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트 접속금지(HOST, 2020) | 간 떨어질라!
<화기애애한 채팅 초반> |
코로나 팬데믹으로 자가 격리 상태에 있던 친구들이 심심해 죽을 것 같은 꼴을 가엾게 여겼는지 헤일리는 정기 화상채팅에 심령술사를 초대한다. 헤일리는 심령술사의 경험담이나 느긋하게 듣겠다는 안일한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대범하게도 심령술사의 도움과 채팅에 참여한 친구들과의 협력으로 혼령을 불러들이는 짜릿한 장난을 시도하고자 한다.
<의식 시작, 저기 장난치는 커플은 조금 후 응징된다!> |
화상채팅을 공포영화의 메인 프레임으로 삼는 것은 이 영화가 처음은 아닐 것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언프렌디드(Unfriended)」 시리즈인데 다른 점이 있다면, ‘살인마’와 ‘악령’ 정도랄까? 같은 점은 일말의 자비도 없이 모두가 죽어 나자빠진다는 것이다.
잔인하게도 공포영화에선 사람이 죽어 나가지 않으면 볼 맛이 안 난다. 마치 스프 빠진 라면이라고 할까나?
<남자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거야!> |
이젠 바야흐로 네트워크 시대다. 심령술사든, 악령이든 이름값을 제대로 하려면 인터넷을 활용해야 한다. 「호스트(HOST)」의 등장인물들이 화상채팅으로 영혼을 불러들이는 조촐한 의식은 위저보드(Ouija board)의 인터넷판이다. 이로써 사람과 귀신의 인연은 네트워크 시대에도 여전히 유지된다. 조만간 (혹은 이미?) 화상채팅용 위저보드 앱이 등장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되면 귀신만 바빠지겠다. 지금까진 위저보드 판 주위에 조촐하게 모인 사람들 앞에서 깜짝쇼 몇 번 해주면 명성을 얻었지만, 채팅에 참여한 사람들이 다국적이고, 이들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전 지구를 돌아다녀야 하니까 말이다. 귀신도 먹고살기 고달프다.
<오늘 사달의 원흉은 바로 그녀?> |
심령술사가 엄숙하게 경고했듯 이런 위험천만한 의식을 진행할 땐 주의해야 할 사항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고, 친구들을 위험에 빠트리는 사달은 경솔한 누군가 이 주의사항을 어김으로써 일어나게 된다. 「호스트」에선 중국인의 피가 섞인 젬마(Jemma Moore,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등장인물 모두 실명을 사용했다)가 총대를 멘다(그녀의 가증스러운 연기는 훌륭했다).
낯선 존재와 접촉하려는 이 경건한 순간에, 진지함과 긴장감으로 땀을 비처럼 흘려도 모자랄 순간에 젬마는 무모하게도 혼자 거짓부렁이 생쇼를 한다. 그 결과 모두가 학수고대하던 뭔가가 나타난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자신들을 살짝 건드리는 수준 정도로 지나쳐주길 바랐던 그런 얌전한 혼령이 아니었다. 그것은 심령술사가 경고한 대로 정말로 사악했다.
죽은 이를 존중한다면 재미 삼아 귀신을 부르는 경박한 놀이 같은 짓은 애초에 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좋다. 이런 걸 두고 ‘죽어도 싸다.’라고 하는 것이다.
상영시간은 짧지만, 임팩트는 강렬하다. 특히 뭐가 나타날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음에도 결국 관객을 놀래주고 마는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다. 할 수만 있다면 접착제를 쓰든 케이블타이를 쓰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간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동여매라. 양이 많다고 맛있는 것이 아니듯, 상영시간이 길다고 재밌는 영화는 아니다. 영화 「호스트」 짧지만 굵직한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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