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침(The Shout, 1978) | 서양판 사자후의 전설?
"움직이지마!
네 죽음을 외칠거야!"
한 번쯤 맹렬하고 호방한 무협의 세계에 빠져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사람의 목소리만으로도 능히 여러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특히 김용의 무협소설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를 읽거나 드라마로 본 사람은 사자머리를 한 금모사왕(金毛獅王) 사손(謝遜)이 도룡보도(屠龍寶刀)를 노리고 왕반산도에 모여든 정사파 군웅들을 사자후(獅子吼)라는 무공으로 정신 착란증을 일으키게 하여 기억을 잃게 하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천지를 울리는 천둥처럼 우렁찬 사손의 외침에 흑심을 품은 군웅들이 속수무책으로 나가떨어지니 이 얼마나 호쾌하고 웅장한 일이 아니겠는가!
갑자기 뚱딴지같이 웬 ‘사자후’냐고 일갈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영화 「외침(The Shout, 1978)」에도 방랑자 크로슬리가 호주 원주민의 주술사로부터 배웠다는 ‘사자후’가 등장한다. 이른바 ‘공포의 외침(terror shout)’. 영화감독 예르지 스콜리모브스키(Jerzy Skolimowski)가 김용의 소설을 읽었을 리는 만무하고, 그렇다면 이런 주술이 원주민들 사이에선 존재했던 것일까? 아니면 귄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에서 소리를 질러 유리를 깰 수 있는 오스카에서 영감을 얻은 것일까?
그런데 정말 소리만으로 사람에게 치명상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구글링해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그렇게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니다. ─ 구글에 의하면 ─ 사람이 고통을 느끼기 시작하는 소음은 120㏈이다. 160㏈ 소리에 노출되면 사람의 고막과 심지어 ─ 폐의 소리 공명으로 인해 ─ 폐 조직도 찢어지고, 200㏈의 소리는 치명적이라고 한다. 아마도 이쯤 되면 두 귀뿐만 아니라 두 눈과 두 코, 그리고 입에서 피를 흘리며 고통에 절규하는 누군가가 떠오른다.
이렇게 숫자만으로 말하면 감이 안 잡힌다. 발사대를 떠나는 로켓 소음은 170㏈, 록밴드의 소리는 110㏈, 사람이 말하는 소리는 60㏈, 끝으로 사람이 외치는 소리는 120㏈이다. 그렇다면 기형적으로 목소리가 큰 사람이 있다면, 외침만으로 타인을 기절시키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런 사람이 간혹 있었고, 그런 이야기들이 여러 세대를 거쳐 구전되어 오면서 살이 붙고 과장이 섞이면서 ‘사자후’니, ‘공포의 외침’이니 하는 무공이나 주술로 남아 있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외침(The Shout, 1978)」에선 그런 께름칙한 기술을 배웠다는 크로슬리가 어느 날 단조롭지만 나름 평온했던 삶을 살아가고 있던 필딩 부부의 가정에 기어코 뛰어들면서 모든 것은 파탄이 난다. 겉보기에도 뭔가 위태위태해 보였던 필딩 부부의 금실은 단박에 깨지고, 크로슬리는 자신의 감당하기 어려운 능력 때문에 스스로 파멸하고 만다.
사자후, 혹은 공포의 외침이 작렬해 내는 파공음 같은 바람이 코끝으로 스쳐 지나갈 것 같은 데본(Devon) 지방의 나긋나긋한 풍경과 앤소니가 일하는 스튜디오에서 만들어내는 기괴한 효과음이 묘한 대조를 이루는 영화다. ‘외침’만으로 사람을 죽인다거나 소유하고 싶은 여자의 물건을 훔쳐 홀리게 한다는 둥 초현실주의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나 같은 도시 사람에겐 지극히 전원적인 1970년대 데본 풍경이 오히려 더 초현실주의적이다. 그만큼 영상미가 나름 볼만하다는 것이겠지만, 달리 말하면 그 외엔 별로 볼 것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내 감상일 뿐이다. 유리창이 오스카의 외침에 조금씩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듯 크로슬리로 인해 필딩 부부 사이에 미묘하게 일어나는 균열부터 감지해 낼 수 있는 예민한 시청자라면 영화 「외침(The Shout, 1978)」은 기대 이상일 것이다.
아무튼, 영화고 문학이고 간에 대중적인 예술 작품들은 세대와 지역, 그리고 그 사람의 성향과 현재의 관심에 따라 보는 관점도 해석도 달라진다더니 정말 엉뚱한 리뷰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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