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0

주온: 저주의 집 | 저주보다 무서운 사람의 본성!

드라마 리뷰 | 주온: 저주의 집(呪怨:呪いの家, 2020) | 저주보다 무서운 사람의 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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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온: 저주의 집(呪怨:呪いの家, 2020) | 저주보다 무서운 사람의 본성!

드라마 리뷰 | 주온: 저주의 집(呪怨:呪いの家, 2020) | 저주보다 무서운 사람의 본성!
<정말로 '저주' 같은 것이 존재할까?
아니면 '저주'는 사람의 어두운 본성을 은폐하려는 수작인가?>

이제 ‘사에키 카야코’와 ‘토시오’로는 더는 우려낼 것이 없다고 생각했을까?

주온(呪怨) 시리즈의 최신작 「주온: 저주의 집」에선 더는 소름 끼치는 아이 토시오를 만날 수 없다. 대신 토시오가 살았던 저주받은 집이 안전한 공포를 잔뜩 부풀려주길 기다리는 우리의 불순한 호기심을, 그리고 80 • 90년대 우리의 여리고 작은 간을 심심치 않게 콩알만 하게 만들었던 도시 괴담에 잔뜩 굶주린 원초적인 추억을 충족시킬 것이다. 혹은 그러리라고 믿는다.

드라마 리뷰 | 주온: 저주의 집(呪怨:呪いの家, 2020) | 저주보다 무서운 사람의 본성!
<왠지 친근감이 꿀처럼 뚝뚝 떨어지는 배우 아라카와 요시요시,
그가 늙어가는 모습을 보니 한없이 씁쓸하다>

‘저주의 집’에 살았던, 혹은 잠시 거쳐 간 사람들의 파국적인 종말은 과히 괴담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가히 참혹하다. 저주에 씌운 사람들의 종말이 이미 단단히 각오한 우리의 마음을 ─ 다른 공포영화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 환멸이 베어져 있는 은근한 공포로 물들일 수 있는 것은 저주가 단지 ‘죽음’만을 선고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주를 입은 사람들의 신산한 삶과 결코 평범하다고 말할 수 없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도 충분히 공포스럽지만, 그 과정에 알듯 말듯 숨겨 놓은 사람 본성에서 악이 차지하는 비중에 대한 뿌리 깊은 의심이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저주를 받은 사람들의 모든 행위를 오로지 저주 때문이라고 둘러댈 수 있을까? 저주보다 더 무서운 것이 우리의 본성 속에 숨어 있는 ─ 폭력, 이기심, 탐욕, 욕망, 질투 같은 ─ 어두운 속성들은 아닐까?

드라마 리뷰 | 주온: 저주의 집(呪怨:呪いの家, 2020) | 저주보다 무서운 사람의 본성!
<죽은 아내의 뱃속에서 뭔가를 꺼내려는 남자,
저주 때문에? 아니면 남자의 선택?>

친절하게도 드라마는 이런 의문에 답을 구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될 힌트들을 제공한다. 바로 일본에서 80 • 90년대 실제로 일어났던 유명한 잔혹 사건을 이야기 중간중간에 주석처럼 배치한 것이다.

드라마 속에서 저주에 걸린 한 남자가 죽은 아내의 뱃속을 갈라 태아를 꺼내는 장면은 움찔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실제로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이다(「나고야 임산부 해부 살인 사건(1988)」.

이 밖에도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 사건」, 「사카키바라 세이토」,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 등의 잔혹한 사건을 무뚝뚝 속에 끝내 숨기지 못한 흥분된 목소리로 전하는 앵커의 목소리가 마치 공포영화에는 이만한 배경음악이 없다는 듯이 중간중간 시청자의 고막을 침울하게 울린다.

드라마 리뷰 | 주온: 저주의 집(呪怨:呪いの家, 2020) | 저주보다 무서운 사람의 본성!
<저 여자가 두 눈을 번뜩이며 찾는 것은 무엇일까?
그녀가 원하는 바를 얻으면 저주도 끝날까?>

드라마는 저주로 인한 참극과 잔인한 사람 본성에서 기인한 참극을 마치 양팔 저울의 두 접시를 나란히 차지하고 앉은 두 고깃덩이가 서로의 무게를 겨누듯 저울질하는 듯하다. ‘저주가 더 무서운가? 사람의 본성이 더 무서운가?’ 하고 말이다.

혹은, 저주와 폭력의 원인은 모두 사람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혀두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부당한 폭력이 없다면, 원한에 의한 저주 또한 존재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어쩌면, 저주는 어떤 식으로든 합리화하길 좋아하는 사람의 이성이 인류의 잔인한 본성을 변호하고자 하는 비겁하고 치사한 목적에서 착안한 수많은 변명거리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전쟁, 인종 청소, 고문, 학살, 학대 등의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반인륜적인 행위에도 우리는 매우 그럴듯한 변명거리가 들어설 수 있는 여지에 기겁하는 것처럼, 혹은 큰 잘못에서부터 사소한 실수에까지 잘못을 순순히 시인하기보다는 변명을 주렁주렁 입에 달고 다니는 우리처럼 말이다.

드라마 리뷰 | 주온: 저주의 집(呪怨:呪いの家, 2020) | 저주보다 무서운 사람의 본성!
<혐오스럽다고? 우리도 한때 이런 모습이었다는 것을 벌써 잊었는가?>

드라마 「주온: 저주의 집(呪怨:呪いの家)」에선 저주받을 자가 선별적으로 선택됨으로써 저주가 사람이 저지른 잔인한 폭력의 변명거리가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모두 똑같이 저주의 집을 방문했는데, 누구는 잔인한 사건의 주인공이 되고 누구는 보통 사람처럼 평범하게 살아간다.

사실 진짜 문제는 저주의 집이 아니라 우리의 잔인한 본성에 있는 것이 아닌가? 드라마는 그 사람들이 그렇게 된 것은 저주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타고난 천성과 사람의 본성과의 예측할 수 없는 조합에서 기인한 운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앞에서 언급한 실제 사건 소식들을 조롱하듯 주절거린다. '이것봐, 저주가 아니라도 사람들은 충분히 잔인하잖아!'

아무튼, 마치 도시 괴담을 입소문을 통해 듣는 듯한 기묘한 호기심과 은은한 공포를 자극하는, 그리고 거기에 오묘한 것인지 난해한 것인지 부족한 것인지를 좀처럼 분간하기 어려운 혼란에서 기인한 불안함은 일본 공포영화만의 절묘한 멋이다.

끝으로 혼란을 부추기려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온: 저주의 집」은 저주의 원인보다는 저주의 증상을 다루고, 한편으론 등장인물들이 ‘저주의 집’에서 경험하는 사건들은 시간상으로 서로 곤죽처럼 뒤엉켜 있다. 끝내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고 아무런 답도 끌어내지 못하는 결말은 상당히 불친절하다. 물론 다음 시즌을 위한 여지를 남겨두겠다는 얄팍한 상술일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우리의 행동 자체가 이해불계할 수 없는 의문투성이이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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