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07

드라마 강희왕조(康熙王朝, 2001)

drama review | Kangxi Dynasty(康熙王朝,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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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강희왕조(康熙王朝, 2001)

drama review | Kangxi Dynasty(康熙王朝, 2001)
<이발하는 강희제>

작가 얼웨허(二月河)의 소설 『강희대제(小說 康熙大帝)』를 원작으로 한 TV 역사 드라마.

소설 『강희대제』는 청나라의 황금기인 강건성세(康建盛世)를 다룬 《강희대제》, 《옹정황제》, 《건륭황제》, 즉 ‘제왕삼부곡(落霞三部曲)’ 시리즈 중 첫 번째인데, 『강희대제』는 얼마 전에 다 읽었고, 현재는 『옹정황제』 마지막 권을 더위를 피할 겸 틈틈이 읽고 있는 중.

아무튼, 이번에 얼웨허 팬이 된 한 사람으로 얼웨허의 인생 최고작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는 놓칠 수 없었기에 요즘의 FHD가 아닌 옛날 TV 화질임에도 불구하고 감상을 감행했다. 이것은 김용의 골수팬이 잊을만하면 리메이크되는 드라마 영웅문 시리즈(원제는 사조삼부곡(射雕三部曲))를 놓칠 수 없는 것과 완전히 같은 이치.

드라마 옹정황제(雍正王朝, 1999)

강희제

drama review | Kangxi Dynasty(康熙王朝, 2001)
<어린 강희, 청년 강희, 성년 강희>

강희제의 성년 역할은 중국의 국가 일급 배우(国家一级演员)인 첸다오밍(陈道明)이 맡았다. 옛날 TV 화질이라 그런지 최근의 (잘 만들어진) 몇몇 중국 사극 드라마 같은 의상, 소품, 촬영 세트, 배경 등 (시대극이라면 간과해서는 안 되는) 볼거리에서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화려한 영상미는 만끽하기 어렵고, 연기도 중요 역할을 맡은 몇몇 배우들을 제외하고는 탐탁지 않다.

하지만, 위엄과 권세로 천하를 호령하는 황제, 한편으론 백성의 안민을 근심하는 부모관(父母官)으로서의 황제를 연기한 첸다오밍의 중후한 연기는 역시 명불허전이다. 다른 모든 걸 제쳐두고 첸다오밍의 연기 하나만으로도 드라마 「강희왕조」는 볼만한 가치가 있다.

사실 ‘강희’는 중국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김용 팬들에게도 익숙한 인물이다. 바로 소설 『녹정기(鹿鼎记)』에서 위소보를 마치 부처님 손바닥 위에 있는 손오공처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강희이기 때문이다.

‘녹정기’ 속 청년 ‘강희’는 개구쟁이 같은 활달함 속에 지혜를 갖춘 영민한 청년 군주로, 얼웨허가 만든 ‘강희’는 세상을 근심하는 군주이자 정에 약한 한 인간으로서의 황제로, 역사책 속의 ‘강희’는 티끌만큼의 모호함도 성군으로, 그리고 오늘 소개한 드라마 속 ‘강희’는 세상만사에 비정할 수밖에 없는 외롭고 고독한 황제로 묘사된다.

어느 ‘강희’가 진짜 강희일까? 혹은 중국이 원하는 ‘강희’는 누구일까?

효혜장황후

drama review | Kangxi Dynasty(康熙王朝, 2001)
<황태후 앞에서 무릎 꿇는 황제 강희>

강희가 황제로 즉위한 후, 청나라에서 강희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여성인 황태후 역은 몽골 출신의 배우 쓰칭가와(斯琴高娃)가 연기했다.

무려 3명의 황제를 모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그녀는 어린 강희가 친정할 때까지 보정 대신들의 권력 다툼과 천자조차 업신여기는 오배의 만행 속에서 황제로서 어떻게 처신하고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 가르치는 조타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황제를 세울 수 있지만, 황제가 될 수는 없는 그녀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강희도 없었을 것인데, 특히 황태후는 ‘중립’의 묘미를 강희에게 일깨워줌으로써 훗날 청년 강희가 오배 일당을 일망타진하는데 든든한 뒷배가 되어준다.

청나라를 호령하는 황제를 무릎 꿇게 할 수 있는 여장부에서 성인이 된 강희에게 모든 걸 의지한 채 화초와 말동무하는 쓸쓸한 말년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굴곡진 삶만으로도 한 편의 드라마가 따로 없다.

