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달리는 소녀(時をかける少女, 1983) | 고풍, 풋풋함, 그리고 애틋함
<하라다 토모요의 10대, 50대 모습> |
아주 긴 시간에 걸쳐 이런저런 영화나 드라마를 감상하다 보면 소재나 장르가 아닌 오로지 배우 때문에 작품을 선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배우의 미모가 시각세포에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남길 정도로 강렬했다던가, 아니면 배우의 연기력이 당대 명배우들의 뺨을 치고도 남을 정도로 뛰어났다던가.
그렇다고 항상 이렇게 객관식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고 요지경 같은 사람의 감정과 날씨처럼 변화무쌍한 취향이란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렇게 꼭 집어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대부분 이 두 경우, 혹은 그 근삿값으로 취합된다고 볼 수 있겠다.
<세트가 아닌 실제 절벽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
오늘 말하고자 하는 영화는 얼마 전에 무척 재미있게 감상한 미스터리 드라마 「당신 차례입니다(あなたの番です)」에서 동태처럼 얼어붙은 마음조차 부드럽게 녹아주는 아름다운 미소가 매혹적이었던 하라다 토모요(原田知世, 나나 역) 때문에 찾게 되었다.
순전히 한 배우 때문에, 그것도 자식 없는 상팔자인 내가 한 배우의 어릴 적 모습이 궁금해 고물상 뒤지듯 인터넷 어둠의 장소를 파헤치며 영화 한 편을 찾게 될 줄이야.
역시 세상은 요지경이다.
<일본의 옛 정취가 느껴지는 도시> |
그렇더라도 풋풋하다 못해 갓 깐 콩에서나 맡을법한 초록빛 비린내가 풍기는 학창 때의 하라다 모습에서 현재 50을 훌쩍 넘은 중년의 하라다를 찾아내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깎다가 만 듯한 선머슴 같은 머리모양이 분별력을 교란하는데 톡톡히 한몫했지만, 그때와 지금의 목소리도 많이 변했다.
‘사람은 이다지도 변하는구나’라고 내심 씁쓸해하면서 이런 식으로 세월의 무상함을 깨닫게 될 줄이야.
역시 세상은 요지경이다.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의 결말은?> |
오늘날의 SF 장르에서 ‘시간 이동’은 흔해 빠진 소재지만, 흔해 빠지도록 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것이다. 예전의 나 역시 엄청나게 좋아했지만, 요즘은 무상한 세월 속에서 사진 모서리 부분이 약간 바랜 것처럼 삶의 고단함 때문인지 예전만큼 흥이 나지는 않는다. 그래도 여전히 선호하는 장르 중 하나이다.
‘시간 이동’ 유형 중 똑같은 하루가 반복된다는(영화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 1993)」처럼) 타임 리프(Time Leap)와 시간 여행 두 유형이 모두 등장하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실험실에서 라벤더 향을 맡고부터 ‘타임 리프’ 능력을 얻게 된 카즈코(하라다 토모요)와 미래에서 온 식물학자 후카마치의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를 골자로 하고 있다.
빳빳한 교복을 입은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마치 한국 1970년대의 하이틴 영화를 보는 듯하다. 하지만, 영화의 배경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완전히 정반대다. 이제 막 도시 개발이 시작된 한국 1970년대의 삭막한 풍경과는 달리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도시 경관 100’에 선정될 정도로 고풍스러운 옛 모습을 여태껏 간직하고 있는 히로시마현의 다케하라시, 그리고 오바야시 노부히코(大林宣彦) 감독의 고향이라는 오노 미치시가 도시와 집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전해준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이렇게 목조 건물이 조밀하게 밀집해 있으니 불 한 번 잘못 나면 온 마을이 줄초상이 나겠구나.
끝으로 카즈코처럼 타인에게 기억을 조작당해 알게 된 사랑도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흠잡을 데 없는 조각상처럼 나쁜 기억이 없으므로 완벽한 사랑일까? 아니면 사람은 타인에게 기억을 조작당해서면서까지 사랑을 갈구할 정도로 외로운 동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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