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삼대째(江戸前の旬) | 손맛이 밸 수밖에 없는 요리, 초밥
<이제는 사라진 츠키지 시장, 한국으로 따지면 노량진 시장?> |
내 블로그의 갈피 없는 영화 • 드라마 리뷰를 유심히 본 보살 같은 분이 계신다면, 약간 편향된 장르(1. 공포 >> 2. 미스터리 >> 3. SF….)를 진즉에 눈치챘을 것이다. 또한, 기아와 굶주림이라는 어제까지의 세계가 우리 유전자에 남긴 식탐과 폭식을 마치 혼자만이 떨쳐낸 양 음식을 주제로 한 영화나 드라마도 거의 전멸 수준이다. 순간적으로 기억을 더듬어보면 음식을 주제로 한 영화 • 드라마 리뷰는 「심야식당」과 「맛있는 급식」 정도가 전부인 것 같다.
그것은 내가 밥을 먹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는 노벨상 수상감의 비결이 있는 것이 아니다. 과민 대장 증후군과 기능성 위장 장애를 앓는 난 매끼가 식탐과의 지난한 투쟁이다. 식탐을 극복하지 못하면 약속이나 한 듯 체증이 날 찾아온다. 그런 내가 식탐만 자극하고 딱히 해결책을 (먹방의 야속함은 음식 마련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 내놓지 않는 먹방이나 음식을 주제로 한 드라마는 꺼릴 수밖에 없다.
<초밥 쥐는 일이 마음을 쥐는 일이라니, 초밥은 이토록 심오하다> |
<슌의 아버지이자 야나기 초밥 2대, 그런데 아널드 슈워제네거 닮지 않았나?> |
이번엔 객기를 부려 발상을 역전시켜봤다. 식후 식탐을 자극하는 드라마가 천연 소화제로 작용하지 않을까? 그래서 맛있는 음식을 보면 군침이 돌 듯 위액 분비도 원활해지지 않을까? 하는 혹시나 하는 기대로 음식을 주제로 한 드라마를 시청했다. 결과는 글쎄올시다.
아무튼, 정말 오랜만에 음식을 주제로 한 드라마를 보면서 깨달은 것은, 태어날 때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우리를 아귀로 만드는 식탐을, 그리고 사람의 일생을 ‘먹는 행위와의 침 흘리는 투쟁’으로 요약할 수 있다면 음식을 주제로 한 드라마는 기본은 먹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런 드라마가 우후죽순으로 제작되는 이유를 굳이 따지고 들 필요가 없을 정도다.
<이게 에도마에 초밥 정식이란다!> |
<이건 에도마에 야나기 초밥 정식, 나로선 별 차이 없이 그저 맛있어 보일 뿐> |
「요리 삼대째」의 소재가 초밥일 줄은 몰랐다. 요리사가 내 앞에서 조물조물 쥐여 준 진짜 초밥을 먹어본 적이 없는 나로선 삼대니, 사대니 하는 전통 초밥의 맛은 상상할 수도 없다. 내게 초밥은 대형 할인점에서 어쩌다 마주치는 할인판매 같은 천재일우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살까 말까 고민하게 만드는 별식 정도일 뿐이다.
주인공 슌을 보니 초밥 콘텐츠의 원로 격이라 할 수 있는 쇼타가 생각난다. 고등학교 때 나름 방탕했던 시기를 몇몇 만화가 동지로 함께 했었는데, 그중 하나가 「미스터 초밥왕」이다. 졸업 후 만화를 다시 본 적도 없고, 연상시킬만한 건수가 없음에도 단박에 ‘쇼타’라는 이름이 (더불어 천엔 초밥도) 떠오르는 것을 보면 정말 재밌게 본 만화였던 것은 분명하다. 「요리 삼대째」도 만화가 원작이다.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소박한 초밥집> |
어찌 보면 초밥은 진짜 사람의 손맛이 배 있는, 배어 있을 수밖에 없는 요리다. 따로따로 놓인 상태에선 별 볼 일 없는 생선과 톡 쏘는 겨자, 그리고 새콤한 밥이 요리사 손에서 몇 번 조몰락조몰락하고 뒹굴고 나면 마법처럼 천지가 요동할 요리로 둔갑하니 말이다. 라면 사리와 스프가 끓는 물이라는 운명적이고 화학적인 공정을 거쳐서야 비로소 우리의 위장을 굴복시키는 천덕스러운 ‘라면’이 되는 것처럼 야릇하다. 먼 훗날 로봇이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는 시대가 오더라도 관절의 움직임과 손놀림이 사람의 손처럼 민첩하고 부드럽지 못한 싸구려 로봇은 절대 흉내 내서는 안 되는 요리가 초밥일 것이다.
「심야식당」도 그러했지만, 「요리 삼대째」는 우리가 아는 일본 정서와는 달리 타인의 삶에 관심을 품고 서로 간섭하는 인간적이고 따스한 정을 묘사하고 있다. 점점 삭막해져 가는 사회에 대한 반어적인 표현일까? 특이하게도 요리사와 손님이 직접 마주하는 초밥 요리는 노인 홀대, 가정의 몰락, 이웃의 상실 등 거의 모든 산업화한 국가가 겪는 ‘소통의 부족과 소외’라는 사회적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코로나 때문에 오프라인 접촉의 기회를 점점 더 잃어가는 요즘, 요리사에 대한 신뢰와 손님에 관한 정성으로 충만한 슌의 초밥은 먹어도 먹어도 체증처럼 남는 공허함이 무엇에서 비롯되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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