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05

추룡 | 나쁜 두 남자의 썩 나쁘지 않은 이야기

Chasing the Dragon 2017 movie poster
review rating

추룡(Chasing the Dragon, 2017) | 나쁜 두 남자의 썩 나쁘지 않은 이야기

“영국인들의 적이 되려는 거야? 우린 놈들을 못 이겨!” - 록
“누가 그래요? 난 홍콩의 마약 거래를 장악하고 있어요. 홍콩 경찰들이 내 돈을 먹고산다고요! 내 말 한마디면 경찰청도 불 지를 수 있어요!” - 오세호

영화 「추룡(追龍 Chasing the Dragon ,2017)」은 시작하자마자 주인공 오세호(견자단)의 목소리를 빌려 ‘1974년 이전의 홍콩은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였다’라고 영화는 말한다. 이 문장을 듣자마자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는데, 바로 ‘염정공서(廉政公署, ICAC-HongKong: Independent Commission)’였다. 염정공서는 1974년 홍콩 경찰이 스스로 정화할 수 없을 정도로 부패 문제가 비대해지자 정부가 내린 특별 조치로 탄생한 부패 척결 기구다. 부패한 경찰과 범죄 조직 간의 암투와 그들의 피 비린내 진동하는 비정한 세계를 다룬 ‘홍콩 느와르’도 염정공서 탄생 이전의 홍콩을 배경으로 한다. 그만큼 그 당시 홍콩 경찰은 썩을 대로 썩었다는 말이다. 그러하니 영화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대충은 짐작할 수 있는 결정적인 대사다. 참고로 작가 찬호께이(陳浩基)는 2013년의 홍콩 경찰도 1967년의 홍콩 경찰처럼 바르지 못한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염려를 자신의 추리소설 (내가 ‘염정공서’를 알게 된 계기가 된 책이기도 한) 『13.67』을 통해 나타냈다. 이 소설에는 홍콩 경찰을 은유하는 전설적인 형사 관전둬를 통해 홍콩 경찰의 암울한 현재를 떨쳐버리고 싶다는 작가의 희망이 담겨 있다. 홍콩 경찰의 어두운 역사와 함께 추리소설의 묘미를 온전히 갖춘 수작이니 이 자리를 빌려 추천한다.

아무튼, 「추룡」은 적당히 부패한 경찰 락(유덕화)과 새로운 마약 범죄 조직의 두목으로 떠오를 오세호 사이의 야릇한 우정의 시작으로 펼쳐 친다.

Chasing the Dragon 2017 scene 01

경무관 자리를 놓고 고참 안과 경쟁 중인 록은 안의 생일 파티에서 평소 홍콩인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는 헌터 치안감이 행패를 부리자 그 자리에서 바로 제압한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칭찬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안에게 뺨을 얻어맞는 치욕이었다. 헌터가 무슨 짓을 해도 그는 영국인이었기 때문에 홍콩 경찰은 손을 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곧 냉정함을 되찾은 록은 파티장을 빠져나온다.

한편, 본토에서 홍콩으로 밀입국한 오세호 일당은 몇 년째 끼니도 제대로 못 때울 정도로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들은 ‘광대’와 ‘회색곰’이라는 두 조직 간의 싸움에 일당을 받고 인원수를 채워주는 부하로 고용된다. 그런데 평소처럼 말싸움으로만 끝날 줄 알았던 것이 이날은 누군가의 도발로 진짜 싸움으로 번지고 만다. 마치 불구경하듯 관망하던 경찰 간부들은 싸움이 어느 정도 무르익자 부하들에게 출동 명령을 내린다. 곧 최루가스가 안개처럼 자욱하게 싸움판을 덮쳐오고 경찰들이 휘두르는 곤봉이 무자비하게 조직원들을 내리찍는 가운데, 오세호 일당은 용케 난장판을 벗어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재미난 일은 절대 놓칠 수 없다는 듯 사냥 나온 헌터에게 뒷덜미가 잡힌다. 영국인이라고 순순히 붙잡힐 오세호가 아니었으니, 오세호는 날렵한 무술 실력을 발휘하여 헌터를 두들겨팬다. 록이 상황을 제압하고 나서야 구겨질 대로 구겨진 헌터는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Chasing the Dragon 2017 scene 02

록은 자기를 대신해 헌터를 두들겨 팬 오세호가 고맙기도 하고 그의 무술 실력이 대견하기도 해서 자신이 구상하는 새로운 계획에 오세호를 끌어들이기로 한다. 록은 현재 홍콩의 어수선한 범죄 조직을 정리하고 자신이 통제하는 새로운 조직을 결성하여 막대한 부를 벌어들일 구상을 하고 있었는데, 거침없는 오세호의 합세로 일은 급물살을 타듯 신속하게 진행된다. 두 사람은 계획대로 막대한 부를 거머쥐며 홍콩의 떠오르는 실세가 된다. 홍콩법이 미치지 않는 무법천지의 ‘구룡’을 독차지한 오세호는 기세등등한 나머지 록이 정해 놓은 규칙을 어기기 시작한다. 경찰 조직에 너무 많은 뇌물을 주는가 하면, 경찰서에 정보원을 심어놓기도 해 록의 의심을 산다.

한편, 사업 확장에 부담을 느낀 록은 마약 공급자를 두 배로 늘려 위험을 감수하기로 하고, 마약을 공급받을 수 있는 거래처를 확보하고자 오세호를 태국으로 보낸다. 하지만, 누군가 쳐 놓은 함정에 빠진 오세호는 목숨은 겨우 건지지만, 총격전으로 친구 한 명을 잃는 비통함을 맛본다. 오세호는 이번 일의 배후에 록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 되는데….

Chasing the Dragon 2017 scene 03

「추룡」은 부패한 경찰과 범죄 조직 두목 사이의 아슬아슬한 우정을 다룬 영화지만, 보통의 범죄 영화처럼 시원하게 펼쳐지는 복수극 같은 통쾌한 맛이나 우정 어린 의리가 자아내는 진한 감동 같은 것은 없다. 암울했던 시대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 그런 인위적이고 극적인 요소는 일부러 절제한 것이 아닌가 싶다. 자신의 운명을 하늘에 맡긴 채 미친 말처럼 앞으로만 내달리는 오세호와 그런 오세호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어떻게든 사태를 제어하려는 록의 냉철함이 시종일관 관객의 뇌리를 자극한다. 언제 어디 어느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것 같은 사람의 표본 격인 록은 ‘엄정공서’의 칼날이 미치기 전에 도피에 성공하고, 화를 못 참고 날뛰는 망나니의 예정된 결말처럼 오세호는 그 대가를 치르면서 영화 「추룡」은 막을 내린다. 현실처럼 머리 좋은 악당은 끝내 꼬리를 밟히지 않는다는 음울하면서도 개운하지 못한 뒷맛이 ‘홍콩 느와르’라는 장르에 상투적으로 따라붙는 비정함과는 또 다른 감상평을 제공해준다. 참고로 이 영화는 「To Be Number One (跛豪, 1991)」의 리메이크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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