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6

도시로 간 처녀 | 오라이 오라이, 빨리 내리세요

도시로 간 처녀 | 오라이 오라이, 빨리 내리세요

도시로 간 처녀 영화 리뷰 | 오라이 오라이, 빨리 내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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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버스는 시민의 발을 대신하는 대중교통으로 군림하고 있지만, 버스 안내양은 이제 살아 있는 사람 중 소수의 추억 속에만 존재하는 유물이 되어버렸다. 비용 절감이라는 무심한 경제 원칙 속에 사람 대 사람이라는 인간적 관계가 헌신짝 버리듯 폐기해 버린 예는 비단 버스 안내양뿐만은 아니다.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의 수많은 팔과 다리는 차갑고 단단한 기계와 로봇으로 대체되었고, 어딘가에는 웨이트리스가 없는 레스토랑도 존재한다. 앞으로 인류를 위협하는 전염병의 발병 횟수가 빈번해지면, 화상 회의와 재택근무가 ‘일시적’에서 ‘일상’으로 자리 잡을지도 모른다.

일본의 추리소설 작가 모리 히로시(森博嗣)가 자신의 소설들을 통해 예견하고 예찬한 것처럼 사람 대 사람의 접촉이 없더라도 네트워크만 이어져 있다면, 우리의 사회적 본성은 충족될 수 있을까?

도시로 간 처녀 영화 리뷰 | 오라이 오라이, 빨리 내리세요

우리를 사회적 동물로 존재하게 하고 또한, 우리를 사회적 접촉과 그 관계로부터 위안을 얻게 하는 감정이 진화해 온 배경에는 ‘인터넷’도 없었고, ‘휴대전화’도 없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갈등은 사회적 관계로부터 빚어지지만, 우리가 받는 위안과 즐거움 역시 그 사회적 관계로부터 나온다. 한마디로 사람은 사회로부터 병을 얻지만, 그것을 치유할 약도 얻는다.

당신이 병실에서 혼자 죽어가고 있을 때 가족들을 화상 전화로 연결한 모니터들이 당신을 빙 둘러싼 모습을 상상해봐라. 그 지독한 쓸쓸함에 빨리 죽지 못하는 것이 한이 될 것이다.

도시로 간 처녀 영화 리뷰 | 오라이 오라이, 빨리 내리세요

이제는 지방자치의 지원을 받으면서 관광객 유치 차원에서 근근이 존재하는 버스 안내양을 추억하며 몇 자 끄적인다는 것이 장광설이 되어버렸다. 김수용 감독의 「도시로 간 처녀(Girl Going to the City, 1981)」는 어떤 영화인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내 블로그를 방문한 사람들은 영화와는 안드로메다만큼이나 멀고도 공상적인 이야기에 난감했으리라. 머릿속에 떠오른다고 그냥 갈겨버린 나도 난감하긴 매한가지다.

아무튼, 한국 고전영화 「도시로 간 처녀」는 발라당 까졌다는 말을 들을 만큼 당찬 여자 옥경, 무슨 일을 하든 당당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려는 여자 문희, 아기 젖꼭지 장난감을 입에 물어야 잠이 드는 아기처럼 연약해 보이는 승희 등 회사 기숙사에서 동고동락하는 세 명의 버스 안내양을 내세워 당시 버스 안내양들의 근무실태와 근무환경을 은근히 고발한 사회성 짙은 영화다.

이렇게만 설명하니 딱딱한 영화처럼 보이지만, 그건 부분적인 묘사가 그렇다는 이야기다. 전체적으로 보면 요즘 청춘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장래, 우정, 취업, 사랑, 직장 상사로부터의 시달림, 그리고 좌절 등 젊은이들이 겪어야 하는 시대를 초월한 삶의 애환을 세 명의 안내양을 중심으로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다.

도시로 간 처녀 영화 리뷰 | 오라이 오라이, 빨리 내리세요

월급과 견줄 만큼 삥땅을 후하게 뜯어내는 안내양이 있는가 하면, 토큰 하나라도 꿀꺽할 생각조차 않는 정직한 안내양도 있고, 그 중간쯤 해서 들키지 않을 만큼 적당히 삥땅을 치는 안내양이 있다. 영화의 이런 설정은 정직하게 일하는 안내양들의 반발을 사기에 충분하지만(실제로 영화는 안내양들과 버스회사의 항의로 개봉하자마자 막을 내렸다고 한다!), 내가 근무했던 1990년대 후반 군대에서도 아직 삥땅 문화가 완전히 근절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 전직 안내양 누님들에겐 대단히 죄송한 말이지만 ─ 1980년대 초반에 안내양들이 전부 정직하게 일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래도 그들을 탓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스릴과 소소한 수익이라도 없었다면 우리의 어머니, 이모, 누나, 언니들이 어떻게 그 고단한 현실을 소박한 꿈을 품는 것만으로 견딜 수 있었겠는가?

그다음 고발은 몸수색이다. 좋아하는 남자에게 손목만 잡혀도 부끄러워 어찌할 줄 모르던 순박한 처녀들이 대다수였던 그때 아무리 같은 여자라고 해도 몸수색을 당하는 일은 수치스럽다. 또한, 몸수색은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부당한 처사이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남자 직원이 보는 앞에서 전라의 몸수색은 지금 같으면 성폭행으로 고발되고도 남을 일이다.

마치 기록영화 보듯 산뜻한 기분으로 기분 전환 삼아 보려 했던 고전 영화가 뜻밖의 진지함으로 나를 당황케 했으니, 조금은 억울하고 못마땅하기도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막 기지개를 켜는 듯한, 하지만 고대로 멈췄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염세적인 바람이 살짝 들기도 하는 서울의 개발 실황과 우리의 돌이킬 수 없는 1980년대 풍경과 유지인, 이영옥, 금보라 등 원로 배우들의 자연미를 감상하는 기분은 한 모금의 맥주처럼 짜릿하다.

그런데 서울엔 그때나 지금이나 왜 그리 여관이 많을까? 우리는 아직도 편하게 쉴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영원한 나그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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