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8

집사 사이온지의 명추리 | 엉큼한 할머니와 만능 집사의 소소한 앙상블

집사 사이온지의 명추리(執事 西園寺の名推理, 2018) | 엉큼한 할머니와 만능 집사의 소소한 앙상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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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 사이온지의 명추리(執事 西園寺の名推理, 2018) | 엉큼한 할머니와 만능 집사의 소소한 앙상블

집사 사이온지의 명추리(執事 西園寺の名推理, 2018) | 엉큼한 할머니와 만능 집사의 소소한 앙상블

「집사 사이온지의 명추리(執事 西園寺の名推理)」 시즌 1은 이주인(伊集院) 가의 집사 사이온지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종의 살인 사건을 척척 해결해나가는 추리 드라마다.

매사 일분일초가 진지한 집사에 비하면 몇몇 사건은 엉성하고 어설프기 짝이 없으며 사건은 한두 개의 단서만으로 맥없이 해결된다. ─ 추리 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이라면 기대할법한 ─ 뭔가 집요하게 파고들고 싶게 만드는 그런 특이성이나 임팩트는 없는 밋밋한 사건 구성이다. 뇌에 큰 부담 없이 가볍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추리 드라마라고 말할 수 있겠다.

집사 사이온지의 명추리(執事 西園寺の名推理, 2018) | 엉큼한 할머니와 만능 집사의 소소한 앙상블

이것보다는 사람의 치를 떨게 할 정도로 정중한 집사와 툭하면 진실을 알고 싶다며 집사에게 탐정 역할을 맡기는 호기심 많은 엉큼한 할머니의 닭살 돋는 앙상블이 소소한 재미를 안겨준다. 여기에 집사 사이온지 역을 맡은 카미카와 타카야(かみかわたかや)의 먹잇감을 노려보는 독수리의 눈처럼 흔들림 없는 눈빛 연기는 보너스!

추리적인 요소가 드라마의 중심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전체적인 감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일상에서 일어날법한 작은 파문 정도다. 요즘의 계산적이고 위선적인 인간관계에서는 현미경을 들이대도 좀처럼 볼 수 없는 집사와 노부인의 끈끈한 신뢰감으로 넘치는 인간관계야말로 ─ 일본에 수십 명이 명목을 이어가고 있다는 집사에게 그 공을 돌릴 수 있는 ─ 진귀한 볼거리다.

집사 사이온지의 명추리(執事 西園寺の名推理, 2018) | 엉큼한 할머니와 만능 집사의 소소한 앙상블

하지만 두 사람의 아름다운 인연은 안타깝게도 시즌 1로 끝났다. 집사의 주인 이주인 유리코 역을 맡은 배우 야치구사 카오루(八千草薫)가 2019년에 지병으로 별세했기 때문이다. 시즌 2는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제작 및 방송되었지만, 아마 병세가 좋지 않아 시즌 2 제작에는 참여하지 못했던 것 같다. 시즌 2를 아직 감상하지는 못했지만, ─ 야치구사 카오루보다 4세 연하인 ─ 요시유키 가즈코(吉行和子)가 유리코 역을 맡았다고 한다.

집사 사이온지의 명추리(執事 西園寺の名推理, 2018) | 엉큼한 할머니와 만능 집사의 소소한 앙상블

주인의 소원을 푸는 것이 집사의 역할이라니. 이에 대해 나로서는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주인의 안전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충성을 다하는 집사의 근성에서 ─ 이제는 잘못을 인정할 만도 한데 여전히 떨쳐버리려고 하지 않는 ─ 군국주위에 대한 집념이 느껴지기도 해 불쾌하다. 정말 그런 흑심을 품고 드라마를 제작한 것은 아니겠지만, 도를 넘어서는 ‘충성’일지라도 일본인에겐 여전히 미덕인 것 같아 낯설지 않은 경계심을 일으킨다.

그림도 척척, 피아노 연주도 척척, 격투도 척척, 극도의 정중함과 완벽한 격식을 담은 인사도 척척. 뭐든지 척척 해내는, 그러면서도 표정 하나 꿈적하지 않는 슈퍼 울트라 메가톤급 만능 집사 사이온지의 활약이 다소 부담스러울지라도 평생 살면서 매우 매우 운이 좋아야 하룻밤 정도 묶을 수 있을 것 같은 이주인 저택에 사는 그가 부러워서라도 화면에서 두 눈을 떼기가 어렵다.

울창할 정도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하루 한두 번 정도 새들이 찾아와 정적을 살포시 깨트려주는 작은 숲에 둘러싸인 적당히 고즈넉하고 적당히 자연의 생기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집에서 살다가 죽고 싶다. 라는 드라마 감상과는 하등 상관없는 망상이 나의 처지를 반추시키는 괴로움으로 나를 귀신처럼 괴롭힌다.

그 집이 잘 있나 확인하고 싶은 오지랖 때문에라도 「집사 사이온지의 명추리(執事 西園寺の名推理)」 시즌 2는 기필코 봐야겠다. 그런데 사이온지, 당신의 정체는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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