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이야기 3 | 세기말적인 분위기에 취하다
'무서운 이야기 2'로부터 숙취 있는 진득한 감흥을 받았으니, 당연히 나머지도 봐야 직성이 풀린다. 1편과 3편이 남았는데, 무엇을 먼저 봐야 할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찰나에 소슬한 쾌감이 온몸을 바람처럼 훑고 지나간다. 성찬을 앞에 두고 무엇을 먼저 먹을지 고민하는 굶주린 사람의 행복에는 견줄 수 없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다.
사람의 성향마다 다르겠지만, 난 맛있는 음식은 제일 나중에 먹는 주의다. 왜냐하면, 밥을 먹기 시작할 무렵의 배고픔이면 무엇이든 그럭저럭 맛있게 먹어줄 수 있지만, 서서히 배가 불러오는 막판에 가서는 그렇지가 않다. 이때는 진짜로 맛이 뛰어난 음식만이 둔탁해진 미각을 자극할 수 있다. 그래서 1편은 놔두고 3편을 먼저 봤다.
사진2 「무서운 이야기 3: 화성에서 온 소녀(Horror Stories III)」, 제목에서부터 SF적인 뉘앙스가 묻어나오니 공포영화 다음으로 SF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상당히 기대될 수밖에 없다.
‘SF + 공포’ 하니까 시거니 위버가 주연한 전설적인 영화 에이리언(Alien) 시리즈에 등장하는 무시무시한 외계 괴물이 단박에 떠오른다. 이후 수많은 SF 크리쳐물에 종교 같은 영감을 계시한 순수하고 완벽한 그 포식자 말이다. 난 그런 괴물을 기대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심심풀이 같은 예상일뿐일까? 혹은 내가 괴물이라서?
뚜껑을 열어보니 제목 그대로 진짜 ‘화성에서 온 소녀’였을 뿐이다. 그런데 뜻밖인 것은 화성에서 지구로 온 소녀가 아니라 화성에서 타이탄으로 간 소녀다. 소녀는 지구인들의 침략으로 멸망한 여우족의 유일한 생존자로서 기계족이 사는 타이탄 위성으로 망명한 것이다.
하지만, 소녀가 빌미가 되어 지구인의 침공을 받을 것은 두려워한 기계족은 망설인다. 소녀를 받아들일지, 아니면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지. 망명을 받아달라는 소녀의 애걸과 인류의 잔인함을 상기하는 기계족의 냉정함. 그리고 이 두 기류 사이를 조수처럼 오가는 인류에 대한 공통 신앙처럼 자리잡은 두려움.
영화 「무서운 이야기 3」은 소녀와 기계족 사이에 사이좋게 오가는 인류에 대한 이유 있는 두려움의 기록이다.
「무서운 이야기 2」에서는 「탈출」이 가히 압도적이었다면, 3편에서는 「기계령」을 최고로 꼽고 싶다. 아역 배우들의 로봇 연기도 섬찟했지만, 만약 사람에게 영혼이 있다면 인류가 사람을 모방하여 창조한 로봇에도 영혼이 있을 것이라는 설정이 마음에 와닿는다.
사람의 본성을 포함해 마음, 감정, 그리고 더 나아가 자유의지까지 과학으로 설명이 가능한 현재, 언제가 사람을 닮은 인공지능 로봇을 만든다면 그 로봇도 분명히 사람처럼 생각하고 감정을 품고 자유의지와 이성이라는 착각으로 자신을 기만한 채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로봇도 사람처럼 원한이나 소망을 품을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을 풀지 못하고 작동을 멈추게 된다면, 혹은 그러한 결과를 예측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 행동할까? 물론 소프트웨어적으로 몇몇 부정적인 감정(예를 들어 원한, 분노)을 제어할 수도 있다. 그런데 감정적인 동물인 사람에게도 충동을 억제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감정이 동기를 유발하고 그 동기가 행동을 일으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감정이 지시하는 대로만 행동하는 충동적인 동물은 절대 아니다). 그런데 알다시피 그게 뜻대로 안 될 때가 있고, 그럴 때 우리는 종종 비극적이고 후회할 만한 결과와 마주하게 된다.
「기계령」은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에겐 터무니없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상상력에 굶주린 사람에겐 가뭄의 단비 같은 상쾌하고 신선하고 감개무량한 영화다. 이것을 소재로 장편 한 편 찍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기대감도 든다.
─ 결과적으로 ─ 지구의 운명을 한 소녀의 생명과 맞바꾼 마지막 마무리는 왠지 모르게 감격스럽다. 파괴를 재촉하는 악마 같은 유혹에 취하고 세기말적인 분위기에 취할 수 있어서 좋다. 역시 난 괴물인가?
요즘처럼 비가 올 듯 말 듯 주춤하는 음울하고 음산한 날씨에 썩 어울리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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