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지(The Crazies, 2010) |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주홍빛’ 결말
“나 멀쩡한 거 아니죠? 같이 가도 돼요? 더 미치기 전까지만? 제발...?” - 러셀
인구 1,260명의 작은 마을 오그덴 마쉬의 근처 늪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행기가 추락한다. 그러나 사냥을 나가던 마을 주민이 발견하기까지 정부나 군 관계자들 중 아무도 사건을 조사하거나 비행기를 수거하러 오지 않는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마을의 야구 시합 도중 마을 주민 로리가 장총을 들고 야구장 한복판으로 천천히 걸어들어오는 바람에 시합을 구경하던 보안관 데이빗이 제지에 나선다. 그러나 로리는 보안관의 경고를 무시하고 사격 자세를 취하다 보안관의 총을 맞고 즉사한다. 한편, 또 다른 마을 주민 빌은 아내와 어린 아들을 옷장 안에 가둔 채 집에 불을 질러 두 사람을 죽인다. 화재 소식을 듣고 달려온 보안관 데이빗은 빌의 얼굴을 살피며 로리 표정하고 똑같다고 말한다.
추락한 비행기로부터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물로 흘러들어 마을의 상수원을 오염시킨 것으로 판단한 데이빗은 시장의 거절에도 마을의 수도 공급을 끊는다. 그와 동시에 어떤 예고도 없이 마을의 전화, 인터넷, 휴대전화가 차단되기 시작하는데….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녀석들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 바로 매우 작고 잽싸며 탁월한 적응력을 가진 바이러스다. '바이러스가 생물인가? 아니면 무생물인가?' 하는 논쟁은 이 녀석의 모호한 정체성을 드러내지만, 이 녀석들의 목적은 우리처럼 생존일 것이라는 점에서 역시 우리와 가까운 것일까? 만약 사람을 살인마로 만드는 바이러스나 화학물질이 존재한다면, 그 약발이 참으로 궁금하다. 사람의 폭력적인 성향을 극대화시키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도 아직 알지 못하는 우리 몸속에 숨겨진, 그리고 잠겨진 또 다른 '판도라의 상자'를 해제하는 것인지 말이다. 그럼에도, 폭력적인 성향이나 본능만을 극대화시킨다고 해서 없는 살의가 생길까 하는 의문은 여전하다.
사이좋은 부부가 찬란한 주홍빛 저녁노을을 차분하게 감상하는 것 같은 마지막 장면은 쉽게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미국 같은 나라는 영화 속 치명적인 바이러스 수천 종은 보유하고 있을 것 같다는 오싹한 느낌도 들지만, 만약 영화 같은 사고가 생긴다면 미국 정부는 과연 어떤 대책을 세울까? 그 대책 중 영화의 마지막 장면 같은 주홍빛 결말도 들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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