도 펼칠 의지를 발휘하지 못하고 시종일관 우유부단하게 대세에 끌려다니는 것이 꼭 못난 우리를 보는 것 같아 왠지 모르게 가슴이 찡하다. 그래서 그럴까? 나쁜 짓을 했다고 해서 바로 내칠 수가 없는 묘하게 공감이 가는 그런 캐릭터다.
듬직한 것이 고수처럼 생겼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은(훗날엔 대성하지만) 검법광 동방량(저우항, 周航)은 돈에 환장한 우리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쉽게 속는 것처럼 검법의 유혹을 끝내 뿌리치지 못하고 의를 저버린다. 종종 탐욕 때문에 이성을 잃고 귀가 얇아져 사탕발림에 쉽게 현혹되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쓰라리다. 검법에 미친 그는 훗날 게슴츠레한 미모가 매혹적인 옥경의 누이 남수령(선자위, 孙佳雨)의 사랑을 마다하고 검법 수련에 매진하여 결국 천하제일검의 명예를 얻는다. 그의 말년은 동방불패를 보는 듯하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가 어떤 무공을 익힐는지는 쉽게 짐작이 갈 것이다. 장가를 갈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사악한 무공!!!
<유적이나 감상하자, 아마도 무당산???> |
<모든 사건의 원흉인 흑의인, 과연 그의 정체는?> |
현지 촬영을 고수하는 중국의 무협 드라마는 실내 장식이나 소품까지 특수 효과로 때우려는, 한마디로 화려하지만, 정나미는 떨어지는 요즘 영화와는 달리 영상 자체에 푸근한 정감이 있다. 마치 유적지를 둘러보는 듯한 고적하면서도 을씨년스러운 감상의 묘미가 있다고 할까나. 물론 중국 감독으로서는 모든 것을 특수 효과로 처리하는 것보단 현지 촬영이 더 싸게 먹힐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몽타주로서의 영화사가 특수 효과로서의 영화사로 전환하는 이 시점에 있어서 (결국 언젠간 배우도 가상 배우로 대체되는 1인 감독 영화 시대가 올 것이다) 현지 촬영의 운치가 있는 중국 드라마는 자연의 풍치를 잃어버린 도시인에겐 괜찮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래서 자연을 무한히 동경하는 나 같은 사람은 「무당일검」처럼 이야기 전개도 배우들의 연기도 다소 엉성하고, 특수 효과는 2000년대 초반의 작품처럼 편안해 보이는 등 그 어느 부분도 특별하게 칭찬할 만한 것은 없는 고만고만한 드라마일지라도 장삼봉의 정기가 실려 있고 장무기와의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는 무당산에서 촬영되었다는 것 하나만 보고 끝까지 감상했다.
끝으로 한 가지 더, 사실상 드라마의 긴장감을 이끌어가는 흑의인의 정체는 우물 안에 있다. 고로 흑의인이 누구인지 골똘히 추리해보는 것도 지루한 감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묘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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