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이야기 2 | 엽기적인 연기에 파묻힌 나머지

무서운 이야기 2 | 엽기적인 연기에 파묻힌 나머지 에피소드들

난 왜 이다지도 공포영화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보기 전에도 살짝 흥분되고, 보면서도 살짝 흥분하고, 보고 난 뒤에도 살짝 흥분에 잠긴다. 예전엔 스타워즈 같은 SF영화를 그렇게 좋아했었는데 그 열정이 언제부터인가 공포영화로 옮겨가 버렸다. 숙주에서는 빨아들일 에너지를 더는 발견하지 못한 동물이 다른 숙주로 이사가 버린 것처럼 말이다. 젊었을 적엔 SF 장르가 품은 희망과 꿈이 언젠가 나의 눈앞에서 실현될 무언가로 느껴져 SF영화에 빠져들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릴 것처럼 아슬아슬한 지금은 절망적인 현실이 직격탄으로 쏘아 올린 비애감을 잠시나마 잊게 해줄 마취제 같은 것이 필요하다. 그중 하나는 책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 그중에서 공포영화다.

꼭 그런 지질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공포영화는 원시적인 감정인 두려움을 신랄하게 자극한다. 마치 살아있다는 확신을 온몸에 지져주는 듯하다. 그런 화끈함이 좋다. 물론 잘 만든 공포영화만이 이런 감흥을 줄 수 있지만 말이다.

오늘은 어쩌다 「무서운 이야기 2(Horror Stories II)」라는 한국 공포영화를 재생하게 되었다. 뭔가를 보고 싶기는 하고, 그렇다고 선택해 놓은 영화가 없을 때, U+모바일tv 앱이 나를 도왔다. 무료영화 중 뭐 볼 것 없나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스크롤 하다 딱 걸린 영화가 바로 ‘무서운 이야기 2’다.

무료로 풀만큼 재미가 없나? 하는 기우보다는 압도적으로 ‘탈출’을 지지하는 영화평 댓글이 더 호기심을 자극한다. 네 편의 단편을 실은 옴니버스영화인데, 이중 ‘탈출’을 제외하면 다 쓰레기라고 혹평하는 사람도 있다. 도대체 나머지 세 편은 어떻길래? 그리고 ‘탈출’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하는 호기심과 마땅히 볼 것도 없다는 지루한 현실이 짝짜꿍하니 안 보고 배길 수가 없다.

막상 보고 나니 ‘탈출’을 지지한 사람들의 판단력이 건전하지는 못하더라도 온전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네 편의 에피소드 중 ‘탈출’은 가히 기괴하다 못해 엽기적이다. 내용이 엽기적이라기보다는 ‘탈출’ 편의 ‘고병신’을 역을 연기한 배우 고경표의 열연이 엽기적이라는 말이다. 정말 병맛 나는 병신 같은 연기였다. ‘탈출’을 보고 나면 왜 이 영화를 배우 고경표가 살렸다는 말이 나돌았는지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배우 고경표의 연기가 아주 대단했다고 치켜세우기보다는 무심하게 감상하면 혐오감이 언뜻언뜻 스며 나올 정도로 인상적인 연기였다고 말하고 싶다. 다른 세 편과는 달리 ‘탈출’의 내용은 공포보다는 코미디에 가깝다.

그렇다면 나머지 세 편이 못 봐줄 정도냐? 내가 보기엔 그렇지도 않다. 나머지 세 편이 재미가 없다기보다는 ‘탈출’이 나머지 세 편과 전혀 어울리지 못할 뿐이다. 마치 아웃사이더 같은 에피소드다.

영화는 보험 회사원 박 부장이 보험 사기가 의심되는 미심쩍은 보험금 지급 건을 사이코메트리 같은 영적인 능력이 있는 신입사원 세영에게 떠밀다시피 맡기면서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세영은 먼지 묵은 세 건의 파일을 들춰보게 된다. ‘절벽’, ‘사고’, ‘탈출’, 그리고 박 부장과 세영이 낡은 서류철을 살펴보고 있는 어두침침한 지하 창고에서 마지막으로 펼쳐지는 ‘444’가 「무서운 이야기 2(Horror Stories II)」의 네 가지 에피소드다(액자식 구성이다).

박 부장과 세영이 낡은 사건 파일을 뒤적이는 모습을 보니 예전에 무척 재밌게 감상했던 미국 범죄 드라마 '콜드 케이스(Cold Case)'에서 미해결 사건과 관련된 서류와 증거품을 보관하는 신발 상자처럼 생긴 종이 갈색 상자가 떠오른다. 뜬금없이 한국판 ‘콜드 케이스’ 드라마를 제작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도 재밌지만, 분위기를 한껏 취하게 하는 OST도 좋았지.

공포영화광이라고 자처하면서, 이렇게 재밌는 공포영화 시리즈가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니 나도 참 곤란한 녀석이다. 모처럼 흥취를 얻었으니 내친김에 무서운 이야기 1편과 3편을 찾아서 봐야겠다는 기분 좋은 의무감이 나를 검색 사이트로 두둥실 떠민다. 이번 책무는 바이두와 6판이 있으니 걱정 없으리라.

2편 리뷰를 이만큼 썼으니 1편과 3편 리뷰 정도는 생략해도 되겠다는 게으르고 나태한 유혹이 나의 주춤하는 눈빛을 나긋하게 노려본다. 굴복할지, 아니면 꿋꿋하게 버틸지는 훗날 알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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