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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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교(返校) | 자유를 위해 희생한 사람, 생존을 위해 침묵한 사람

Detention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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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교: 디텐션(Detention, 2019) | 자유를 위해 희생한 사람, 생존을 위해 침묵한 사람

백록이 수선에게,
'이번 생에는 연이 없으니 내세에서 다시 만나자'

「반교: 디텐션(返校, Detention)」은 동명의 비디오 게임을 각색한 영화다.

게임을 해보지는 않았지만(해보고 싶어도 사양이 될려나 싶다), 숙청과 탄압이라는 무자비한 동력원이 역사의 수레를 질질 끌고 가는 공포 시대에, 운명의 가혹한 장난으로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시원하게 비명 한 번 제대로 질러보지 못한 그들이 흘린 피로 기록한 멸공(滅共) 성과를 생각하면, 게임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혈기왕성한 청년의 성욕처럼 불끈 솟아오른다.

Detention 2019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그들과 비슷한 아픔과 상처를 남기고 기어코 민주화에 성공한 한국인으로선 공감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는, 공산주의의 ‘공’자만 언급해도 빨갱이로 몰려 죽창에 난도질당한 시체만큼이나 처참한 결말을 맞이해야 했던 대만의 백색테러(白色恐怖) 시기다.

남한이 북한의 공작을 병적으로 의심하며 미친 듯이 빨갱이 사냥에 몰두하고 있을 때, 대만은 중국의 공작에 벌벌 떨며 역시 미친 듯이 빨갱이 사냥에 집착하고 있었던 셈이다. 영화를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겠지만, 백색테러(계엄 통치) 시기는 남한의 반공 시대만큼이나 인정사정없다. ─ 직접적이든 글이나 영상을 통해 간접적이든 ─ 반공 시대를 경험한 사람들은 예상할 수 있겠지만, 게임과 영화의 이야기는 실제로 일어났던 1947년 지룽시 실무위원회 사건(基隆市工作委員會案)을 기반으로 했다.

Detention 2019

스탈린 시대의 소련이나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이 그러했듯, 공포 정치 시대엔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누구도 신뢰할 수 없는 불신의 시대다. 특히 인민과 인민 사이의 골짜기처럼 깊게 파인 불신의 골을 더 깊게 파 놓는 것은 바로 밀고자들의 성행이다. 애국한다는 생각으로 밀고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목숨을 부지하고자 마지못해 밀고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이 사사로운 이익에 눈이 멀어 가까운 사람을 밀고했다는 점에서 참으로 불행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반교: 디텐션(返校, Detention)」은 불행한 시대가 나은 부산물인 밀고가 이야기의 긴장감을 부추기고 반전을 성립시키는 요소로 사용된다.

Detention 2019

영화 속 대사대로 우리에겐 야만성과 악마 같은 본성이 있지만 동시에 신성함도 가지고 있고, 이기심도 있지만 동시에 이타심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어느 성정이 그 사회에서 생존하는데 가장 이로운가이다. 착한 사람은 악을 허용하는 사회에서는 고생길이 훤하다. 반면에 이기적인 사람을 배척하는 사회에서는 이타적인 사람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우리 사회는 이기적이고 악한 성정이 생존에 유리할까? 아니면 이타적이고 착한 성정이 생존에 유리할까? 나이를 먹을수록 이기적이고 고집센 사람으로 수렴되어 가는 꼴을 보면 답이 대충 나온다.

재밌게도 팡레이신과 그녀의 엄마 모두 영원히 없어졌으면 하는 사람을 제거하는 용도로 밀고를 이용한다. 실제로 소련이나 중국에선 밀고가 꼴 보기 싫은 사람을 눈앞에서 제거하는 용도로 많이 쓰였을 것 같다. 그땐 밀고 당한 사람이 단지 벌금 몇 푼 무는 정도로 끝나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팡레이신처럼 사람이 눈앞에 이익에 급급하다면 보면, 혹은 그녀의 엄마처럼 절박한 상황에선 그 선택이 불러올 끔찍한 결말은 애써 간과하거나, 어떻게든 변명하고 합리화하려고 든다. 살고 싶다는 욕망은 그 누구도 거스르기 어렵다는 점에서 죽음과 밀고라는 양자택일에서 밀고를 선택한 사람은 용서까지는 못하더라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렇다면 팡레이신처럼 사사로운 이익 때문에 밀고한 사람은 용서는 둘째치고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일까? 그녀의 변명은 들어볼 가치조차 없는 것일까? 단지 결과가 참혹했기 때문에 그녀의 밀고를 용서할 수 없는 것일까? 만약 그녀의 밀고가 그녀의 바람대로 한 사람의 해고 정도로 끝났다면 그녀의 밀고는 연정에 눈이 먼 한 소녀의 질투가 남긴 일탈 정도로 여겨졌을까?

영화 「반교: 디텐션(返校, Detention)」은 마치 공포 어드벤처 게임을 진행하는 것처럼 대부분 학교라는 한정된 장소에서 서로의 과거를 상기시키듯 죽은 자와 산 자가 맞물려 돌아가는 가운데 음습하게 진행된다. 암울한 시대에 자유를 위해 기꺼이 희생한 사람들을 추모하고 기리는 것도 좋지만, 암울한 시대에 대부분 사람이 숨죽이고 살았음을 잊어서도 안 된다.

영화는 무섭다기보다는 자신이 올곧다고 믿은 대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사람들에 대한 경의와 이루지 못한 사랑이 남긴 쓸쓸하고 애틋한 정서를 남긴 채, 한편으론 구슬픈 음악으로 한껏 애수에 잠긴 시청자의 마음을 위무하면서 엔딩 크레딧을 사정없이 올린다.

드라마 「반교: 디텐션(返校, Detention, 2020) | 영겁에 빠진 윤회의 기억」도 강력하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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