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무적(天下無賊, 2004) | 늑대도 하지 않는 짓을 하는 것이 사람
"해치지 않으면 늑대도 물지 않아요. 이젠 얘기할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사람이 날 해치겠어요? 사람이 늑대만도 못해요?" - 사건
남의 재산을 훔쳐 생활을 꾸려가는 왕보와 왕리는 연인 도둑단이다. 어느 날 두 사람은 거의 협박 반 강탈 반으로 빼앗은 벤츠를 타고 분주한 도시를 떠나 황량한 티베트로 향한다. 왕보의 도둑 심보는 변함이 없었지만, 왕리는 이런 생활을 청산하고 정직하고 선량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었고, 잠시 머무른 절에서 부처님 앞에 넙죽 엎드려 기도함으로써 그녀는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공양한다. 결국, 이 일로 왕보와 심하게 다툰 왕리는 쓸쓸한 도로 한복판에 홀로 남는 길을 선택한다.
이때 절의 수리일을 마치고 동료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숙소로 귀가하던 사근은 길 잃은 양처럼 외로이 서 있는 왕리를 마을까지 데려다 줌으로써 두 사람의 작은 인연은 시작된다. 사근은 5년 동안 일하면서 번 돈을 모두 찾아 고향으로 내려갈 참이었는데, 동료나 선배들은 그렇게 큰돈을 소지하고 기차를 타고 가는 것은 위험하다며 송금하라고 충고하지만, 수수료가 아깝기도 하고 한편으론 세상에 도둑은 없다고 믿는 순진한 사근은 기차 플랫폼에서 자신이 큰돈을 가졌다고 자신만만하게 외치면서 현금을 모두 가방에 넣은 채 기차를 탄다. 기차역에서 왕보를 다시 만난 왕리는 첫 만남부터 자신을 친누나처럼 따르는 착한 사근이 좋았기도 했고, 한편으론 좋은 일도 하고 싶어 내심 사근의 돈을 지켜주기로 마음먹지만, 왕보는 사근의 돈에 흑심을 품는다.
왕보, 왕리, 사근이 탄 내륙으로 향하는 기차에는 전설적인 도둑 리 선생이 이끄는 도둑단도 타고 있었다. 리 선생은 기차에서는 사냥을 하지 말라고 부하들을 단속하지만, 돈에 욕심이 먼 부하들은 리 선생 몰래 사근의 돈을 노리면서, 역시 사근의 돈을 노리고 있었던 왕보와 충돌하게 되는데….
「천하무적)」에 등장하는 주연 배우들도 화려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훗날 「도사하산」의 주연을 맡는 등 액션배우로 거듭나는 왕바오창이 양처럼 순진하고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시골 청년 연기와 작금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는 매력 만점 배우 리빙빙이 리 선생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섹시한 여도둑 연기도 일품이다. 무협 영화의 두 고수가 검을 휘두르며 검무를 펼치듯 날카롭기 그지없는 면도칼을 손아귀에 살포시 얹은 채 축구공만 한 공간에서 펼치는 소매치기들의 미세하면서도 어느 것 못지않게 화려한 대결도 볼만하다.
영화 「천하무적」에는 연기와 액션도 있지만, 세상에 도둑은 없다고 마음 놓는 사근이 문제인지, 아니면 모든 사람을 경계하고 보는 현대인의 병적인 의심이 문제인지 등 사람의 근본적인 성정을 다시금 탐구하게 하는 철학적인 면도 있는 영화다. 그래서 그런지 지구 생태계에서 사람이 '천하무적'인 이유는 늑대도 하지 않는 짓을 서슴지 않고 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한다. 감미롭고 슬픈 음악에 운을 띄우는 듯한 가슴 뭉클한 마무리는 눈물겹도록 찡하며, 중국 기차 안에 만연한 소매치기들을 은근히 풍자하는 듯한 뉘앙스도 포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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