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완 앳킨슨의 인간 vs 벌(Man vs. Bee, 2022)
오래간만에 즐기는 로완 앳킨슨식 몸 개그
‘미스터 빈’이라는 코믹 캐릭터로 유명한 로완 앳킨슨(Rowan Atkinson)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쇼츠 드라마이다. 관객의 배꼽을 인정사정없이 뽑아버렸던 앳킨슨의 전매특허 ‘몸 개그’를 잊지 못하는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작품!
성룡 같은 액션 배우는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액션’ 수위와 강도가 차츰 낮아지다가 더는 ‘액션’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만(참고로 성룡은 한 인터뷰에서 강한 액션 장면이 등장하는 마지막 영화는 「차이니즈 조디악(2012)」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성룡보다 한 살 젊은) 앳킨슨의 코믹 연기는 ‘미스터 빈’ 이후로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폭소를 자아낸다(솔직히 말해 전성기 때만큼은 살짝 못하지만).
앳킨슨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정 연기와 우스꽝스러운 몸 연기 조합은 대사 없이도 웃음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나이 때문인지 드라마 ‘미스터 빈’만큼 ‘몸 개그’가 빈번하게 등장하지는 않지만, 한 번 발동된 ‘몸 개그’는 요절복통을 터트리고도 남으니 그 품질은 여전하다. 그저 짧은 상영시간이 아쉬울 따름.
벌과의 전쟁: 트레버의 대저택 대소동
초짜 하우스 시터 트레버는 어느 날 수많은 고가의 물건들로 가득한 으리으리한 저택으로 출근한다. 집주인은 트레버의 멍한 첫인상부터가 뭔가 못마땅했지만, 휴가를 즐길 생각에 들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두툼한 저택 사용 설명서가 있어 별문제 없을 것으로 판단했는지, 까다로운 개 컵케이크와 저택을 트레버에게 맡기고 유유자적 휴가를 떠난다.
훗날 수많은 하우스 시터 중 하필 트레버에게 집을 맡긴 것은 집주인에게 있어 여러모로 최악의 선택이었음이 드러난다.
하지만, 누가 알았을까? 트레버에게 저택 설명서보다 더 위협적인 것이 달콤한 꿀을 만들어 주는 부지런한 일꾼이자 민주주의의 화신이기도 한 벌 한 마리일 줄이야!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성향이 무섭도록 강한 트레버는 벌 한 마리를 집 밖으로 내쫓고자 전쟁 아닌 전쟁을 시작한다.
트레버는 집안을 벌집 쑤신 것처럼 난장판으로 만드는 고군분투를 벌이고 유치찬란한 작전을 잔뜩 펼친 끝에 벌을 전자레인지에 가두는 데까지 성공한다. 이제 ‘Cook’ 스위치만 누르면 시답잖은 벌과의 전쟁은 종전을 선언하게 되리라. 하지만, 웬일인지 트레버는 망설인다.
영화/드라마에서 죽일 수 있을 때 죽이지 않았던 일이 훗날 재앙을 일으키는 화근이 되듯 트레버의 선량한 망설임은 훗날 그에게 엄청난 재앙으로 되돌아온다.
에이리언이 아닌 단지 벌 한 마리 잡으려고 했던 것인데, 어찌 된 일인지 트레버는 화염방사기로 집안을 홀라당 깡그리 불태워 버리는 지경에 다다른다. 자기가 무슨 리플리라도 되는 줄 아나?
아무튼, 드넓고 조용하고 한적하고, 그래서 누구나 한평생 살아보고 싶은 그런 호화로운 저택에서 어쩜 저렇게 무지막지한 파괴 행위를 일삼을 줄이야. 트레버는 이 모든 것이 벌 때문이라고 하소연하는데 과연 누가 그 말을 믿을까?
사람과 벌의 전쟁: 웃음과 안쓰러움 사이
‘톰과 제리’를 보는 듯한 로완 앳킨슨과 벌과의 대결만 놓고 보면 웃기기는 하지만, 툭 건들면 쓰러질 것 같은 노인네가 벌 한 마리 때문에 지랄발광하는 모습이 썩 보기 좋은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안쓰럽기 그지없다. 막판에 소소하면서도 살짝 감동적인 반전이 있어 이때껏 뭉친 불편한 앙금을 쓸어내릴 수 있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어찌 되었든, 아무 생각 없이, 그리고 큰 기대 없이 즐길 수 있는 단순한 줄거리다. 벌 한 마리에 대한 집착이 파괴적으로 흘러가는 설정은 자학적이고 편집광적으로 보일 수 있어 처절하게 안쓰럽다. 사실 이보다 더욱 못마땅해야 할 것은 영화 한 편 분량을 9개의 짧은 영상으로 나눈 상술이기는 하지만.
트레버가 벌에 집착하는 것처럼 양극성 장애인 같은 불안정한 감정 따위 등의 트레버의 겉모습에만 집착하면 웃음을 얻을 수 없다. 앳킨슨이 트레버 역할을 맡은 것에 만족하면서 사람과 벌의 어설픈 전쟁의 예측 불가능한 모험을 즐기면 그만이다. 내 저택도 아닌데 홀라당 파괴되면 어떠한가? 웃을 수 있으면 그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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