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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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검색’에서 ‘생성’으로

누구나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아무나 만들지는 않는다

통합 번역 도우미
<AI 번역에 사용되는 온갖 잡다한 기능들을 모아둔 도구>

코딩의 ‘코’ 자도 모르는 내가, 어느덧 「자작 코딩 시리즈」를 16탄까지 내놨고, 공개하지 않은 자잘한 개인용 도구들까지 합치면 AI 코딩으로 만든 자작 앱이 얼추 30여 개에 이른다. 사실 전문 개발자의 눈으로 보면 궁색함이 철철 넘치는 이 앱들은 잡동사니처럼 너저분하고 미숙아처럼 불완전한 것이 사실이고, 사실 마음만 먹으면 (내가 그랬듯) AI를 이용하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앱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마음을 실행으로 옮기고,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그럭저럭 작동하는 앱을 만들기까지 근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에 있다.

긴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시대에, 약간의 끈기와 노력이 요구되는 ‘필요한 앱은 직접 개발해라’라는 요구는 제과점 앞에 주저앉아 칭얼대는 아이에게 빵을 직접 구워 먹으라고 달래는 것처럼 터무니없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말이 있다. 당신은 언제까지나 칭얼대는, 남이 모든 걸 해결해 주길 바라는 아이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직접 해결법을 찾아 나설 것인가?

구글에 없으면, 만들면 된다

Whisper용 오디오 향상기
<Whisper 전사 품질을 극대화하고자 만든 오디오 향상기>

과거엔 검색을 통해 원하는 것을 찾았다. 인터넷이란 것이 대중에 공개되고, 한때 한국이 인터넷 강국이란 소리를 듣던 호랑이가 곰방대 물던 시절엔, '야, 그거 네이버에도 없던데?'라고 말하면 나름 정보력이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구글에도 없던데'라고 말하면, 그건 핑계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AI는 구글 검색 결과의 수십 페이지 너머, 혹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해결책을 만들어주니까 말이다.

세상은 변했고, 특히 IT 분야는 정신을 얼떨떨하게 만들 정도로 급변했고, AI의 등장으로 인해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이나, 그것을 얻기까지의 과정 역시 완전히 변했다. 기존엔 ‘검색’이 주요 수단이자 유일무이한 방법이었다면, 이젠 검색(Search)해서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없다면, 직접 생성(Generate)해서 만드는 세상이 되었다. 그로 인해 소프트웨어를 대하는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는 왜 늘 몸에 맞지 않는 소프트웨어를 입었을까

띄어쓰기 모델 제작에 사용된 데이터 빌더
<AI 띄어쓰기 모델 'Barun-Tui(바른띄)' 제작에 사용된 데이터 빌더>

지금까지 윈도우 사용자가 소프트웨어를 대하는 방식은 수동적이었다. 내가 원하는 기능을 구현한 소프트웨어가 구글에 없으면, “없으면 어쩔 수 없지" 하고 포기하거나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엑셀로 밤을 새워 노가다했던 작업, 새벽 내내 마우스 클릭을 반복해야 했던 파일 다운로드, 그림의 떡 같았던 원서에 도전한답시고 복사/붙여넣기 신공으로 번역했던 민망한 추억, 수많은 텍스트 파일의 엉망인 줄 바꿈을 일일이 수정하던 고단함 등등 이 모든 '디지털 노가다'는 우리 모두를 괴롭히던 골칫덩이였다.

과거의 우린 구글 검색창에 ‘파일 일괄 변경 프로그램 추천’, ‘PDF 줄바꿈 수정 도구’ 따위의 딱히 대단한 기능은 아니지만, 있으면 요긴하게 쓰이는 도구들을 검색하며, 누군가 만들어 둔 무료 배포판을 찾아 헤맸던 기억을 한두 가지 정도는 가지고 있다. 운이 좋아 원하는 도구를 찾더라도 찰떡궁합처럼 내가 원하는 기능에 딱 들어맞는 도구를 찾는 경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원하는 기능만 제대로 갖추었다면 광고 따위는 애교로 봐줄 수 있지만, ‘유료’라는 장벽 앞에 좌절한 경험도 있었을 것이다. 원하는 기능이 아니더라도, 얼추 비슷한 기능을 갖추었다면 평가판이든, 애드웨어든 가릴 여유는 없었다. 그저 ”없는 것보단 낫지"라는 생각으로, 벌거벗은 것보단 낫다는 이유로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억지로 입듯, 우린 내 손에 딱 맞는 작업 도구를 찾는 데 익숙해지기보다는 반대로 작업 도구에 내 손을 맞추는 데 익숙해졌다.

생활 속 일상 도구나 물건들을 DIY하는 것처럼 이젠 윈도우 등을 사용하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소프트웨어들을 DIY하는 시대가 되었다. 질문 게시판에 ‘이런 프로그램 어디 없나요?’라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적어 넣고 무한정 기다리기보단, AI에게 물어보고 원하는 프로그램을 찾지 못했다면, 그랬다면 까짓것 직접 만들면 된다.

