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07

보이저스(Voyagers) | 고귀한 임무 vs 내부의 불확실한 적

영화 리뷰 | 보이저스(Voyagers, 2021) | 고귀한 임무 vs 내부의 불확실한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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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저스(Voyagers, 2021) | 고귀한 임무 vs 내부의 불확실한 적

영화 리뷰 | 보이저스(Voyagers, 2021) | 고귀한 임무 vs 내부의 불확실한 적
<새 식민지 건설을 설명하는 과학자>

인류는 지독한 온난화로 지구가 더는 살만한 곳이 못 되자 최고의 DNA 조합과 시험관 수정으로 생산한 십대 30명과 이들을 지휘할 구세대 인간 리처드를 우주선에 실어 ‘새 행성 개척’이라는 막중한 임무와 함께 태양계 너머로 날려 보낸다.

그런데 이게 웬걸. 선장 리처드에게 일어난 미스터리한 죽음, 이후 혼란에 빠진 젊은이들은 인류의 원시적인 동물적 본성에 너무 쉽게 굴복하는 나약한 모습을 보여준다.

인류의 희망과 꿈을 인류가 소비한 화석 연료만큼이나 가득 싣고 떠난 이들은 과연 인류의 기대에 부응해 3세대에 걸친 86년간의 항해를 무사히 마치고 지구형 행성에 도착해 인류의 새 역사를 시작할 수 있을까? 아니면 새 행성에 도착하기도 전에 지구의 인류처럼 자멸의 길을 걸을까?

영화 리뷰 | 보이저스(Voyagers, 2021) | 고귀한 임무 vs 내부의 불확실한 적
<식민지 개척을 위해 최고의 DNA 조합으로 만들어진 예비 선원들>
영화 리뷰 | 보이저스(Voyagers, 2021) | 고귀한 임무 vs 내부의 불확실한 적
<스타워즈의 클론 부대를 보는 듯한 느낌?>

일단 영화 「보이저스(Voyagers, 2021)」는 (순전히 내 의견이지만) 웬만큼 망치지 않으면 본전은 뽑을 것 같은 SF 장르에서 ‘Box-office bomb’(참담한 흥행 실패)라는 불명예를 차지했다는 가슴 아픈 사실을 먼저 밝혀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이 영화를 감상하기 전에 이 명확한 사실을 알았더라면, 낭비한 시간은 둘째치고 소고기인 줄 알고 먹은 고기가 개고기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느꼈을 법한 허무함과 불쾌함에 휘둘리는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을 테니까.

아무튼, 생태 순환 시스템을 갖춘 항성 간 항해가 가능한 우주선을 만들 정도면 냉동 수면 장치도 가능하지 않았을까나 하는 의아함과 임무를 억지로 떠맡은 새파란 젊은이들 대신 갓난아기를 가진 자원한 부모들을 실어 보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갑갑한 우주선 생활에 적응할 테고, 부모와 함께 있으니 정서적으로도 안정될 것이다. 부모 세대는 자원했다는 자부심뿐만 아니라 아이와 인류에 대한 사명감이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므로 정치적으로도 단합된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영화 리뷰 | 보이저스(Voyagers, 2021) | 고귀한 임무 vs 내부의 불확실한 적
<이 파란 묘약을 마실 때까진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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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파란 묘약을 끊자마자 일어난 리처드의 비극>

내 생각이야 어찌 되었든, 감독은 이런 것보단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천 년 동안 인류에게 강압적인 영향력을 미쳤던 경구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를 기필코 ‘우주 버전’으로 써내야겠다는 집착을 버릴 수 없었나 보다.

인류 사회에서 ‘권력을 누가 차지해야 하는가?’ 하는 구태의연한 문제는 위기일발의 상황에도 갖가지 음모와 당파를 형성할 정도로 유전자에 각인된 떨쳐낼 수 없는 주제다.

감독은 케케묵은, 그러나 묵과할 수는 없는 이 주제를 SF 테마를 사용한 사회학 실험을 시행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폭력적 본성이 상황에 따라 언제든 뛰쳐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필립 짐바르도의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루시퍼 이펙트(The Lucifer Effect)』)처럼 말이다.

영화 리뷰 | 보이저스(Voyagers, 2021) | 고귀한 임무 vs 내부의 불확실한 적
<남자가 왜 권력에 목숨을 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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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폭한 혁명가 크리스토퍼, 그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주 좋게 보면 리더가 되는 법을 알려주는 리더십에 관한 영화라고도 볼 수 있겠다. 지구인의 가치관을 답습한 규칙과 통제 시스템으로 선원들을 통솔하려는 잭(보수주의자?)과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폭력적인 혁명가 크리스토퍼 중 누가 왕좌를 차지할 것인가. 진실에 근거한 합리주의와 이성을 중시하는 잭은 동료들을 고귀한 임무로 설득해보지만, 크리스토퍼는 마오쩌둥, 히틀러 등의 위대한 선동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내부의 불확실한 적을 만들어 공포를 조장한 다음 두려움 순종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렇다면 공포와 두려움에 근거한 불안정한 안정을 파괴하고 평화와 질서를 되찾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죽음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처럼 위기를 없애는 방법은 악당을 죽이는 것! 즉, 잭과 크리스토퍼 둘 중 하나가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을까?

인간 본성을 단출하게 표출한 단순한 이야기를 굳이 우주선까지 동원해가며 다뤘어야 했나 하는 아쉬움과 어설픈 성애 장면, 단순한 격투 장면을 보면 한 무리의 침팬지가 소꿉놀이하고 있는 것 같아 보는 내내 착잡한 심정 금할 수가 없었다. ‘막상 가봤더니 별거 없더라’ 정도의 인상을 남기는 우주선 테마 호텔을 주제로 한 아주 긴 광고를 본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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