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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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V, 1983) | 외계인에 대해 품은 통념을 깨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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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V, 1983) | 외계인에 대해 품은 통념을 깨부수다

인류는 아직 공식적으로 지적 외계생명체를 만나본 적은 없다. 확인할 수 없는 수많은 뜬소문에 의하면 비공식적으로, 그리고 비밀보다 더 비밀스럽게 지구에 사는 생명체 같지 않은 수상한 생명체와 만났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많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외계인에 납치당해 생체실험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다.

그런데 이들이 봤다는 외계인의 모습은 한결같이 사람과 비슷한 구조를 가진 형태로 묘사되곤 한다. 즉, 몸통 위로는 머리를, 몸통 상단 좌우로는 두 팔을, 몸통 하단 대각선 방향으로는 두 다리가 붙어있다는 식이다. 다만, 머리가 ─ 우리의 신체 비율과 비교해서는 ─ 농구공처럼 비정상적으로 크고, 몸통은 머리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으며, 팔다리는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처럼 앙상하다.

실제로 확인된 바는 전혀 없는 E.T 같은 이런 외계인의 신체 구조는 언제부터인가 외계인의 존재를 긍정하는 사람들에게만큼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기정사실처럼 취급되었다.

그런데 이런 반증할 수 없는 공상에 가까운 추측에 한가득 찬물을 끼얹는 SF 드라마가 있었으니 바로 1983년에 나온 TV 미니시리즈 브이(V)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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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쩍 벌린 다이아나가 털이 복슬복슬한 설치류를 원샷하듯 삼키는 장면도 충격이었지만, 지금까지의 통념을 깨는 외계인의 정체는 더더욱 충격이었다. 지구인보다 훨씬 뛰어난 기술을 갖춘 그들의 정체가 영장류 비슷한 무언가가 아니라 벌레만큼이나 징그러운 파충류였다니, 그때까지 그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하지만, 불과 약 6600만 년 전까지만 해도 지구는 파충류의 세상이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그렇게 황당한 이야기도 아니다. 만약 6600만 년 전에 소행성이 지구를 비껴갔다면, 최소한 우리는 모기나 파리를 잡기 위해 연신 파리채를 휘두르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날름거리는 혀로 잡아먹는 것이 더 빠르고 쉬웠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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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V)를 처음 시청했던 어렸을 적엔 파충류라는 외계인의 실체가 가장 기억에 남을만한 일이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다르다. 류츠신의 소설 『삼체(三體: The Three-Body Problem)』처럼 브이(V)는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우쳐준다. 바로 외계인이 지구의 문제를 해결해 줄 구세주라도 될 것 같은, 희망 사항 같은 것에도 낄 수 없는 망상에 가까운 기대가 사실은 작금의 종교만큼이나 지독한 허깨비와 다름없다는 것을.

행성 간 여행이 가능할 정도로 기술적으로 뛰어난 지적생명체일지라도 우리에게 반드시 선의를 품고 있어야 할 이유도 없고, 그들의 도덕 관념이 우리와 유사하다고 생각해야 할 이유나 근거 역시 없다. 지적생명체가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나는 이유에는 여행, 탐험, 교역 등 여럿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살던 행성의 수명이 다 되었을 때이다. 황폐해진 고향 행성을 버리고 지구를 발견한 지적생명체가 인류의 안위를 동족의 안위보다 더 생각해주기를 바랄 수 있을까? 폴란드를 침공한 독일이, 그리고 조선과 중국을 침공한 일본이 어떤 식으로 점령지역 민족들을 다뤘는지 생각해보면 답은 금방 나온다. 그들의 노예가 되던가, 아니면 학살의 희생양이 되던가, 그것도 아니면 작금의 돼지나 닭처럼 가축이 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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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에 비추면,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히틀러보다 더한 인류 최대의 나쁜 놈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훗날 탐사선 보이저(voyager)호에 실린 황금 레코드(Golden Record)를 어떤 지적생명체가 발견한다고 했을 때, 그 지적생명체가 반드시 ─ 인류의 희망처럼 ─ 우호적이고 선의를 가득 품은 선량한 종족일 것이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소설 『삼체』에 등장하는 지적생명체처럼 수명을 다한 고향 행성을 대체할 새로운 행성을 찾는 중이라면, 그들에게 있어서 황금 레코드는 지옥에서 천국으로 안내하는 조타수나 다름없지 않은가?

추억의 드라마 브이(V)를 다시 보며 떠오른 울울한 감상을 방금 막 내려 향기 가득한 커피 한 잔을 홀짝이며 제멋대로 적어봤다. 지금의 눈높이로 보면 당연히 엉성한 그래픽이 약간은 거슬릴 수 있지만, 예쁠 뿐만 아니라 인상도 무척이나 좋은 페이 그란트(Faye Grant, 줄리엣 패리시 역)와 헤비메탈 가수 부럽지 않은 곤두선 사자 머리가 파충류적인 야성미를 자아내는 제인 배들러(Jane Badler, 다이아나 역)도 다시 보니 반갑기 그지없다. 시간 있으면 한 번 봐라. 재미도 재미지만, 브이(V)가 이후에 나온 SF 영화나 드라마에 끼친 지대한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의미한 시간이 될 것이니까.

본문에 사용된 이미지 저작권은 드라마 「브이(V, 1983)」 제작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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