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사건전담반 TEN | 한국 범죄 드라마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
<뭐가 그리도 아니꼽고 가소로운지> |
내가 지금까지 감상한 정통 범죄 수사 드라마 중 ─ 내가 꼽은 이 방면 최고의 수작 ─ 「콜드 케이스(Cold Case)」와 감히 비교될 수 있는 몇 안 되는 드라마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다만 OST 면에서는 비교 불허). ‘느낌’도 없고 ‘감흥’도 없고 오로지 ‘자극’만 있는 속물 드라마만 만드는 줄 얕봤던 한국에서도 이런 수작이 나오다니, 한국 드라마계에서 「신의 퀴즈」와 더불어 「특수사건전담반 TEN」은 미스터리 같은 존재다. 한마디로 한국 범죄 드라마 역사상 길이 남을 명작.
볼 때마다 「콜드 케이스」처럼 장수했으면 하는 욕심과도 같은 바람이 죽처럼 걸쭉하게 끓어오르지만, 2021년 현재까지 깜깜무소식이니 새 시즌은 물 건너갔을까?
<이게 진짜 가소로운 표정이지(영화 「Fast & Furious 2009」 중에서)> |
내가 보기엔 이런 범죄 수사극은 치밀한 범죄 구성과 적절한 단서 배치, 그리고 우연보다는 증거와 추리를 통해 차근차근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개연적인 수사 과정 때문에 다른 장르보다 작가의 창작 능력이 중요하다고 여겨지는데, 이 드라마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를 보면 작가 이름은 거의 꼴찌로 소개된다. 얼마 전에 본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 같은 경우는 이와 달리 꽤 앞부분에 소개되었다.
비단 영화 • 드라마 분야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글쓰기 능력을 경시하는 경향이 짙다. 학교 교육에서도 작문 수업은 등한시된다. 책도 안 읽는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이 두 가지 이유만으로도 한국에서 위대한 작가가 나오지 못하는, 그리고 창의성이 없는 절박하면서도 당연한 사정이다.
<정나미 떨어지는 팀장 밑에서 착실하게 수사하는 TEN 팀원들> |
<형사 백도식이 없었다면, TEN 재미가 지금만큼 유지될 수 있었을까> |
한국 드라마 특유의 휴머니즘적인 정서에 지나치게 의지하지 않고, 분위기 전환용으로 써먹는 (그러나 시청자 성향에 따라선 미꾸라지처럼 몰입감만 흩트려놓는) 로맨스 요소를 과감하게 배제한 덕분에 오직 ‘범죄와 수사’에만 푹 빠질 수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라는 표현이 이다지도 적절한 경우는 많지 않다. 오죽했으면, 드라마 시작할 때 흐뭇하게 뜯은 과자 봉지에 수북이 쌓인 ‘나 먹어줍쇼’하듯 왁자지껄 떠들던 짭짤한 녀석들이 드라마 끝날 때까지 대부분 생존해있을 정도다.
<범죄 수사물이라면 부검이 빠질 수가 없지> |
<이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
한 편의 잘 쓰인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나도 탐정이 되어 사건을 해결해볼까?’ 하는 지적 흥분과 범죄에 얽힌 비극적인 인간사에서 우리의 어둡고 차가운 본성을 다시금 들여다보는 성찰의 시간까지, 재미와 감흥을 두루 갖춘 유쾌하면서도 가슴 아픈 드라마다.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붉고 은은한 조명 아래 적나라하게 몸매를 드러낸 미녀처럼 시선을 강제로 견인하는 배우 김상호(형사 백도식 역)의 천연 감미료 같은 연기가 단연코 돋보인다(에도 시대의 촌마게 같은 독특한 머리 맵시도 눈길을 끌지만 말이다). 아니꼽고 가소로운 표정으로 일관하는 배우 주상욱(팀장 여지훈 역)을 보면서 퍼뜩 떠오른 것은 영화 「구미호」로 배우로서의 첫발을 디딘 정우성이다. 물론 우리 여팀장이 그보다는 많이 낫지만 말이다. 앞의 두 사람이 묵직한 수사 분위기를 진지하게 이끌어 간다면 개구쟁이 같은 배우 최우식(형사 박민호 역)과 ─ 아무리 정통 범죄 수사물이라고 해도 약방의 감초처럼 빠질 수 없는 ─ 홍일점 조안(형사 남예리 역)이 잔악한 범죄로 팽팽하게 긴장된 분위기에 연못에 나 홀로 떠 있는 연꽃을 감상하는 것 같은 잔잔한 미소를 선물한다.
끝으로 시즌 2 마지막 장면에 남긴 떡밥이 있다. 이는 피를 말리는 여운으로만 남을 것인가? 아니면 시즌 3으로 이어질 것인가? 아니면, 한국 경찰청 창고에도 미제 사건이 한라산만큼은 쌓였을 것 같은데 그것을 소재로 한 한국판 「콜드 케이스」라도 만들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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