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31

당신 차례입니다 | 추리 • 로맨스, 모두 흐뭇

드라마 리뷰 | 당신 차례입니다(あなたの番です, 2019) | 추리, 로맨스 모두 다 흐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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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차례입니다(あなたの番です, 2019) | 추리 • 로맨스, 모두 흐뭇

드라마 리뷰 | 당신 차례입니다(あなたの番です, 2019) | 추리, 로맨스 모두 다 흐뭇
<그들 중에 살인자는 누구?>

무엇이 당신 차례라는 말인가? 첫째는 당신이 죽일 차례라는 말이다. 둘째는 당신이 죽을 차례라는 말이다. 왜?

어느 날 아파트 주민회에서 심심풀이로, 그리고 누군가의 짓궂은 제안으로 종이에 죽이고 싶은 사람 이름을 적은 다음 제비뽑기하듯 한 사람씩 뽑아 종이에 적힌 이름을 확인하는 게임을 하게 된다. 쇼타와 신혼 생활을 이제 막 시작한 나나도 우연히 게임에 참여한다.

흑심이 느껴질 뿐만 아니라 다분히 악의적이기도 한 이 게임의 발단은 쇼타와 함께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나나가 별 뜻 없이 내뱉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살인으로 이어질 동기가 없다면 잡히지 않는다고. 경찰에 잡히지 않고 죽이고 싶은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그렇게 말이 돌고 돌면서 이자가 붙어 결국 ‘교환 살인’이라는 단어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미 비열한 호기심이 발동한 주민들은 체면치레로 이웃들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한편으론 음험한 욕구를 완전히 감추지는 못한다.

죽이고 싶은 사람 이름 적기 게임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불행하게도 게임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종이에 적힌 사람들이 정말로 하나둘씩 죽어 나가고,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은 주민에게 '당신 (죽일) 차례입니다'라는 협박장이 날아든다.

드라마 리뷰 | 당신 차례입니다(あなたの番です, 2019) | 추리, 로맨스 모두 다 흐뭇
<드라마 재미를 증폭시킨 비주얼한 지역화>

중간부터 외부인이 끼어들어 범인 찾기 놀이에 혼선을 주고, 살인사건이 혼성으로 일어나면서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반드시 잡혀야 할 진범은 게임이 시작된 주민회에 참석한 13명 중에 있었다는 점과 범인이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범인이라는 점에서 나름 좋은 플롯을 갖추고 있다. 다만, 본격 추리 소설처럼 단서 제공에 있어 공정하지는 않다. 아마도 드라마를 길게 끌고 나가려면 중요 단서들은 뒤늦게 제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잘 쓰인 추리 소설을 읽는 듯한 유쾌한 추리로 고민하게 하는 드라마는 드물다는 점에서 「당신 차례입니다」는 추리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놓칠 수 없는 드라마다.

드라마 리뷰 | 당신 차례입니다(あなたの番です, 2019) | 추리, 로맨스 모두 다 흐뭇
<인상을 찌푸려도 여전히 매혹적인 그녀>

추리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드라마를 봐야 하는 이유는 여럿 있다. 우선 매우 매우 예쁜 여배우 니시노 나나세(西野七瀬, 쿠로시마 사와)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뭐, 나만 처음 보는 배우인가?). 봉선화처럼 건드리면 톡 터질 듯한 가냘픔과 연약함으로 온몸을 도배한 그녀를 보는 순간 그녀가 한 마디 명령만 내린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한강에 뛰어들 것 같은 썩 좋지만은 않은 기세가 느껴지는 것이 여간 심상치가 않다.

사람이 수시로 죽어 나가는 범죄 드라마 특유의 칙칙한 분위기를 달곰한 웃음과 애통의 눈물이라는 멜로 드라마 같은 가슴 뭉클한 분위기로 덧칠하는 쇼타와 나나의 알콩달콩하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로맨스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추천하고 싶은 요소다(참고로 드라마에선 15살 차이로 설정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17살 차이가 난다).

드라마 리뷰 | 당신 차례입니다(あなたの番です, 2019) | 추리, 로맨스 모두 다 흐뭇
<정말이지 몇 번이라도 사랑에 빠지고 싶은 그녀>

추리도 추리지만, 이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는 등장인물(즉, 아파트 주민) 또한 만만치 않다. 선량한 시민이라는 보편적 역할에 충실해 왔던 주민들이 지금까지 누린 자유와 일상의 평화가 깨질 수도 있다는 위협 앞에서 조금씩 위선과 가식의 가면이 벗겨지는 모습을 보며, 우리 모두 괴물 같은 면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소름이 다 돋는다. 우리의 가면이 그럭저럭 유지되는 것은 그들보다 더 두껍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들과 같은 그런 상황에 마주치지 않은 것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만약 당신이라면 죽이고 싶은 사람 이름을 적는 종이에 누구를 적을 것인가? 종이에 적은 사람이 죽었다면 당신은 그 대가로 전혀 모르는 타인을 죽일 수 있는가? 교환 살인 게임이라는 불상사만 일어나지 않았다면 아파트 주민들과 인사는커녕 층간소음 때문에 서로 원수처럼 지내는 일이 다반사인 한국에 비하면 마주치면 눈인사라도 하고 지내는 드라마 속 아파트가 부럽기도 하다. 아파트 경비가 주민들 앞에서 그렇게 큰소리치고 거드름을 피우는 장면도 여간 신선한 것이 아니다.

「당신 차례입니다(あなたの番です)」는 한 편 한 편 모두에서 영화를 보는 듯한 긴장감과 재미가 꾸준하게 유지된다. 오죽하면 아껴 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까? 또한, 죽을 것 같지 않은 사람도 죽이고 보는 가차 없는 진행이 범인을 추리하고 싶은 정의의 욕구에 복수심까지 불태우게 만들면서 도저히 빠져나갈 길을 주지 않는다. 한마디로 놓치면 화장터에서 재가 되는 그 순간까지 후회할만한 드라마다.

끝으로 쿠로시마 사와 역할을 맡은 니시노 나나세가 남자의 애간장을 녹이는 풋풋한 아름다움으로 유혹한다면, 나나 역할을 맡은 하라다 토모요(原田知世)는 동태처럼 얼어붙은 마음조차 부드럽게 녹아주는 아름다운 미소가 매혹적이다.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사람이 곱게 늙는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녀가 웃음 지을 때 생기는 눈가에 겨울날의 마른 나뭇가지 같은 주름은 그녀가 늙었다는 인상보다는 오히려 푸근하고 정겹다는 인상을 짙게 남긴다. 그 주름 사이에 꽉 끼어 옴짝달싹 못 해도 좋으니 그녀 같은 사람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떨쳐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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