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호라이즌(Event Horizon, 1997) | 지옥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악의 서막
<작전 타임, 이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그럭저럭 화기애애> |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오늘 감상이 몇 번째인지 가늠할 수 없다. 내 눈에 띌 때마다 마치 금단의 열매에 끌리는 듯한 사악한 유혹에 못 이겨 기필코 보게 되는 영화다.
줄거리는 구조선 루이스 클락호가 이 우주에서 저 우주 너머로의 빠른 이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차원의 문’을 실험 중이었던 우주선 이벤트 호라이즌을 되찾게 됨으로써 겪는 파국적인 결말을 그린 것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지만, 인정사정없는 상상력의 깊이와 그 깊이가 요동치듯 전율시키는 암흑의 공포는 끝이 없다.
<차원의 문이 개봉박두는 찰나,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이다지도 잔인한 상상을 즐기는 사람이야말로 악마가 아니고 뭐겠는가?’ 하는 회의가 든다. 자기 죄를 남에게 떠넘기기를 좋아하는 것이 천성인 사람은 본성에 숨은 공공연한 악마를 숨기고자 가공의 괴물을 만들어 악마라는 악명을 능히 뒤집어씌우고도 남는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 열광하는 난 악마인가? 딱히 뭐라고 반박하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그렇다고 난 악마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에는 부족한 점도 너무 많다.
<암흑에 절인 자여, 무엇을 보았는가!> |
잘 만든 공포영화를 보노라면, ‘사람의 상상력이 이다지도 난폭하고 잔악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감탄과 경악이 뒤엉킨 절규가 절로 나온다. 상상력이 뻗어나갈 길을 탐지하는 촉수엔 선과 악 구분이 없다는 점에서 감독을 탓할 수만은 없지만, 이젠 ‘지옥’으로도 성에 차지 않는 관객의 뒤틀린 욕구에는 두손 두발 다 들었다.
<연쇄살인마들이 즐기는 조형 놀이가 여기서도?> |
그렇다. 「이벤트 호라이즌」이 볼 때마다 약간씩 어긋나는 새로운 감흥을 주는 이유는 더는 뒤돌아볼 필요 없는, 그래서 다시 생각할 여지가 없는 일회성 결말을 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상상력에 따라 지옥에 못 미치기도 하고 지옥을 훌쩍 뛰어넘기도 하는 천차만별의 극악무도한 결말을 손 털 듯 떠넘기기 때문이다.
섬광처럼 스치는 영상만으로도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덩달아 거시기 털도 일어나 만세를 부를 지경인데, 소실된 영상이 공개되었더라면 아마 전 세계가 몸서리치는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 소실된 영상에 도대체 무슨 장면이 담겨 있었는가?’ 하는 호기심은 지금까지 ‘지옥’이라는 단어가 은유하던 모든 잔혹한 장면을 곱씹어보는, 다시 말해 ‘악의 역사’를 탐구하는 학구적 고심을 끌어내기도 하지만, 그것보단 ‘지옥’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악의 서막을 알리는 경종이기도 하다. 태양계에 사는 인류가 묘사한, 혹은 경험한 ‘지옥’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지옥’을 대표하는 전부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다른 리뷰: 「이벤트 호라이즌 | 만약 차원의 문을 연다면 무엇이 건너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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