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9

러닝 위드 더 데빌 | 마약이 비쌀 수밖에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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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 위드 더 데빌(Running With The Devil, 2019) | 마약이 비쌀 수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

"당신은 아무 때나 어떤 마약이든 구할 수 있고, 당신 같은 사람들이 아직도 돌아다니고 있으니 말이에요. 당신은 절대 붙잡히지 않아요"

‘Running With The Devil’, 파파고로 번역하면 ‘악마와 함께 달리기’이다. 영화를 아직 감상하지 않은 사람에게 제목만으로 이 영화가 도대체 어떤 영화일지 상상하라고 몰아붙인다면 그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심란해질 듯싶다. 영화 제목만으로 영화 내용을 추측하는 일은 책에 파묻혀 사는 고시생이랄지도 사정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고시생에게 하등 보탬이 안 되는 이런 일을 물어본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민폐지만 말이다). 그래서 네이버 영화는 친절하게도 우리가 소소한 번뇌에 빠져드는 것을 미리 방지하고자 ‘마약기생충’이란 제목을 턱 하니 붙여놓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실수다.

일단 ‘마약기생충’이라고 하니까 이 영화가 ‘마약’과 관계된 영화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그 뒤에 붙은 ‘기생충’은 마약 중독자, 혹은 마약 판매상을 연상시킨다. 결국 ‘마약기생충’은 「러닝 위드 더 데빌(Running With The Devil, 2019)」이란 영화가 마약 범죄와 관련된 영화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만다. 이로써 ─ 누군가 고심 끝에 내놓은 듯한 ─ 제목의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이고, 그래서 제목을 읽는 사람을 긴가민가하게 하는 묘연하고 함축적인 맛은 깨끗하게 청산된다(참고로 동명의 논픽션 소설이 있지만, 이 영화와 어떤 관련이 있는 지는 잘 모르겠다). 네이버 영화가 어쭙잖게 영어 제목을 한국어로 변경한답시고 영어 제목에 압축된 메타포를 허물어트리는 밋밋한 한국어 제목을 설정한 행동은 경솔했으며 민폐다.

영화를 감상한 사람으로서 ‘Running With The Devil(악마와 함께 달리기)’을 풀어보자면, 그것은 영화 내용과도 기가 막히게 일맥상통한다. ‘악마(Devil)’는 마약이고, ‘달리기(Running)’는 마약 운반을 은유한다. 고로 내가 보기엔 「러닝 위드 더 데빌(Running With The Devil, 2019)」이란 영화는 마약 범죄 중에서도 마약 운반 과정이 얼마나 고되고 위험한 일인지를 세밀하게 조명한 영화라고 생각된다. 물론 감상 포인트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의견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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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텔 보스가 운반 도중 어딘가에서 새고 있는 마약을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중간 보스로 보이는 ‘요리사(니컬러스 케이지)’가 현장에 직접 출두하여 전반적인 마약 운반 과정을 감독하게 된다. 쉽게 말해 웅담을 밀수하는 회사 사장이 부사장에게 ‘중국 어느 산골에서 서울로 운반되는 웅담이 중간에서 새는 것 같으니 네가 직접 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책임지고 살펴보라’라는 지시를 내리게 된 것이고, 부사장은 울며 겨자 먹기로 사장의 명령을 수행하러 중국 산골 마을로 가게 된 것이다. 두 상황의 중요 차이점은 총을 휴대하느냐 아니냐가 아닐까 싶다.

고로 영화는 콜롬비아 숲에 있는 어느 농장의 흙에서 생산된 마약이 캐나다 밴쿠버 빌딩 숲에 있는 어느 고층빌딩으로 운반되는 과정과 그 사이사이에서 벌어지는 위험천만한 우여곡절을 매우 자세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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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반자가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조금씩 마약을 훔치기도 하고, 운반자가 마약을 하는 빈틈을 노리며 한 덩이(1kg)를 날치기하려는 사람도 있다. 어리숙한 사람은 아무 무기도 없이 운반자 앞에 나섰다가 비명횡사하기도 하고, 대범한 사람은 경찰을 죽여서 얻은 경찰복을 입은 다음 마약 운반 트럭을 검문하는 척하며 통째로 가로채려는 자도 있다. 물론 규칙을 위반한 운반자나 마약을 도둑질하려는 놈들은 ‘요리사’와 지역 책임자에 의해 착실하게 제거된다.

산지 가격이 1kg당 가격 1,600달러였던 것이 밴쿠버에 도착할 땐 킬로당 34,000달러로 껑충 뛰어 있다. 이것만 놓고 보면 가격이 너무 올라간 것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러닝 위드 더 데빌(Running With The Devil, 2019)」를 보고 나면 마약이 괜히 비싼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마약 운반 과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의 연속이다. 산행, 트럭, 버스, 배, 경비행기 등 다양한 운반 루트를 거치고, 단속의 고비(물론 대부분 뇌물로 무마되지만)를 넘겨야 할 뿐만 아니라 호시탐탐 물건을 노리는 강도들과도 대적해야 한다. 여기에 마약에 대한 끊임없는 유혹과 이 마약으로 쉽게 낚을 수 있는 여자들에 대한 색욕도 견뎌내야 한다. 한마디로 목숨을 걸어야 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1,600달러였던 것이 34,000달러로 올라갔다고 해서 나무랄 수도 없다. 이것보단 ─ 마약이 아닌 일반 상품을 취급하는 ─ 중간 도매상들의 착취가 더 심한 것 같다. 그들은 마약 운반자처럼 목숨을 거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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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운반자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게 하니 「러닝 위드 더 데빌(Running With The Devil, 2019)」라는 영화는 도대체 누굴 위해 제작한 영화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나의 감상 태도가 불량할 수도 있겠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범죄의 세계든, 아니면 법의 세계든 평범한 사람은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살아남는다. 다른 것도 아닌 마약을 삥땅할 생각을 한 것을 보면 평범한 사람이라곤 할 수 없지만, 걸리면 개죽음을 당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마약은 대단한 물건이다. 예전부터 마약은 죽기 전에 한 번 정도는 해보고 싶었는데, 영화 덕분에 오늘 또다시 그러한 상스러운 바람을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영화 마지막에 분을 이기지 못한 마약 단속원이 경솔하게 복수를 자행하는 김 빠지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그리곤 세간의 혹평과는 다르게 나로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몰입한 영화다. 특히 대장정 같은 마약 운반 과정이 음지의 호기심을 유난히 자극한다. 나의 취향이 유별난 것인지, 아니면 감각이 무딘 것인지, 아니면 수준이 낮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남들이 뭐라 말하건 나만 재밌게 감상했으면 그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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