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프트 스토리(Tales From The Crypt, 1972) | 그들이 그곳에 있는 이유
"원하는 게 뭐요?"
"뭔가 보여주려는 거요. 당신들 마음 속에 있는 것,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어떤 것..."
「크리프트 스토리(Tales From The Crypt, 1972)」는 제목 그대로 납골당 지하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막은 간단하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낯선 다섯 명이 납골당을 둘러보다 막다른 길에 다다르게 되고, 거기서 중세의 수도사처럼 갈색 로브를 머리까지 뒤집어쓴 사나이를 만난다. 출구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던 다섯 명은 갑자기 나타난 이상한 사나이로부터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들의 ‘죽음’에 대한 예지 같기도 하고 경고 같기도 한 이상야릇한 이야기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다섯 사람이 이상한 사나이를 통해 보고 듣게 되는 이야기는 바로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죽는지를 설명하려는 것이라고 말하려는 듯하다. 하지만, 야심 차게도 영화는 반전을 품고 있고, 그뿐만 아니라 친절하게도 영화는 반전을 눈치챌 수 있는 단서까지 세심하게 심어놓았다. 다섯 명의 죽음에 얽힌 인과응보가 의도하는 바를 고려한다면 반전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반전’과 그것을 간파할 수 있는 ‘단서’를 고루 갖춰놓은 것은 꽤 대담한 구성이지 않을 수 없다.
‘죽음’이란 주제로 다섯 명의 다섯 죽음을 다룬 이 영화는 사람이 욕심을 채우고자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개중에는 기꺼이 타인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돈에 눈이 먼 나머지 어리석은 선택의 연속으로 끝이 없는 불행과 고통을 자초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얼마 되지 않는 안락을 유지하고자 가뜩이나 불행한 사람을 모질게 핍박하는 사람도 있다.
「크리프트 스토리(Tales From The Crypt, 1972)」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선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인간의 파렴치한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한편으론 다섯 이야기 모두 그들이 저지른 죄악에 걸맞은 대가를 받게 된다는 꽤 교훈적인 결말로 마무리된다. 기독교적인 교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은 고전 영화의 한계로 지적할 수도 있지만, 악하고 독하게 마음먹고 사는 사람들이 잘 먹고 잘산다는 작금의 달갑지 않은 세태에 비추어보면 영화의 교훈적이고 응징적인 결말이 현실적이지는 않더라도 시원하고 통쾌해서 보기는 좋다.
특수효과적으로는 요즘 공포영화에 많이 뒤처지지만, ‘죽음’에 얽힌 다섯 명의 이야기만큼은 IMDB의 높은 평점이 시사하듯 호소력과 진정성을 내포하고 있다. 재미도 있지만, 그 재미있는 이야기 이면에 숨은 사람의 어두운 본성을 되새기게 만드는 유쾌하지 못한 압박은 시종일관 보는 사람의 인내와 양심을 시험하려는 듯하다.
압박을 견디지 못해, ‘말도 안 돼! 세상은 결코 저렇게 돌아가지 않아!’라고 포효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정말이지 세상이 영화처럼만 돌아간다면 얼마나 후련하겠어!’라고 자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보는 사람들의 푸념들이야 어찌 되었든, 영화에 등장한 다섯 사람처럼 만약 내가 그와 같은 납골당에서 로브를 입은 이상한 남자와 마주쳤을 때, 과연 나는 무엇을 보고 듣게 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오싹하다.
요즘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의 피는 너무 진짜 같아서 오히려 현실감이 덜할 때가 있다. 아니면, 진짜 같은 특수효과에 너무 익숙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에 반해 「크리프트 스토리(Tales From The Crypt, 1972)」 같은 고전에 등장하는 케첩 같은 ─ 전혀 피처럼 보이지 않는 ─ 피는 보기에는 엉성하지만, 이 엉성함이 오히려 상상력을 지극히 자극한다는 점에서 꽤 소름 끼친다.
끝으로 간단하게 마무리하자면, 다섯 사람 각각의 개성 있는 사연도 좋았고, 영화 말미에 준비된 약간의 반전도 나쁘지 않다. 이야기를 이리저리 비비 꼬고 갖은 기교를 맘껏 부린 요즘 영화와는 달리 직선적이고 꾸밈없는 이야기가 오히려 편안한 감상을 유도하면서 감개를 은은하게 자아낸다. 한마디로 고전 공포영화로 추천하기에 손색이 없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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