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푸트닉(Sputnik, 2020) | 그는 기생체인가 공생체인가?
<그들이 본 것은?> |
냉전 시대의 막바지인 1983년.
러시아는 궤도 연구를 위해 지구 밖으로 두 명의 우주 비행사를 보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귀환한 생명체는 두 개나 아니라 세 개였다. 두 명의 우주 비행사가 한 쌍의 남녀였다면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당연히 사정은 그렇지 않았다.
귀환하는 도중 예기치 않은 사고로 인한 불시착으로 한 명은 산송장으로 지구에 도착했지만, 나머지 한 명의 우주 비행사 콘스탄틴은 믿기지 않은 회복력으로 생존에 성공한다. 왜냐하면, 그의 몸속엔 외계 생명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소련을 먹여 살린 죄수 노동자들> |
정말 정말 오랜만에 보는 러시아산 영화 「스푸트닉(Sputnik, 2020)」는 특수 효과로 치장한 화려한 볼거리와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영웅적인 이야기가 부추기는 익숙한 감동, 그리고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빠른 전개 등 먹음직스러운 패스트푸드 같은 할리우드 스타일의 SF를 기대하고 봤다간 실망과 동시에 까막까막 졸기 딱 좋은 영화다.
<두 사람의 외계 생명체 연구 목표는 같을까?> |
그렇다고 영화가 밋밋하거나 재미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세상과 완전히 격리된 음침한 군사 시설, 쿨라크를 떠올리게 하는 죄수 노동자 등 냉전 시대의 음울한 분위기가 제법 신선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외계 생명체를 둘러싼 연구소장 세미라도프, 타티아나 박사, 우주 비행사 콘스탄틴 세 명의 심리적 대립과 암투가 잘 만든 스릴러 영화 못지않게 은근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이것이 러시아산 에이리언> |
콘스탄틴 몸속에 기생하는 외계 생명체를 어떻게 숙주로부터 안전하게 분리할 수 있는가 하는 매우 합리적인 문제로 자신을 군사 연구 시설로 초대한 세미라도프 소장을 타티아나 박사는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자신의 몸속에 있는 기생충인지 공생체인지 알 수 없는 외계 생명체를 그 누구도 통제할 수 없다는 결정이 내려지지 않기 위해 콘스탄틴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콘스탄틴 몸속에 있는 외계 생명체를 안전하게 분리하는 것만이 세미라도프 소장이 원하는 모든 것일까? 두려움과 권위에 맞서는 타티아나 박사의 활약이 눈부시다.
할리우드 SF 영화 같은 호화로운 장면은 없지만, 그렇다고 특수 효과의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 배경 자체가 우주 공간이 아닌 1983년 지구라는 점에서, 그리고 에이리언(Alien) 시리즈처럼 ‘사람 vs 외계 생명체’라는 대규모 전투 장면이 없다는 점에서 굳이 특수 효과를 남발할 이유도 없었겠지만, 쥐포처럼 납작한 외계인만큼은 지금까지 본 ─ 사람을 공격하는 괴물로 표현된 ─ 외계 생명체 중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인상적인 크리처다. 외계 생명체가 뇌가 아닌 특정 호르몬을 식량으로 삼는다는 설정도 특이하다면 특이하다.
‘Спутник’는 위성 이름이기에 앞서 ‘배우자’, ‘동반자’라는 뜻이 있다. 그리고, 숙주(콘스탄틴)에겐 뛰어난 회복력과 체력적 이점이 있다는 점에서 영화 속 외계 생명체는 기생체보다는 공생체에 가깝다. 그것도 쌍방에게 이익을 가져오는 상리공생. 여기서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지구와 인류의 관계는 기생일까 공생일까? 정답 아시는 분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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