영비(榮妃)

drama review | Kangxi Dynasty(康熙王朝, 2001)
<용비와 용비의 딸 란제아(蓝齐儿)>

엄청난 하렘 속에서 엄청난 경쟁을 뚫고 강희의 사랑을 받는 측비 영비(드라마에선 용비)는 배우이자 의상 디자이너인 리지안칭(李建群)이 연기했다.

이상하리만치 사람의 시선을 끄는 모호한 매력이 있는 아랫입술의 점(이것이 바로 미인점?)과 비련의 여주인공에게나 어울릴법한 슬픈 눈썹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서 그런지 그녀의 손짓·발짓 모두가 기품 그 자체다.

황후라도 내정에 간섭할 수 없는 엄중한 규율 때문에 얼웨허의 원작이나 『강희제 평전(康熙傳)』 같은 역사서에도 후궁의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려운데, 강희의 로맨스를 묘사하려고 일부러 그녀를 주요 인물로 배정한 것은 아닌가 싶다.

아무튼, 영리하고 사려 깊을 뿐만 아니라 너그럽고 포용력도 있는 그녀는 미모와 지혜가 공존하는 모범적인 여성상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내정 간섭’이라는 불경죄를 여러 번 저지르면서 신분이 급락한 끝에 말년엔 변기통을 닦는 노비로 전락한다. 비극적 인물이지만 전혀 슬퍼하지 않는 그녀의 행동이 강희의 무정함을 대변하는 듯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애첩조차 노비로 강등시켜야 할 만큼 궁중 규율은 엄격할 뿐만 아니라 황제의 위엄 역시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즉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 황제만이 겪는 시련으로도 볼 수 있다.

소인배들은 사랑과 안민 중 사랑을 택하겠지만, 황제는 그럴 수 없는 것. 영비에 대한 강희의 진심은 그녀가 죽은 후 황후로 추존하는 것에서 드러난다. 드라마에선 강희보다 영비가 먼저 죽지만, 실제론 강희보다 5년 더 살았고, 영비를 연기한 리지안칭은 아쉽게도 3년 전 이맘때쯤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마치면서...

얼웨허의 원작을 읽은 사람은 알겠지만, 원작을 각색한 것 치고는 많이도 어긋난다. 아마도 50편으로 마무리하기엔 원작이 워낙 방대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한국어판은 12권). 그러면서도 또 실제 역사와도 많이 어긋나는 점들이 꽤 있어서 진정한 역사 드라마로 보기엔 오해의 소지도 크다.

성년 강희를 보좌하는 3대 대신으로서 색액도(索額圖), 납란명주(納蘭明珠), 웅사리(熊賜履)를 꼽을 수 있는데 드라마엔 웅사리 대신 진정경(陈廷敬)이 등장한다. 장자오청(蔣兆成)과 왕리건(王日根)의 『강희제 평전(康熙傳)』에는 색액도는 46번, 명주는 30번, 웅사리는 13번 언급되지만 진정경은 4번 언급된다. 또한, 순치 3년(1646년)에 대만을 배반한 시랑(施琅)이 드라마에선 강희가 대만을 본격적으로 정복하려는 시기까지 대만의 수군을 지휘하는 장군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뿐만 아니라 강희 말년 10여 년 넘게 이어진 황자 24명의 치열한 암투가 황장자 윤제와 태자 윤잉과의 대결로 축약되어 있다(나중에 옹정황제가 되는 넷째 황자 윤진, 그리고 윤진과 대립하는 팔황자당은 아예 생략).

원작이 소설이니만큼 원작과 어긋나는 점은 개의치 않지만, 역사 속 사실을 완전히 뒤바꾼 설정은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잘못된 사실을 심어줄 수 있어 경계의 대상이다. 그런 점에서 청나라 역사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드라마는 아니다. 또한, 얼웨허의 원작 속에서 신명 나게 펼쳐지는 마치 무협지를 보는 듯한 통쾌한 강호 • 민생 • (강희의) 미복 순행 이야기도 빠져 있다. 한마디로 드라마엔 궁중 이야기로만 가득하다.

어찌 되었든, 강희는 인류가 나은 성군 중의 한 사람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강희제의 치세 기간을 고려하면 짧다면 짧을 수 있는 50편의 드라마에 다른 것은 몰라도 한 나라를 통치하는 군주가 지녀야 할 재능 중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용병술, 용인술의 중요함은 아주 잘 드러나 있다. 한 사람이 공부를 안 하면 한 사람의 인생이 망치는 수준에서 끝나지만, 한 나라를 책임지는 군주가 공부를 안 하면 한 나라를 망친다. 지금 한국이 겪고 있는 비통한 현실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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