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룡의 소림용호문(少林門, 1976)
때는 청나라 말기, 반청복명의 기치를 내건 소림사와 청 조정이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을 때 부에 눈이 먼 소림사의 반역자 스샤오펑 때문에 소림사는 무너지고 남은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스샤오펑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던 소림사 제자들은 주지 스님과 여러 제자 앞에서 뛰어난 무술 실력을 보인 윤페이를 대륙으로 보낸다.
대륙에 도착한 윤페이는 스샤오펑의 동태를 살피던 중 스샤오펑에게 원한을 가진 동지를 만나게 되는데, 이들은 복수와 정의를 위해 힘을 합쳐 스샤오펑과 맞선다.
이 영화를 촬영할 때까지만 해도 무명이었던 성룡이 이후 대성하는 바람에 영화제목에 ‘성룡’ 이름이 억지로 포함되었지만, 「소림용호문(少林門)」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고 해도 담도량(谭道良, 윤페이 역)이고, 우리는 그 사실에 약간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17세에 태권도 사범(당시 최연소), 20세부터 3년 연속 한국태권도대회 우승을 차지했던 화려한 무술 경력을 가진 한국의 전 태권도 챔피언이다. 그의 출중한 실력은 영화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특히 현란한 발기술이 독보적인데, 이 때문에 족왕(腿王, Flash legs)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고 한다. 영화에서 그는 (성룡, 홍금보와 함께) 모든 무술 동작을 손수 연기하며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는데, 원표에게 태권도를 가르친 적도 있던 그는 캘리포니아 몬터레이 파크에 태권도 도장을 열었고(현재는 그의 제자들이 운영 중) 현재 대만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 홍콩 합작영화가 인기를 끌었던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 무술 영화에 싹수가 보였는데, 지금은 이런 인재들이 다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소림용호문(少林門)」은 쌍꺼풀 수술 전의 성룡(成龙)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형의 복수를 위해 윤페이와 합류하는 탄샤오디 역을 맡은 성룡 역시 탄탄한 무술 실력을 보여준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울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연기하는 그는 동료를 위해 희생하는 비극적인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홍금보(洪金宝)는 스샤오펑의 왼팔이자 성룡보다 조금 더 오래 살아남는 두칭 역을 맡았다. 무술 감독 역시 홍금보가 맡았다. 루이스 수아레스의 핵이빨을 연상시키는 뻐드렁니가 악당 중에서도 광대 같은 역을 맡은 그에게 잘 어울린다.
오우삼(吴宇森) 감독의 무명 시절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소림용호문(少林門)」엔 원표, 원화, 조춘 등 1970/80년대 한국/홍콩 무술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 조연으로 등장하는데, 조춘의 모습은 확인했지만, 원표(元彪)와 원화(元華)의 모습은 확인하지 못했다.
영화를 감상하면서 숨은그림찾기 하듯 두 사람을 찾아보는 것도 재밌을 것이다.
알다시피 이때의 무술 액션은 마치 무술 사범이 제자들에게 무술 동작을 시범하는 것처럼 딱딱 끊어지는 것이 요즘의 빠른 액션에 익숙한 눈에는 우스꽝스럽기만 할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눈높이에 맞춰 진중한 태도로 감상할 수 있는 연륜 있는 관객이라면 쿵후에 있어 중요한 덕목인 절도와 품격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폭력을 위한 액션이 아니라 미학의 무술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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