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16

하루치카 | 시간 낭비?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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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치카(ハルチカ, 2017) | 누군가에겐 시간 낭비, 누군가에겐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Solo는 혼자라는 의미가 아냐.
제대로 전해지고 있으니까.
좀 더 자신과 맞서.
주변의 연주가 있으니까 solo,
그러니 혼자가 아니라는 것.

영화 「하루치카(ハルチカ, 2017)」는 미스터리 장르는 아니다. 아마도 이러한 오해는 영화는 보지 않고 영화 제목만 보고 대충 추측해서 붙인 것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영화 제목 ‘하루치카’는 하츠노 세이가 집필한 일본의 추리소설 시리즈 제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지 못해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내가 보기엔 폐부의 위기에 처해 있는 취주악부에 소속된 치카라는 설정만 원작에서 따온 것 같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누군가에 추천할만한 대단한 영화는 아니라는 것. 그런데도 내가 이 영화를 봐야 했던 이유는 전적으로 하시모토 칸나(橋本環奈)라는, 요즘 잘 나가는 아이돌의 고만고만한 섹시함과 전혀 다른 느낌의 호림을 발산하는 여배우 때문이다(그녀는 정말 교복이 잘 어울린다).

그녀를 알게 된 발단은 「사이키 쿠스오의 재난(斉木楠雄のΨ難, 2017)」. 이 영화에서 엄청난 발연기로 병맛 영화에 나름의 양념을 치고자 열심히 망가지려 애쓰는 그녀의 심상치 않은 노고도 매우 인상적이었지만, 그런 노력이 앙증맞고 귀여운 그녀의 이미지에 흠집을 내기는커녕 이렇게 그녀가 주연한 다른 영화를 찾게 하는 요상한 계기가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하시모토 칸나는 마멀레이드 키친의 노래 「기대도 될까」 첫 소절에 나오는 가사대로 정말로 ‘작고 귀여운 소녀’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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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영화를 찾아 감상하다 보면 단순하게 여배우의 미모에 홀려 시간 낭비가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보게 되는 영화가 종종 있고, 「하루치카(ハルチカ, 2017)」도 그런 영화 중의 하나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감상하다 보니 뜻하지 않게 옛 추억을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바로 영화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요 소재이자 무대로 등장하는 ‘취주악부’ 활동이다. 나 역시 고등학교 때 취주악부 활동을 했었고, 당당히 ‘부장’을 맡았다. 파트는 처음에는 플루트였지만, 도저히 감당이 안 되어서 트롬본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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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주악부 활동이 뿌듯했던 점은 수업을 정식으로 땡땡이칠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물론 매일 그랬다는 것은 아니고, 무슨 행사가 (예를 들면 국군의 날 종로 길거리 연주) 있어서 그에 대비한 연습 때문에 종종 수업을 빼먹을 수밖에 없었다. 취주악부에는 자랑거리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선배 중에 한참 위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영화배우 최XX 씨가 있었다는 것과 취주악부를 담당하는 음악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취주악부 학생은 실기 시험에서 (실력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고득점을 받을 수 있었다. 아직도 음악 선생님 앞에서 실기 시험을 치던 그때 모습이 선한데 가곡 '보리수'의 '성문 앞 ~' 달랑 이 한 소절만 부르고 바로 통과! 난 부장이기 때문에 당연히 최고 점수! 이러한 것이 90년대니까 통했지, 만약 지금 같았으면 학부모들의 반발을 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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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과거를 가지고 있으니, 영화 「하루치카(ハルチカ, 2017)」에서 아마추어급 이상의 연주실력을 뽐내는 조연배우들의 연주가 당연히 가슴에 와닿을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다 찌그러진 악기, 쥐들이 바글거려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음악실 환경과 그런 환경에 걸맞게 연주실력 역시 형편없었다. 그리고 플루트는 직접 불어봐서 아는데, 금관이나 목관 악기와 비교하면 배우기 매우 어려운 악기다. 하시모토 칸나가 이전부터 취미생활로 플루트를 연주해 온 것이 아니라면, 땀 좀 뺐을 것이다. 아니지, 플루트의 경우에는 땀보다는 폐활량 때문에 (초보자는 취관에 정확하게 숨을 불어넣기가 매우 어려워 낭비되는 숨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플루트'하니까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내가 1학년 때 3학년 선배 중 플루트를 기가 막히게 잘 부는 선배가 한 명 있었다. 그런데 막상 가을 축제 때는 플루트가 아닌 알토 색소폰으로 독주를 했다. 곡명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김종서의 ’겨울비‘. 왜 평소에 잘 부는 플루트가 아닌 색소폰을 선택했는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플루트보다 색소폰이 더 멋(?)있어 보일 것이라는 황당한 오해다. 아무튼, 그 선택은 최악이었다. 불상사도 그런 불상사가 없다. 연주라기보다는 '삑사리' 메들리였다. 엄청난 동정심과 해방의 기쁨이 담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무대 뒤에 잠시 쉬고 있던 우리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아주 곤란한 상황이었다. 참고로 우리 취주악부의 18번은 ’시바의 여왕(La Reine De Saba)‘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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