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성인(Meow, 2017) | 결말은 진부할지라도 그 과정만큼은 아름다운
"엄마, 아빠 돈 때문에 싸우지 마세요. 난 우리 가족이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 오유유
동물을 의인화하여 제작한 가족용 오락영화는 셀 수 없이 많고, 그만큼 유치하고 진부한 값싼 감동만을 억지로 밀어붙이는 고만고만하고 그저 그러한 영화들도 비일비재하지만, 그래서 (최소한 나에게서 만큼은) 괜한 시간 낭비일 것 같은 노파심에 쉽게 선택의 손길이 가지 않는 장르이지만, 그런 연유로 별 기대 없이 재생 버튼을 누른 「묘성인(喵星人 Meow, 2017)」이지만, 아, 정말이지 전혀 유치하지 않고, 전혀 엉성하지 않고, 전혀 지루하지 않고, 전혀 억지가 아닌, 그러한 CG와 연기, 이야기, 영상의 따사로운 조화로 마치 생각지도 못한 소소한 행운을 맛난 듯한 기대 이상의 감동을 안겨준 이 영화는 가족용 오락 영화의 정수가 무엇인지를 걸쭉하게 되새김해준다. 그것은 빌어먹게도 눈물 콧물로도 모자라 허탈함까지 쥐어짜 내는 억지웃음과 억지감동이 아니라 샘솟듯 솟아오르는 자연스러운 감개가 오장육부를 휘감고 감치는 감동 중의 감동이다. 아무튼, 「묘성인」은 꿀꿀하고 울적한 마음을 달래고 싶을 때, 꼭 꿀꿀하지 않더라도 유쾌한 영화를 보고 싶을 때, 그리고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마련하고자 하는 자리에도 만점인 영화다.
「묘성인」은 저 먼 은하계 끝 어딘가에 있다고 전해지는 ‘야옹 행성’의 무자비한 침공 계획으로부터 시작한다. 야옹인들은 행성의 쇠퇴에 대비하여 이미 오래전에 야심 찬 행성 이주계획을 세웠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구 침공! 그래서 그들은 오래전에 영웅 중의 영웅들을 지구에 선발대를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들이 어찌 된 이유인지 수천 년간 깜깜무소식이었으니, 야옹인들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떠난 이몽룡을 기다리는 춘향이꼴이 되고 만 것이다. 결국, 지구에서의 소식을 기다리다 못해 조바심이 턱 밑가지 차오른 난 야옹왕은 다시 한 번 지구로 ‘야옹 전사’ 서미로를 보내기로 작정한다. 서미로는 푸른 수정처럼 빛나는 ‘비밀 병기’ 목걸이와 ‘야옹인 필살기’로 무장한 현존하는 최고의 ‘야옹 전사’이므로 오래전에 지구로 떠난 선발대의 몫까지 다하여 지구를 철저하게 섬멸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야옹인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서미로를 태운 우주선이 지구에 무사히 도착하려는 찰나에 그만 예상치 못했던 이상 기후에 휩쓸린다. 이 사고로 서미로는 왕이 그렇게도 신신당부했던 ‘비밀 병기’ 목걸이를 잃어버린다. 어느 가정집으로 떨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 목걸이는 그저 그런 개목걸이도 아니고, 야들야들한 귀부인 목덜미를 가려주는 호화로운 장식품도 아닌, 전사로서의 힘과 생명을 유지해주는 아주 귀한 물건이었으니 서미로서는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구에서 이 목걸이가 없다면 서미로의 몸은 곧 분해되어 사라질 터, 하지만 이 위기를 벗어날 방법이 딱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분해되어 죽기 전에 가장 비슷한 생명체로 자신을 복제하면 되는 것이었다. 자신의 육체가 먼지가 되어 공중으로 분해되어 가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서미로는 마침 ‘비밀 병기’가 떨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지역 근처에서 운이 좋게도 한 마리의 고양이를 발견한다. 정신을 곧 잃을 것 같았던 서미로는 생각하고 선택하고 뭐고 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복제를 시작한다.
