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섬가이즈(2024), 원작에 오컬트 양념을 더하다
한국판 ‘터커 & 데일 vs 이블’
오해와 우연한 사고들로 인해 발생하는 코믹 잔혹한 상황을 그려낸 「터커 & 데일 Vs 이블(Tucker & Dale Vs Evil, 2010)」의 한국판이라 할 수 있는 것이 「핸섬가이즈(2024)」다.
두 명의 인상 험악한 남자 주인공들이 숲속의 인적 없는 집으로 이사한 후 근처에 놀러 온 대학생과 엮이면서 발생하는 오해와 코믹한 상황, 그리고 두 남자는 의도치 않은 (우연의 연속이라 할 수 있는) 기묘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대학생들에게 납치법, 연쇄살인마 등 무시무시하고 위협적인 존재로 비치고, 이후 연달아 발생하는 엽기적인 자살극(?)도 모두 「터커 앤 데일 vs. 이블」의 오마주다.
다른 점은 (아마도 한국적 정서에 맞게? 혹은 원작을 고스란히 복제하는 게 민망했던지 아무튼) ‘악마’, ‘엑소시즘’이라는 오컬트 요소가 추가되면서 초자연적인 요소와 코미디를 어떻게든 결합하려고 했다는 점, 「총알 탄 사나이」 풍의 슬랩스틱 코미디 스타일을 추가하려고 시도했다는 점, 원작의 ‘어리벙벙한’ 두 주인공을 ‘험악한’ 인물로 교체하려고 했다는 점 등이다.
얼마 전 감상한 옴니버스 공포 영화 「신체모음.zip(2023)」에도 ‘엑소시즘’이라는 서양식 퇴마의식을 소재로 한 단편이 삽입되었는데, 어느덧 한국 영화의 ‘공포’ 장르에도 ‘엑소시즘’이란 소재는 매우 보편화된 듯하다. 하지만, 서양 영화를 한국 정서나 문화에 맞게 리메이크할 생각이라면, ‘엑소시즘’보단 ‘무당’을 활용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천만 원짜리라는 어마어마한 부적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재필 & 상구’의 황당 전원생활
집도 가졌고, 차도 가졌고, 강아지도 가졌고, 세상에서 둘 도 없는 잘생긴 얼굴도 가졌는데 오로지 ‘여자’만 없다는 재필(이성민 분)과 상구(이희준 분)가 전 재산을 털어 마련한 시골집에서 꿈에 그리던 전원생활을 막 시작하려는 첫날, 마치 숙명처럼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사건들로 인해 두 남자의 영혼은 그야말로 탈탈 털린다.
하지만 고진감래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고통과 살육과 악마와 ‘X 같은 염소’와 띨띨한 사제 등이 폭풍처럼 일으킨 강력한 환혹력에 두 남자의 영혼은 탈탈 탈곡되면서 정신도 육체도 인생도 탈탈 거덜 날 줄 알았는데 얄궂게도 두 남자의 운명에 미나(공승연 분)라는 뭇남자의 정신을 탈탈 털어갈 만한 여대생이 선물로 탁 주어진다. 이로써 시작은 황당했고 흐름은 어처구니가 없었던 두 남자의 전원생활은 사랑과 낭만이 충만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이 정도 결과만 100% 보장되면 ‘재필 & 상구’ 한 번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상황에 따라선 오히려 남는 장사인 것 같은데?
금욕적 공포의 역설
제대로 된 공포 영화라면 ‘섹시’한 장면이 (아주 잠깐일지라도) 양념처럼 추가되어 긴장을 완화하거나 관객들이 받는 충격을 희석해 주는 것이 관례다. 「터커 앤 데일 vs. 이블」에선 앨리슨 역을 맡은 카트리나 보우덴의 환호와 탄사를 보내면서 살짝 침을 질질 흘릴만한 멋진 속옷 장면이 잠깐 등장하는데, 「핸섬가이드」는 지질맞게도 한국인의 (겉만) 금욕적인 정서에 맞게 재해석해서인지, 아니면 가족 오락물을 고려해서인지 그런 흐뭇한 장면이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이건 공포 영화의 상식 파괴가 아니라 공포 영화의 전통과 관객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고 더불어 사람이 가진 고유한 본성을 기만하는 야만적인 행위다. 어차피 통나무를 분쇄하는 우드 치퍼로 사람도 갈아버리는 정신 사나운 마당에 속옷 장면 하나 안 나와준다면, 정서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너무 메마른 것 아닌가?
