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13

데이 오브 더 데드 | 머릿속이 사나울 때 공허하게 감상하자

Day-Of-The-Dead-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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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 오브 더 데드(Day Of The Dead, 2008) | 머릿속이 사나울 때 공허하게 감상하자

"당신을 좋아하고 있잖아. 좀비가 대쉬하는거야?" - 살라자

「데이 오브 더 데드(Day Of The Dead, 2008)」는 나처럼 좀비 영화에 굶주린 사람이라면, 마음 오지게 단단히 먹고 딱 한 번 정도는 볼 수 있는 영화이니,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자. 그래도 아주 오래간만에 보는 좀비 영화이고, 왠지 모르게 영화 선택 시부터 큰 기대감을 주지 않는 겸손한(?) 영화라서 그런지 그럭저럭 봐줄 만했다고 말할 수는 있겠다. 좀비처럼 아무 생각 없이 본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정신없이 사납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 미쳐버리지 않으려면 가끔은 머리를 텅 비워줄 필요가 있다. 그런 각오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느껴진다면 마음과 머리를 비우고 감상해보자. 이런 영화에서도 나름의 재미를 찾아내는 인류의 영묘한 정신력에 영탄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다행인 것은 상영 시간이 비교적 짧다는 것이지만, B급 영화(혹은 그 이하)에서 기대해 볼 수 있는 탱탱한 유방 한 번 보여주지 않는 쓸데없는 청교도적 분위기가 우리를 다소 실망스럽게 한다. 뭇 남자들의 시기심만 잔뜩 불러일으키는 유방을 힘껏 움켜쥔 남자의 손만 카메오처럼 잠깐 등장하는 것이 전부이니, 그래도 명색이 공포영화인데 너무 밋밋한 것 아니냐고 뿌루퉁해 있으면 변태가 되는 건가?

Day-Of-The-Dead-2008

영화는 감히 좀비 영화계의 전설 조지 로메오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3 - 시체들의 날(Day Of The Dead, 1985)」을 모방했다고 선언한다. 그 발끝에도 살짝 미칠까 말까 한 것이 말이다. 그래도 꿈과 목표는 크게 가지라고 했으니, 그 점은 가상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결과물이 너무 신통치가 않으니 곤란한 것이다.

Day-Of-The-Dead-2008

그렇다고 이쯤에서 희망의 줄을 놓는 우는 범하지 말자. 공포영화에서만큼은 빠질 수 없는 매력적인 여주인공이 앞서 언급한 모든 실망과 좌절을 절반 정도는 보상해주기 때문이다. 당신이 만약 남자라면, 사라 역을 맡은 미나 수바리(Mena Suvari)의 눈부신 금발과 숨을 잠깐 멈추게 하는 매혹적인 파란 눈동자에 퐁당 빠지는 순간 영화의 모든 것을 용서해 줄 관대함이 어딘지 모르는 심연으로부터 불쑥 솟아오르는 기적을 느끼게 될 것이다. 「플래닛 테러(Planet Terror, 2007)」에 나왔던 마리 쉘톤(Marley Shelton)도 그렇고, 난 파란 눈동자를 품은 금발에게 약한가 보다. 현장에서 직접 본 적은 한 번도 없는데도 말이다.

Day-Of-The-Dead-2008

나름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히 보이는 점은 차별화된 좀비를 만들려고 한 노력이다. 좀 더 과학적으로 말하면 진화한 좀비? 이보다 조금 더 앞서 나온 영화 「랜드 오브 데드(Land Of The Dead, 2005)」에서 좀비가 각성한 결과라서 그런가?

아무튼,「데이 오브 더 데드(Day Of The Dead, 2008)」의 좀비는 도구도 사용하고, 라디오도 청취하고, 사람의 공격도 피하고, 나름 방어 자세도 취한다. 군인이었던 좀비는 방아쇠를 당기고, 채식주의자였던 사람이 좀비로 되니 스님처럼 육식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사람 냄새에 이끌린 좀비들이 ─ 아무리 육체를 함부로 굴려 먹어도 문제 없다지만 ─ 창문 밖으로 몸을 내동댕이치는 장면은 그 정도로 사람 고기가 좋다면 기꺼이 이 한 몸 바치리라는 말도 안 되는 연민이 들게 할 정도로 처절하다. 또한, 좀비가 되어서도 뽀뽀 한 번 못해본 고참(사라)을 위해 연정을 불사르는 사연은 정말이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

초창기 좀비들로부터 차별해 나가면서 변덕스러운 대중의 요구에 맞게 날렵하고, 그리고 필요한 만큼만 영리해져 가는 좀비들이 기특하다. 「웜 바디스(Warm Bodies, 2013)」에 와서는 좀비와 사람이 사랑까지 나누지 않겠는가? 오~ 할렐루야! 마지막에 등장하는 좀비는 프로토타입답게 매트릭스의 한 장면처럼 숭숭 날라오는 총알을 휙휙 피하면서 시종일관 한일자로 야멸차게 다물어져 있던 시청자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하는 압권 중의 압권을 연출한다. 이래도 안 보고 배길 수 있나?

끝으로 「데이 오브 더 데드(Day Of The Dead, 2008)」가 화끈할 수밖에 없는 것이 좀비들을 화끈하게 불로 조지는 것이다. 그것도 화염방사기처럼 늘 보던 것이 아닌 미사일 추진 연료를 사용해서 말이다. 좀비물은 그냥 한바탕 야단법석만 제대로 치면 일단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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