한편, 한 때 ‘신의 손’이라고 불렸던 홍콩의 은퇴한 축구 스타 오수룡은 잘 속는 철부지 같은 면 때문에 축구로 번 돈은 이미 탕진한 알거지나 다름없었다. 스타에서 직업을 구걸하는 백수로 전락한 그에겐 성질이 불 같은 아내이자 배우로 활동하는 주여주, 장차 영화감독이 꿈인 유튜버이자 장남인 오우재, 마지막으로 한쪽 다리를 잘 못 쓰는 장애를 안고 사는 작고 귀여운 딸 오유유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축구 중계를 해설하는 테스트해서 참담한 실패와 비웃음을 한가득 먹고 방송국을 나온 오수룡은 축구 감독직의 성사 여부를 쥔 한 지인으로부터 거절하지 못할 부탁을 받는다. 바로 지인이 여행을 갔다 올 동안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시시리를 잠시 맡게 된 것이다. 그깟 고양이 한 마리쯤이라고 가볍게 여긴 오수룡이 막상 지인으로부터 고양이를 인수받고 보니 이것은 고양이가 아니라 돼지, 아니 돼지 같은 괴물 고양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큰 고양이가 있을 수 있을까? 평소라면 불가능했던 일일지 모르지만, 그날 오수룡이 시시리를 만난 그 운명적인 순간만큼은 가능했다. 왜냐하면, 시시리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고자 서미로가 복제했던 그 고양이였던 것이다!
한시라도 자신의 임무를 망각할 수 없었던 서미로는 ‘비밀 병기’를 찾고자 오수룡의 집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한편, 텔레파시를 이용해 ‘야옹 카페’를 찾아가 오래전에 지구로 보내졌던 원로들을 찾아뵙는다. 서미로는 나태해진 원로들 앞에서 지구 침공의 당위성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아 보지만, 이미 안락한 삶에 길든 원로들은 ‘주인만 잘 만나면 상팔자’라는 식의 심드렁한 대꾸만 할 뿐이다. 이에 격분한 서미로는 ‘지구 침공은 가족 파괴로부터’라는 선전문구를 앞세우며 자신이 직접 오슈룡 가족을 파괴함으로써 ‘야옹 전사’의 자존심을 세우기로 많은 원로 앞에서 굳세게 다짐한다.
「묘성인」은 가족용 오락영화이니만큼 결말은 다소 진부할 수밖에 없지만, 그 과정만큼은 참으로 아름답고 유쾌하고 가슴 뭉클한 영화다. 그래서 앞서 그렇게 있는 말 없는 말 다 꺼내 가며 칭찬을 퍼부었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SF소설 류츠신(劉慈欣)의 『삼체(三體: The Three-Body Problem)』의 주제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문명이 존재하는 행성의 수명이 다 되었을 때, 과연 문명은 그 종말의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야옹인들이나 삼체인들처럼 적당한 외계 행성을 고른 다음 그 행성에 살던 문명을 멸망시키고 그 자리를 자신들의 문명으로 대체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아니면 예정된 운명대로 비극적이지만 장엄하게 종말을 받아들이는 것이 옳은 것일까? 이 문제는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과연 타인의 행복을 파괴하면서까지 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이런 일이 정당한 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라면 타인에 의해 내 행복이 파괴되어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되라는 말이지 않은가?
끝으로 「묘성인」을 보고 나니 뜬금없게도 요즘 젊은 부모들에게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돈’일까? 아니면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일까? 라고 묻고 싶어진다. 누군가는 말한다. 아이가 부모에게 매달리고 어리광부리는, 가장 부모를 필요로 하고 가장 크게 부모에게 의지하는 나이는 아이의 일생 중에 찰나라고. 그 몇 년 안 되는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내지 않은 부모는 쓸쓸해지는 노년이 되면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된다고 ‘인생의 현자’들의 진심 어린 조언을 담은 『내가 알고 있는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칼 필레머)』는 증언하고 있다. 단순한 오락 영화일지 모르지만, 보기에 따라선 썩 괜찮은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썩 괜찮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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