‘성당’과 ‘욕지거리’가 ‘한국적’?
GPT-4o는 「핸섬가이드」가 ‘한국의 시골 풍경과 삶, 그리고 한국적인 유머와 대화가 가미되어 현지 관객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각색’되었다고 하는데, 언제부터 ‘성당’과 ‘욕지거리’가 한국의 시골 풍경과 한국적인 유머로 간택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원작을 한 번이라도 감상한 관객이라면 「핸섬가이드」에서 침대 위를 데구루루 구르다가 꽈당하고 떨어질 정도로 웃을만한 장면은 굼벵이처럼 느리게 재생해도 코딱지만큼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 같고, 다만 혀를 끌끌 차며 소소하게 웃을만한 장면은 간간이 등장한다. 그렇게 되먹지 못한 영화는 아니라는 말. 고로 원작을 감상하지 않은 관객이라면, 반드시 원작을 보게 만들 정도로 감화력은 있는 영화다. 물론 원작을 보고 나면 「핸섬가이드」가 상당히 어설펐다는 느낌을 지우지는 못하겠지만.
늙어가는 한국 영화?
아마도 흥행을 위해?, 혹은 한국인의 여리고 여린 정서를 위해?, (영등위 기준으로) ‘18세이상관람가’ 영화를 ‘15세이상관람가’ 영화로 ‘하위 호환’ 방식으로 리메이크하다 보니 블랙 코미디적인 감각과 피 튀는 잔인한 요소들이 많이 완화되었다. 워낙 원작 자체가 마니아들만 찾는 뜬금없는 영화이다 보니 ‘라이트’한 버전도 필요하리라. 이 정도 수위라면 좀 개방적인 부모를 둔 가족이라면 다함께 둘러앉자 사이좋게 낄낄대고 박장대소하면서 시청하기에 무난하리라.
끝으로 한국 영화 • 드라마를 즐겨보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몇몇 최신 영화를 통해 접한 젊은 배우들을 보면 싹수가 안 보인다. 1990년대 전후로 활동을 시작한 설경구, 한석규, 송강호, 이병헌, 최민식, 이영애, 전도연 등의 뒤를 이을만한 대형 배우가 없다는 말이다. 「핸섬가이드」의 두 남자 주인공도 관록 있는 중견 배우들(개봉 당시 나이는 56세 45세, 공승연 분은 31세)이 맡은 것을 보면 왠지 한국 영화가 늙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참고로 원작의 경우 두 남자 주인공과 한 명의 여자 주인공(Katrina Bowden)의 개봉 당시 나이는 39세 32세 22세였다. 물론 이런 것이 ‘확증편향’에 의한 순전히 내 기우면 다행이지만.
GPT-4o가 추천한 영화
「Tucker & Dale vs Evil」, 「핸섬가이드」를 재밌게 본 사람에게 GPT-4o가 추천하는 영화는 다음과 같다.
1. 「새벽의 황당한 저주(Shaun of the Dead, 2004)」: 좀비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한 코미디 영화로, 유머와 공포를 절묘하게 결합하여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2. 「좀비랜드(Zombieland, 2009)」: 좀비가 창궐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규칙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코미디와 액션이 어우러진 영화입니다. 유머와 창의적인 설정이 돋보입니다.
3. 「캐빈 인 더 우즈(The Cabin in the Woods, 2011)」: 전형적인 공포 영화의 설정을 뒤엎는 독창적인 스토리와 유머가 결합한 작품으로, 공포 영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합니다.
4.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What We Do in the Shadows, 2014)」: 뉴질랜드의 한 흡혈귀 커뮤니티의 일상을 다룬 모큐멘터리 스타일의 코미디 영화로, 독특한 유머와 설정이 매력적입니다.
5. 「무서운 영화(Scary Movie)」 시리즈: 다양한 공포 영화의 패러디로 가득한 코미디 시리즈로, 장르와 전형적인 클리셰를 풍자하는 유머가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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