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시즌 2(American Horror Story: Asylum, 2012) | 멀쩡한 사람도 미치게 만드는 곳?
<'블라이어 클리프' 역을 맡은 오렌지 카운티 법원> |
시즌 1에 이어 시즌 2도 ‘집’에 얽힌 이야기. 다른 점이 있다면, 전자는 우리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초현실 세계라면, 후자는 모든 질병을 다스릴 수 있다는 인류의 오만이 만들어낸 지독한 현실이다.
실제 있었음 직한 정신 병원 블라이어 클리프(Briarcliff)의 일상은 범죄 성향이 있는 정신병자를 제대로 교화시켜보겠다는 인류의 당찬 포부가 ─ 기술적인 문제보단 사람의 나약한 의지와 이기적인 본성, 그리고 신부나 수녀 같은 자제력을 훈련받은 성직자조차 떨쳐낼 수 없는 야망 때문에 ─ 영원히 당돌한 도전에 머무를 수밖에 없음을 방증하면서, 때론 현실이 우리의 같잖은 상상력이 만들어낸 허구보다 더 무서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외모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편견만 줄 뿐...> |
<한 사람은 과학의 이름으로, 한 사람은 신의 이름으로...> |
정신 병원 블라이어 클리프를 보고 있노라면, ‘멀쩡한 사람도 한 달만 (심성이 여린 사람은 일주일 정도?) 머무르면 진짜로 미치지 않고 배길 수 없겠구나’ 하는 마음속 아득한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소름 끼치는 찬사가 당혹감과 두려움으로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 틈새로 도망치듯 튀어나온다.
과학과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비극의 역사가 비단 이뿐이겠는가? 그런 새삼스러울 것 없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한이 드는 것은 이것들 모두가 각자 나름으로는 합리적이고 최선이라 믿는 신념에서 비롯되었다는 깨우침에서다. 홀로코스트, 대약진과 문화대혁명, 대학살, 그리고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시즌 2」 의 한스 박사 실험, 쥬디 수녀의 병원 운영 등 이 모두 과학 · 이상(理想) • 신념에 대한 맹신에서 비롯한 문명의 광기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이래서 신념에 갇혀 사는 사람이 무섭다. 그들은 새로운 진실 앞에서 신념을 버리거나 고치기보다는 신념을 지키고자 자기희생과 학살도 마다하는 폭력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신이라는 듬직한 뒷배가 있을 때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지금도 자기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미친 사람 취급하는 후레자식이 세상에 널렸다.
<신 앞에 기도하는 이 남자가 연쇄살인마라면 믿겠는가?> |
<공포영화 소재로 종종 등장하는 전기 충격 요법> |
이야기가 전개되는 전후 맥락을 보면 환자를 진정 치료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윽박지르고 겁을 주어 고분고분하게 만들기 위한, 그래서 전기 고문 수준과 다름없는 전기 충격 요법이 종종 나온다. 현재는 정신건강 치료 요법으로 인정받았다고 하는 (그래도 생각만 해도 전율이 돋는) 전기 충격 요법이 어떻게 해서 정신 병원의 병폐를 대표하는 오명을 떨치게 되었는가 하는 그 전말을 엿볼 수 있다.
아주 잠깐이나마 정신병동에 갇히는 재미 없는 경험이 있던 나로서는 세상 모든 정신 병원에 갇힌, 진짜로 미쳤을 수도 있고, 그저 미친 척 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로 미치지 않았을 수도 있는 불행한 그들을 위한 동정심과 연민을 마구 뿜어내지 않을 수 없는 드라마다.
<드라마에서 외계인의 존재가 의미하는 것은?> |
<공포물이니만큼 이런 것이 안 나오면 너무 심심하지> |
여타 미국 드라마처럼 이야기가 흘러가는 짜임새도, 인물 성격 구성과 그들 간의 대인 관계도, 그리고 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고발과도 같은 문제 제기도 복잡하기 짝이 없다(여기에 외계인까지 등장한다!). 거짓, 명성, 야망, 욕망, 배신, 불신, 회한, 오만 등 우리를 곧잘 타락으로 인도하는 사람의 어둡고 죄악스러운 본성을 총망라할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겪는 정신적 고통까지 묘사한 드라마이니만큼 감상하는 사람이 목석이 아니라면 각자 살아온 내력에 따라 감흥의 정도도, 이해하는 정도도, 그리고 느끼거나 깨우치는 바도 다를 것이다. 또한, 이래야만 좋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책이건 영화건 드라마건 모든 시청자에게 똑같은 감흥을 전달하는 작품만큼 허접한 것도 없다.
<다음 차례는 ‘당신’이라고 말하는 주드 수녀> |
<자기의 야망 속에 버려진 주드 수녀> |
아무튼, 드라마가 개괄하는 인간 본성이 가진 불멸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파멸을 맞이하지 않고 그럭저럭 지탱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쥬디 수녀의 (그녀가 살아온 나날과 비교하면 지극히) 평화로운 결말이 은유하듯 용서와 화해다. 그리고 용서와 화해는 피안에서 찾을 수 있다. 피안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신념, 증오, 욕망, 야망 등 우리를 죄악으로 빠져들게 하는, 마음속에 암세포처럼 뿌리박힌 그 집념을 사뿐히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바로 피안이다.
다른 감상 포인트는 시즌 1에서 열연했던 몇몇 배우들이 시즌 2에서도 그 열연을 보기 좋게 이어간다는 점이다. 시즌 1에서 맡았던 인물과는 다른 성격을 가진 인물을 배역 받은 그들의 변신을 기대하는 것도 신나는 일이다. 특히 범죄자를 교화할 수 있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가 그 자신이 정신병동에 감금되는 수난을 겪는 쥬디 수녀 역을 멋지게 소화한 제시카 랭(Jessica Lange)의 연기력은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들 때문에 시즌 3도 기대할 수밖에 없다.
끝으로 블라이어 클리프에 버금가는 혼잡하고 피곤하고 신산한 삶에 낙담하고 좌절하는 세상 모든 불행한 사람의 우울하고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흥겨운 노래 「The Name Game - Jessica Lange American Horror Story Asylum」(에피소드 10에 나오는 OST)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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