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영혼(雙魂, Walk with Me, 2019) | 준비된 네 개의 반전, 그리고 단서들
"내 말 뜻은, 만약 니가 악귀를 만났다면 니가 악귀보다 더 악해 질 필요가 있다는거야" - 침욱
처음엔 ─ 네이버 영화에 적힌 대로 ─ 공포영화인 줄 알고 감상하다가 전혀 공포영화답지 않은 진지하면서도 싱거운 모습에 조소와 실망을 금치 못하다가, 중후반쯤 가서 이 영화는 공포영화가 아니라 정신병리학적인 요소에 추리 요소를 결합한 미스터리 스릴러에 더 가까운 영화라는 사실을 서서히 깨달으면서 영화의 진정한 의미와 재미를 다시금 되새겨본 영화다. 그로 말미암아 나름 괜찮은 영화라는 생각과 함께 평점으로 별 한두 개는 더 얹어줘도 무방하겠다는 흡족한 마음을 먹게 했다.
반전의 충격이나 강도는 보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겠지만, 내가 보기엔 「두 개의 영혼(雙魂, Walk with Me, 2019」에는 최소한 네 번의 반전이 준비되어 있다. 첫째는 주인공 유심의 주변 사람들을 죽인 진짜 범인에 대한 반전, 둘째는 주인공은 어떤 사람이냐에 대한 반전, 셋째는 주인공의 친구 침욱에 대한 반전, 넷째는 공장에서 일하던 주인공이 잠시 기절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에 대한 반전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앞에서 제시한 네 가지 반전에 대해 영화는 마치 ‘독자와의 대결’로 유명한 엘러리 퀸의 본격 추리소설을 충실하게 따르는 것처럼 시청자가 추리할 수 있는 단서를 장면 곳곳에, 그것도 꽤 많이 숨겨놓았다는 것이다. 그런 고로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꽤 안성맞춤인 영화다. 그런 사람이 탐정인 척 작정하고 「두 개의 영혼(雙魂, Walk with Me, 2019」을 감상한다면, 정말로 명탐정이라도 된 듯한 짜릿하고 유쾌한 착각에 빠져들기에 충분할 정도로 영화의 추리적 요소는 매우 논리적이고, 또한 계획성 있게 적재적소에 잘 배치되어 있다.
여기서 예를 든다고 시시콜콜 더 말하게 되면, 영화의 재미가 반감될 것이 뻔하니 이에 대한 것은 그만 닥치는 게 좋을 것 같고, 만약 자신이 추리에 자신이 있다면 좋은 승부가 될 수 있는 영화라는 사실 정도만 밝혀두자.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퇴마 장면은 「두 개의 영혼(雙魂, Walk with Me, 2019」이란 영화를 나처럼 귀신이 등장하는 보통의 공포영화라고 착각하게 한 다음 장면과 장면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진실을 가리키는 단서를 간과하게 만듦으로써 반전의 충격을 극대화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싶다. 물론 흔쾌히 속아 넘어간 나로서는 이에 대해 더는 할 말은 없지만, 앞뒤를 따지고 보니 그렇다는 얘기다.
사실 진실을 가리키는 단서는 벌써 영화 제목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난 보통 때처럼 제목 같은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그냥 영화 장르가 ‘공포영화’라는 것에만 현혹되어 무작정 감상했다가 크게 한 방 얻어맞은 꼴이다. 마치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빵이란 사실만 확인하고 허겁지겁 먹었다가 다 먹고 나서야 날짜가 지나도 한참 지난 빵이란 사실을 알게 된 격이랄까? 그렇다고 영화 한 편 잘 못 봤다고 식중독 같은 병에 걸릴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이중인격’이라 불리는 해리성 정체성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는 이미 영화에서 흔한 소재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마무리하느냐에 따라 신선함과 진부함으로 나눠질 수 있다고 한다면, 「두 개의 영혼(雙魂, Walk with Me, 2019」은 나름 신선한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참고로 이 영화엔 1980 • 90년대 홍콩 코미디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오요한(吴耀汉)이 못난 남편이자 아버지 역으로 등장하여 옛 향수를 떠올리게 한다(이 배우가 누구냐고 물어본다면, 당신은 「오복성」도 안 봤냐고 되묻고 싶다). 그런데 강아지를 산 채로 전자레인지에 놓고 돌리는 사이코패스 여자아이는 왜 나온걸까? 내가 또 놓친 것이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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