AI는 대답할 뿐, 질문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중복 주석 제거 도구
<AI 번역 후 중복된 주석을 걸러내는 데 사용되는 도구>

최근에 만든 이 앱은 텍스트 문서 내의 중복된 주석을 찾아내어 삭제해 주는, 이 역시 AI의 도움으로 만든 자작 프로그램 중 하나다. 그러나 이 앱을 공개하면, 아마도 다운로드 수는 0일 것이다(아마 내 대부분의 자작 앱처럼 구글 검색엔진에 색인조차 생성되지 않을 것이다). 나처럼 특수한 프롬프트(주석을 강력하게 요구하는)로 원서를 번역해 읽는 괴짜가 아니라면 전혀 필요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더 특별하다. 이 앱은 오직 이 세상의 82억 사람 중 오직 ‘나’라는 단 한 명의 사용자를 위해, 0.1mm의 오차도 없이 재단된 '디지털 맞춤 정장(Bespoke)' 같은 앱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AI가 시작부터 끝까지 코드를 다 짜준다고 해도, AI가 모든 걸 알아서 척척 해주지는 않는다. 학문(學問)의 시작은 ‘질문’에서 시작되듯, 코딩의 시작도 질문에서 시작되고, 앱의 완성도 질문으로 다져진다.

“이런 기능을 소프트웨어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까?”라는 아주 간단한 질문으로 AI 코딩은 시작되고, “여기엔 이런 기능을 추가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앱은 점차 제모습을 갖춰간다. 개발 과정에서 마주치는 사소한 버그와 오류들은 이제 막 걸음마를 띤 아이 앞에선 무시무시한 문턱 같은 벅찬 도전으로 다가오면서, 때론 ‘나 따위가 코딩이라니’ 하는 자포자기 상태로 밀어 넣기도 하지만, 이런 고비를 어찌어찌해서 극복하고 나면, 오히려 버그/오류 없는 앱 개발은 식초 안 들어간 비빔국수처럼 뭔가 싱겁기도 하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아니 몇 페이지 정도의 긴 글조차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시대에, ‘學問‘에서 ‘問’은 땡땡이치고 오로지 ‘學‘만 중시해 온 반쪽짜리 교육 시스템에서 성장한 사람들에게, AI와 머리를 맞대면서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해답을 찾는 앱 개발 과정에 참여하라니, 시대에 역행하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나는 자꾸 욕심이 생긴다. 읽고 쓰기가 징그러운 벌레라도 되는 양 기피되는 시대에, 마치 반항하듯 읽고 쓰기에 물귀신처럼 물고 늘어지는 나는 오늘도 쓸모없어 보이는 질문을 던진다. 굳이 만들 필요 없는 앱을 만들고, 굳이 아무도 안 읽는 글을 끝까지 쓰고, 굳이 안 해도 될 생각을 붙잡고 늘어진다. 세상이 요구하지 않아도, 효율이 떨어져도, 조회수가 0일 것이 내일 해가 동쪽에 뜨는 일처럼 분명한데도 말이다.

맞든 안 맞든 어떤 질문에도 싫은 소리 한번 없이, 짜증 한번 안 내고 척척 대답해 주는 AI지만, 나 대신 생각해 주진 않는다. 다만 내가 던진 질문이 허술한지, 요긴한지, 혹은 아직 덜 익었는지를 가차 없이 비춰줄 뿐이다. 난 그 거울 앞에서 질문을 가다듬고, 문장을 고치고, 코드를 수정한다. AI는 답을 주지만, 그 답을 묻는 사람은 나였고, 그 답을 곱씹고 곱씹어 앱으로 빚어낸 것 역시 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 작은 앱 하나, 이 한 편의 글 하나는 결국 세상보다 나 자신을 설명하는 사막의 모래알 같은 외롭고 쓸쓸하고 처절한 흔적이 되어 버린다.

어쩌면 이건 개발도, 학문도 아닌,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소극적인 저항일지도 모른다. 질문하지 않는 법을 너무 일찍 배워버린 시대에, 끝까지 질문하는 인간으로 남아 있으려는 고집 말이다. 세상이 무사고(無思顧)의 쾌락을 좇는다면, 나는 그 쾌락 저편에 서서 내가 세운 질문과 호기심으로 맨땅에 들이박듯 세운 내 발자국 하나하나를 측량해, 기이코 여기에 남기리다.

다운로드 수가, 조회수가 0이라도 상관없다.
이 앱은 이미 제 역할을 다했다.
적어도 한 사람에게는—
아직 질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직 읽고 쓸 수 있다는 기쁨을,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감각을—
이 앱과 함께 확인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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