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27

블리딩 스틸 | 재생 혈액을 성룡에게 투입하라!

Bleeding Steel 2017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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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딩 스틸(Bleeding Steel, 2017) | 재생능력을 지닌 혈액을 성룡에게 투입하라!

“이봐요, 친구 가격흥정 고마웠어요. 결국…. 신뢰의 문제예요. 미안해요. 성룡과 저녁 약속이 있어서.” - 리슨

「블리딩 스틸(机器之血, 2017)」 극장판 포스터를 보면 거대한 우주선이 도시 위를 가로지르고, 우주복 같은 것은 입은 성룡이 위기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하늘에 떠 있다. 순간 ‘드디어 성룡이 외계인과 한판 싸우는 건가?’ 하는 기대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나의 기대와 환상은 말도 안 되는 지레짐작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SF 장르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데이터를 저장하고 무한한 재생 능력을 갖춘 인공혈액, 그리고 그 인공혈액과 최상의 조화를 이루는 인공심장으로 죽지 않는 무적의 군인을 만든다는, 군국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최강의 군사력을 꿈꾸는 모든 국가의 오랜 염원을 다시 한번 영화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성룡 영화의 진수는 뭐니뭐니해도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이다. 이미 적지 않은 나이에도 「블리딩 스틸」에서 성룡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지붕 위에서 아찔한 무술 장면을 연기하며 노익장을 과시한다. 물론 예전만큼의 화려함은 어느덧 희끗희끗해진 성룡의 흰머리와 밭고랑처럼 패인 주름 속으로 녹아들었지만, 그럼에도 성룡을 기억하는 한 명의 팬으로서 그의 건재함을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마음이 놓인다. 나의 시대 최고의 액션 배우인 그를 스크린에서 볼 수 없는 날은, 성룡이라는 별이 진 것처럼 나의 인생도 어느덧 황혼으로 접어들었음을, 그렇게 나의 시대가 서서히 종말을 맞이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Bleeding Steel 2017 scene 01

영화 「블리딩 스틸」은 초반부터 가미카제(神風)를 연상시키는 경찰 특공대원들의 장렬한 전투로 시작한다. 린 형사(성룡)는 백혈병을 앓는 딸 시시가 병원에서 죽어가고 있을 때, 중요한 목격자인 제임스 박사의 신변을 확보하고자 현장으로 출동한다. 그곳에서 경찰은 특수복으로 무장한 부하를 대동하고 나타난 안드레와 마주친다. 제임스 박사를 사이에 두고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린 경사도, 그리고 제임스 박사도 심각한 부상을 당한다. 린 경사의 최후 반격으로 일격을 입은 안드레도 어쩔 수 없이 현장을 떠난다.

Bleeding Steel 2017 scene 02

13년이 지났다. 린 형사는 여러 직업을 오가며 한 소녀를 멀리서 몰래 보호하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낸시. 보육원에서 자란 낸시는 보육원 시절부터 한 남자가 자신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는 것을 짐작도 못 했다. 어느 때는 청소부, 또 어느 때는 정원사, 그리고 대학생이 된 낸시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식당 아저씨로, 그 남자는 원자핵의 주변을 도는 전자처럼 낸시 곁을 맴돌았다. 두 개의 기억이 서로 얽히고설킨 혼돈의 꿈을 꾸는 와중에서 낸시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 늘 곁에 머물러준 한 남자가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남자가 바로 첫사랑을 고백하는 수줍은 소년처럼 늘 자신의 곁을 서성거리는 저 아저씨라는 것을 낸시는 문득 깨닫게 된다.

시시는 제임스 박사가 개발한 인공혈액 덕분에 구사일생하지만, 인공혈액의 부작용으로 기억을 상실한다. 한때 제임스 박사의 실험체였던 안드레는 부상을 회복하려면 시시의 인공혈액이 필요했다. 린 형사는 시시를 보육원에 보내고 그림자처럼 딸을 몰래 감시한다. 그렇게 무사히 13년은 보낼 수 있었지만, 결국 시시의 존재가 안드레에게 탄로 나게 되면서 또다시 부녀는 위험에 빠진다.

Bleeding Steel 2017 scene 03

영화 「폴리스 스토리(Police Story 2013, 2013)」 에서 보여주었던 헌신적인 부성애로 또다시 열연을 펼치는 성룡의 진득한 연기가 보기 좋다. 모든 아버지에게 있어 딸이 죽는 것보다는, 기억을 잃더라도 살아가는 것을 원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딸을 그저 멀리서 지켜봐야만 하는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할까? 「블리딩 스틸」을 본다면, 성룡의 애처로운 표정에서 일어나는 그 형용할 수 없는 감개가 어느새 애잔한 감동으로 화하여 내 심장으로 지그시 침투해옴을 알게 될 것이다.

만성변비 환자 같은 표정으로 일관하는 안드레의 부하, 그 일당의 철 지난 영화포스터 같은 유니폼, 중국 영화 특유의 어딘지 허접해 보이는 CG, 엉성한 이야기 등 안쓰러운 면이 꽤 있지만, 그리고 진짜 성룡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영화지만, 우리가 안 봐주면 누가 봐주리! 성룡이여 영원하여라. 그리고 그 초강력 재생능력을 지닌 혈액을 성룡에게 투입하라! 그리고 남은 것은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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