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청천 재기풍운(包青天再起风云, 2019) | 어디서나 통용되는 징벌 판타지
<저 나무쪼가리가 땅에 떨어질 때, 누군가의 머리도 땅에 떨어진다> |
‘포청천’이라는 정의로운 명성에 이끌려 앞뒤 재지 않고 본 드라마로 그 어떠한 압력과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소신대로 악당을 징벌하는 포증의 공명정대함과 불굴의 용기가 크고 작은 부당함에 짓눌러 허우적거리는 나약한 현대인에게 다소간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1993년 판 포청천보다 훨씬 젊어지고 잘생긴 (검은 얼굴 때문에 화장하는 데만 무려 3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차라리 '흑인 + 중국인' 혼혈 배우를 캐스팅했더라면?) 포증이 목석같은 얼굴로 무뚝뚝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틈틈이 부하들을 놀리는 장면은 소소한 웃음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범죄, 수사 드라마이니만큼 사람은 많이 죽어 나가지만, 폭력, 잔인성 수위는 낮으므로 온 가족이 시청해도 부담이 없다.
<어떤 기분일까?> |
현대 범죄, 수사 드라마처럼 물증에 의한 추리보다는 정황에 의한 추리가 비중이 높으므로 감춰진 상상력이 있다면 하나도 남김없이 만개하여 포증과 대결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나 포증을 이기기는 누워서 떡 먹기만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만큼은 포증도 모르겠지?’ 하는 '설마, 설마'하는 지레짐작을 빈번하게 뭉개버릴 정도로 포증은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부족한 물증을 때우고자 범인의 자백을 유도하는 함정 수사가 유난히 많이 나온다. 아마도 이런 구성은 시나리오 작가의 사건 구성 능력이 (추리소설 작가처럼) 물증을 치밀하게 준비할 수 있는 수준엔 못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말상과 호랑이상> |
드라마는 수다쟁이 공손책과 호랑이 얼굴상만큼 거친 성격을 가진 운천우, 말상처럼 생긴 그대로 막판에 모두를 실망시키는 기염염 등 포증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단순명료했던 인간관계에 난데없이 ‘첩자’ 문제가 끼어들며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는데, 황제의 진위를 가리는 재판이 진행되고 배신의 배신 등 ‘막장’ 냄새를 살짝 풍기기도한다.
아마도 이런 자극적인 맛과 갈 데까지 가보자는 배짱이 없다면, 볼 거 안 볼 거 다 본 요즘 시청자에겐 어필할 것이 별로 없으리라. 그렇지만, 이로 인한 뜨악한 결말은 그야말로 황당무계하다.
<포청천의 ‘설사, 변비, 치질’ 특강> |
서유기만큼이나 포청천 시리즈가 꾸준히 나온다는 것은 중국이 아무리 상식이 없는 나라일지라도 악을 징벌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어디서나 통용되는 판타지에서 우리처럼 희열을 느끼는 보편적 감정이 아직은 남아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중국도 결국 우리와 같은 사람이지 않겠는가? 문제는 이것이 현실에 얼마나 반영되는가 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중국에선 공명정대의 화신으로 통할 것 같은 포청천이 여인 때문에 무너지는 설정은 사랑의 승리라고 봐야 하나? 아니면, 포청천처럼 심지가 곧은 사람도 인간의 본성을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단순히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가? 얄미울 정도로 돌부처처럼 행세하던 그가 사랑하는 여인 때문에 흔들리는 모습은 범죄를 심판하면서 일말의 사심도 두어서는 안 된다고 호통치듯 말하던 그였기에 쌤통이면서도 결국 사랑의 굴복한 남자였기에 애처롭다.
액션은 별 볼 일 없지만, 아마도 내 생각엔 이 정도가 연기, 세트, 의상, 이야기 등등 중국 드라마의 평균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드라마다. 촬영도 중국의 할리우드인 헝디엔(橫店影視城)에서 진행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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