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래소(Ted Lasso, 2020) | 코치가 벤투 감독을 닮았다는 이유로
<이렇게 보니 벤투 감독과 별로 안 닮았다!> |
지금까지 본 영화, 드라마 중 축구를 주제로 한 작품 중 두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작품은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축구 영화사에 길이 남아야 할 이단아 같은 존재인 「소림축구」!!!
아, 그렇다고 해서 내가 「테드 래소」를 선택한 이유가 ‘소림축구’ 같은 태산이 흔들릴 정도로 역동적이면서도 오랜만에 만난 절친의 뒤통수를 냅다 후려치는 것보단 살짝 더 난폭한, 쉽게 말해 막 나가는 축구 액션을 기대해서는 아니다. 내 아무리 아웃사이더 기질이 다분하다고 해도 다소간의 상식은 있는 사람으로서 젠틀한 사람들이 만든 점잖은 드라마에 어찌 그런 망발과도 같은 액션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진짜 ‘축구 드라마’는 매주 축구장에서 펼쳐진다> |
그것보다는 프리미어 리그 같은 수준 높은 축구 경기를 (재방 • 생방송 포함해) 무한정 시청할 수 있는 현실에서 결코 하루아침에 배워질 수 없는 축구 기술을 배우들이 어떻게 연기로 극복하면서 ‘축구’ 드라마로 그럴싸하게 포장할 것인가, 하는 다소 엉큼한 호기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보자마자 대뜸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벤투 감독을 떠올리게 했던 Brendan Hunt(테드 래소 감독을 보조하는 코치 비어드 역) 때문이다(참고로 모자를 썼을 때만 비슷하다).
첫 번째 호기심인 프리미어 선수 역을 맡은 배우들의 축구 기술적 문제는 ‘축구 드라마’에 ‘축구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는 아주 편하고 돈 안 드는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얼렁뚱땅 회피한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짜 ‘축구 드라마’는 매주 축구장에서 펼쳐지니까. 벤투 감독을 연상시키는 코치 비어드는 시종일관 과묵함을 유지함으로써 곧바로 나의 관심에서 벗어난다.
<전남편에 대한 복수심으로 불타는 구단주> |
이쯤에서 드라마 내용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이야기하자면, 드라마는 축구 경기의 기본적인 규칙조차 모르는 미국의 대학 미식축구 감독 테드 래소가 난데없이 영국 프리미어 리그 AFC 리치몬드의 감독으로 부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찌하여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일어났는가! 그것은 질투 어린 한 여자의 독기 어린 복수심 때문이다.
AFC 리치몬드의 새 구단주 레베카는 바람둥이인 전남편에 대한 복수로 이와 같은 사달을 일으켰다. 왜? 그것은 전남편이 애지중지하는 AFC 리치몬드가 강등당하는 험한 꼴을 보고 싶어서이다. 그래서 그녀는 ‘축구’의 ‘ㅊ’자도 모르는 테드 래소 감독을 전격적으로 부임한 것이다.
<경기 중 팀원끼리 싸우는 막장 팀, AFC 리치몬드> |
이 정도까지만 말해도 뒷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는 대충 감이 잡힐 것이다. 래소 감독의 똥물을 뒤집어써도 기세가 꺾이지 않는 오달진 낙관주의가 연이은 패배로 펑퍼짐하게 퍼진 팀 분위기를 쇄신함과 동시에 달궈질 대로 달궈진 레베카의 복수심에 극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예견할 수 있는 흔한 스토리다.
여기에 이혼, 원나이트 스탠드, 연애, 잡담 등 고만고만한 드라마를 고만고만하게 장식하는 푸닥거리보다도 볼 것 없는 시시콜콜한 사람들 이야기가 시시껄렁한 수다처럼 종잡을 수 없이 길게 늘어진다. 이쯤이 되면 포스터에 속아 ‘축구’ 드라마로 착각한 내가 바보 멍청이라고 생각될 정도다. 오죽했으면 시즌 2 1편만 보고 절교를 선언했을까? 정말이지 난 수다는 질색이다.
<그들이 축구를 볼 수밖에 없는 이유!!!> |
부임 후 첫 인터뷰부터 기자들에게 난도질당하는 래소 감독의 성공은 승패에 달려 있지 않다는 인생철학이 승점이 전부인 축구에서 과연 얼마나 통할지는 의문이지만, 래소 감독의 인생철학 중 맞는 것이 하나 있다면 ‘기적’이다.
현실에선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 즉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기적 같은 이변이 이상하게 축구에서만큼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신이 선물한 얄궂은 선물일까?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이 독일을 2:0으로 이기리라는 것을 누가 예상했을까?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토록 축구에 열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자기 인생에서 자기를 주인공으로 하는 기적 같은 일이 한 번 정도는 일어나길 꿈꾸지만, 알다시피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축구는 다르다. 우리 삶에서 기적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대중적인 장소는 바로 축구장일 것이다.
<강등 탈출이 걸린 맨시티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의 킥오프> |
이외에 미국 토박이의 낯선 영국 문화 체험 같은, 다시 말하면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미묘한 문화적 차이를 드러내는 영국인과 미국인의 문화 충돌에서 오는 희극적 요소는 양쪽 문화에 정통하지 못한 나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썰렁한 농담이다. 굳이 이해하자면 그것은 남한 사람이 북한에 갔을 때 느끼는 어색함? 이질감이려나 싶기도 하다. 물론 이보다는 정도가 매우 덜하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축구 경기 관람을 그렇게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스포츠 드라마니만큼 박력 넘치는 뭔가 색다른 드라마를 기대했는데, 축구는 들러리 정도이고 나머지는 수다와 굴욕을 모르는 래소 감독의 인생 편력 정도인 것이 역시 내 취향은 아니다. 드라마의 단골 소재이나 무난한 소재인 사람의 연약한 감정에 호소하는, 이런 밑도 끝도 없는 낙관주의에 값싼 위안을 받을 정도로 우리 인생은 순탄하지 않다!
그래도 나름 축구가 등장하는 축구 드라마니만큼 축구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면, 강등 탈출이 걸린 맨시티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놀랍게도 한국의 전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신태용 감독이 사용했던 바로 그 전술이 등장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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