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경도룡(Tiger Cage, 1988) | 스타들의 옛 풋풋함과 함량 미달 연기를 보는 즐거움
“잘 들어! 이 일을 아는 사람은 나랑 황 반장” - 신유
“그리고 나!” - 테리
“그래, 명심해! 개인적으로 행동해선 안 돼! 알았어?” - 신유
어느새 불혹을 뛰어넘고 지천명을 지나 갑 언저리를 배회하는 스타들의 풋풋했던 옛 홍콩 배우 시절을 되돌아볼 수 있는 영화 「특경도룡(Tiger Cage, 1988)」. 그 중 견자단, 임달화는 여전히 중견배우로서 맹활약을 펼치는 중이고, 최근에 출연한 영화가 없는 장학우는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는 듯하다. 한때 주성치와 명콤비를 이루며 많은 팬에게 웃음바다를 안겨줬던 오맹달이 진지한 연기를 펼치는 것을 보는 것은 나로서는 처음인 것 같다. 얼마 전에 감상한 「아래층 사람들(The Tenants Downstairs, 2016)」에서 관음증에 도취한 정신병자로서 미친 듯한 연기를 펼쳤던 임달화의 조각상 같은 젊은 시절 모습은 왠지 장국영을 닮은 것 같아 서글픔을 자아내기도 한다. 장학우와 견자단의 홍콩 배우 시절 모습은 한 사람은 말썽꾸러기, 한 사람은 불량 청소년 같다. 그 밖에도 그때 그 시절 홍콩 영화에서 심심치 않게 악역으로 등장하여 뭇 관객들의 악의 없는 욕을 한몸에 받았던 몇몇 배우들도 낯설지 않다. 하지만, 「특경도룡」의 이야기는 배우들에서 그윽하게 퍼져나오는 추억의 달콤함과는 달리 당시 유행했던 홍콩 누아르처럼 무자비하기 그지없다.
영화 「특경도룡」은 홍콩 경찰의 특수 마약반원들이 마약 조직을 급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황 반장 휘하의 혈기왕성한 젊은 형사들이 대거 참여한 이번 작전에서 경찰은 마약 조직을 타진하는 데는 성과를 거두지만 쌍권총을 난사하며 끈질기게 도망친 두목 제두홍은 그만 놓치고 만다. 무사히 아지트로 돌아온 제두홍은 복수를 다짐하고, 한바탕 몸을 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마약반원들은 형사 커플인 서형과 셀리의 결혼식을 앞두고 조촐한 파티를 연다. 파티를 마치고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던 때, 장난꾸러기 기질이 발동한 신유는 서형의 자동차에 최루가스를 몰래 장착한다. 셀리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고자 차에 올라탄 서형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자동차 키를 돌려 시동을 건다. 엔진이 점화되는 소리와 함께 자동차 안은 자욱한 최루가스로 가득 차고 당황한 서형은 재빨리 운전석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온다. 이때 어디선가 '홍반장'처럼 갑자기 나타난 제두홍이 서형 앞에 타고 온 차를 세우고 총을 난사한다. 최루가스 때문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서형은 속수무책으로 살해당한다.
동료를 잃었다는 분노에 눈이 먼 서형의 동료들은 경찰이란 신분도 잊은 채 오로지 복수하고픈 일념으로 경찰로서는 해서는 안 될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먹이를 쫓는 늑대처럼 제두홍을 찾아 나선다. 국장의 심한 질책 속에도 수사는 결실을 보아 배를 타고 홍콩을 떠나려는 제두홍을 현장에서 체포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제두홍이 자신을 끌고 가는 타숙에게 알쏭달쏭한 말을 넌지시 건네자 무슨 이유에서인지 타숙은 제두홍에게 총을 빼앗긴 것 같은 사고를 꾸미고, 이를 위험한 상황으로 인지한 동료는 제두홍을 그 자리에서 사살한다.
한편, 신유는 우연히 타숙이 마약 조직과 밀거래를 하는 현장을 비디오 카메라로 촬영하는 데 성공한다. 경찰로서의 의무를 저버린 타숙에게 배신감을 느낀 신유는 이 사실을 곧 황 반장에게 알린다. 신유가 황 반장에게 비디오테이프를 전달하려고 가던 중 여자친구 에이미 때문에 일이 잠시 지체되면서 본의 아니게 타숙을 아버지처럼 따르던 테리가 비디오를 보게 된다. 자신과 타숙을 한편으로 의심해 일부러 이 사실을 숨겼다고 오해한 테리가 신유를 호되게 비난한다. 두 사람은 위험천만하게 도로 한복판에서 옥신각신 설전을 벌이지만, 아무리 아버지 같은 타숙이라도 부패 경찰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두 사람은 곧바로 의기투합한다. 이들이 모르는 다른 상황에서는 죽은 서형의 유품을 정리하던 황 반장과 셀리가 거액이 든 통장과 신분 위장용 여권들을 발견하면서 서형이 마약 조직과 연루된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초장부터 권총을 난사하는 처참한 액션장면이 관객을 자극하지만, 그 당시 홍콩 영화가 그러하듯, 악당의 권총 탄알은 모드(Mod)된 게임처럼 무한으로 형사들을 쏘아붙이고, 형사의 권총은 하필 중요한 순간에서 곤란하게 총알이 떨어지는, 요즘 영화처럼 사실적인 맛은 가히 떨어지는 액션 범죄 영화다. 내용도 그야말로 무법천지를 보는 것 같아 잔혹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뻔뻔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주려고 애써 노력한 임달화와 (내겐) 처음으로 코믹 연기가 아닌 다른 연기를 볼 수 있었던 오맹달, 견자단이 등장하는 영화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일대일 무술 장면, 무법천지의 비정한 세계다운 화끈한 결말은 나름 괜찮았다. 이쯤 결말을 짓자면, 「특경도룡」은 그 당시 흔하고 흔했던 고만고만한 홍콩 액션 영화 중 하나지만, 주연배우들이 여전히 스타 배우들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 그래서 그들의 풋풋한 옛 모습과 지금의 원숙한 연기와는 어딘지 모르게 많이 비교되는 함량 미달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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