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트(Haunt) | 유령의 집 + 방탈출 카페?
날씨도 조금씩 더워지니 자고로 공포영화의 계절이다. 무심하게 떠난 애인이나 못 받은 돈에 대한 사무치는 원한이 있더라도 공포영화 삼매경에 빠져든다면 혹시 모르지 않겠는가? 위장약 홍수로 꽤 고생하고 있을 법한 위도 다스리고, 더불어 마음도 진정시킬 수 있을지를.
헌트(Haunt)는 놀이동산에 가면 있을법한 ‘유령의 집’과 비교적 최근에 유행한 ‘방탈출 카페’를 무대로 한 영화다. 내 머릿속엔 ‘유령의 집’이나 ‘방탈출 카페’ 같은 곳을 방문했던 기분 좋은 기억은 없지만, 공포영화 소재로 써먹기에는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흔한 소재이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붙들어 맬 수 있는 참한 아이디어를 가지고만 있다면 아무리 남발해도 나쁘지 않은 소재이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유령의 집’이니까.
그렇다면, 흔할 것 같은 ‘유령의 집’이라는 무대를 어떻게 지지고 볶아야 관객의 뻔한 기대감을 뒤집을 수 있는 차별성 있는 공포감을 자아낼 수 있을까?
헌트(Haunt)는 ‘유령의 집’을 ‘살인의 집’으로 둔갑시키는 남다른 무대를 준비했다. 남다르다고는 표현했지만, 영화가 조금만 진행되어도 ‘곧 쫓고 쫓기는 살육전이 시작되겠구나’ 하는 것 정도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고만고만한 분위기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나쁘지 않은 이유는 등장하는 여배우들이 특별히 예뻐서가 아니라 다양한 함정과 퍼즐이 긴장감을 유지하는 튼튼한 버팀목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소리 점프 스케어 기법도 간간이 등장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헤드폰을 착용하고 감상하자). 그래서 그런지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방탈출 카페’라는 곳에 가보고 싶다는 충동이 체한 것처럼 식도를 콕콕 찌른다.
내 마음에 가장 들었던 점은 약간은 뜻밖인 결말이다. 보통 살육전이 펼쳐지는 공포영화에서 살아남는 자는 단 한 사람의 여자다(공포영화의 가해자는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비해 생존자는 왜 여자가 더 많은 것일까「Gender and survival vs. death in slasher films: A content analysis」. 혹시 여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진화심리학적인 사유가 적용된 것일까?). 이 불문율 같은 공식은 가차 없이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큰 불만 없이 지켜져 왔다. 그런데 영화 헌트(Haunt)는 이 공식을 깬다. 뭐, 그렇다고 특별한 이유나 사정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보너스라도 주는 것처럼 한 사람이 더 살아남는다. 그게 다다. 그렇다면 과연 두 명의 생존자는 누가 될까? 바보가 아닌 이상 영화 첫 장면만 봐도 감이 잡힐 것이다.
사실 공포영화는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가지 보면 재미가 없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고 그 상황에서 그렇게 행동하는 바보나 멍청이도 그렇게 많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공포영화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개연성 같은 것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저 멍하니 영화의 무대가 세상 전부이자 이치라고 철석같이 믿고 봐야 한다. 이것은 비단 공포영화뿐만 아니라 그 외 모든 영화를 몰입하여 감상할 수 있는 기초적인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헌트(Haunt)는 6명의 젊은 남녀가 짜릿한 전율을 기대하고 유쾌하게 걸어 들어간 ‘유령의 집’에서 갖은 참살을 당하며 운이 좋게 2명만 살아 돌아온다는, 약간은 피해자에게 관대한 공포영화지만, 폐쇄적인 무대가 자아내는 밀실 공포와 관객의 잔인한 호기심을 곤두세우는 유치하지 않은 함정과 퍼즐이 볼만한 공포영화다.
방문객 중 한 명을 현장에서 몰래 섭외해서 고문당하고 살해당하는 듯한 연출을 시도해 방문객들을 놀래주는 것도 신선할 듯싶다. 마치 몰래카메라처럼 말이다. 그런데, ‘헌트’에 나오는 ‘유령의 집’ 같은 (진짜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빼고) 곳이 진짜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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