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벨코 익스페리먼트(The Belko Experiment) | 참혹해? 그래도 눈을 뗄 수가 없어!
<살인 기술을 익힌 수상한 CEO> |
일단 입사하기만 하면 신용카드, 핸드폰, 자동차, 그리고 집까지 주는 회사 벨코(Belko). 이것이 끝이 아니다. 모든 직원은 덤으로 추적기까지 하사받는다.
콜롬비아에서 일하는 미국인 직원을 납치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명목으로 팔뚝에도 아닌 뒤통수 깊숙한 곳에 꼬라박는 추적기를 직원들은 각종 수혜에 응당 따르는 대가 정도로 여겼을까? 아니면, 대우가 좋은 회사에 다닌다는 일종의 자부심으로 생각했을까?
어찌 되었든, 어느 날 갑자기 벨코 직원들은 자신들을 친애하던 것 같은 사옥이 누군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학살의 무대로 돌변하는 지옥과 별 차이 없는 재앙과 마주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건물 안에 남아 있는 직원 80명 중 30명이 2시간 안에 죽지 않으면 60명이 죽을 것이라고 말과 함께 서바이벌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게임의 법칙을 벗어나면 이렇게 된다> |
자 그렇다면, 당신은 괴한의 명령대로 일단 30명을 죽여 나머지를 살리고자 하는 현실주의자인가? 아니면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들을 죽일 수 없다고 고집하는 인도주의자인가? 아니면 공황에 빠지는 무기력한 사람이 될 것인가?
사람의 심리를 생존의 기로라는 극한으로 밀어붙였을 때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해 알고 싶어 굳이 힘들고 귀찮고 또한 반인륜적인 「더 벨코 익스페리먼트(The Belko Experiment)」 같은 실험은 할 필요가 없다.
진정한 과학이란 통제된 실험과 그런 실험으로 도출된 이론으로 더 큰 범위에서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것이다. 최신 핵폭탄의 성능이 궁금하다 해도 우리는 그것을 실제로 서울 같은 도시에 터트리지 않는다. 그러지 않고도 우리는 그동안 축적된 실험 데이터를 통해 그 결과를 거의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의 유명한 사회심리학 실험인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SPE: Stanford Prison Experiment)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우리에 대해 알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루시퍼 이펙트 | 악마로 둔갑시키는 상황의 힘」 참고).
<방금까지 동료였던 사람들은 처형자와 처형될 자로 나뉜다> |
그런데도 이런 영화들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은 왜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끔찍한 재미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끔찍한 재미란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서로를 죽이게 만들도록 밀어붙일 수 있는 신과 겨룰만한 힘을 가졌다는 불량한 착각, 그리고 학살의 현장으로부터 자신은 안전하다는 지극히 멀쩡한 현실적 감각이 깨우쳐주는 살아 있다는 행복감, 그리고 생존 본능을 자극하는 금지된 게임에 대한 불쾌한 망상을 일부분 해갈시켜주는 대리 만족감. 그리고...
<당신이 예상했듯 결말은 처참하다. 그래서 더욱 눈을 떼기가 어렵다> |
결말을 뻔히 짐작할 수 있음에도 ‘끔찍한 재미’를 도저히 수수방관할 수 없어 끝까지 보게 되는 거칠고 잔인한 영화다. 특히 무방비 상태로 벽을 향해 있는 사람의 뒤통수에 총알을 박는 장면은 홀로코스트 식의 ─ 만인의 공분을 불러일으킬 만한 ─ 처형 장면이 떠올라 시궁창에라도 빠진 듯한 불결함과 얼음이 등골을 훑고 내려가는 것 같은 섬뜩함이 온몸을 들쑤시는 것 같아 참기 어려웠다. 나의 가련한 육체가 시체처럼 싸늘하게 굳는 착각에 빠질 정도다. 다행히 감독도 그런 것을 염두에 두었는지, 처형 장면은 짧게 잡고 대신 그 뒤에 바로 우당탕 혼잡한 상황을 연출해 관객의 심리적 압박감을 덜어준다. 안 그랬다면 바로 재생을 멈추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벨코 식의 막장 서바이벌게임이 영화에 간단히 등장하긴 했지만(일본 영화 「배틀로얄(バトル ロワイアル)」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단시간 내에 죽어 나자빠지는 사람의 수는 ─ 지금까지 내가 본 영화 중 ─ 이 영화가 단연코 최고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그런지 사건이 터진 후부턴 숨이 막힐 정도로 긴장감을 늦추기가 어렵다. 정말이지 사람의 생존을 담보로 한 폭력적 본성을 자극하는 영화로써 「더 벨코 익스페리먼트(The Belko Experiment)」만한 영화도 드물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마치 관객을 기만하듯 결말을 뻔하게 드러내 보이지만, 그렇다고 영화의 뻔한 결말을 비웃으며 재생을 멈추기는 매우 곤란한 영화다. 광기가 안무하고 살육이 주연한 핏빛 춤이 현란하게 요동치는 무대로부터 한시도 눈을 떼기 어렵게 만드는 참혹한 전율이 나의 동물과도 같은 ─ 사실 우리 모두 동물이지 않은가 ─ 천박한 호기심을 끝끝내 붙잡고 늘어진다. 한마디로 사람의 잔인한 호기심을 잔인하게 공략한 잔인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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